법조광장

배움이 주는 선물

글자크기 크게 작게

121533.jpg

-미국 연방대법관 소토마요르의 회고록을 읽고-


“벽을 쌓는 대신 다리를 놓으세요. 여러 분이 속한 사회에서 끌어낼 수 있는 어떤 힘을 발견한다면, 그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를 보십시오.”

미국의 세 번째 여성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의 회고록, ‘내가 사랑하는 세상(My Beloved World)’이 ‘희망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이다지도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험한 세상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가운데도 세상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무척 경이롭다.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직업에 대한 만족과 인간관계가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중 어느 하나가 약간이라도 삐걱거린다면, 행복도는 낮아진다. 판사가 되는 첫 날까지의 기록인지라 소토마요르가 ‘좋은 판사’인지 알 수 있는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도 그녀가 ‘좋은 사람’으로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점에 감탄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편견이 없다. 그녀는 쇠락하고 황폐한 뉴욕 빈민가에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로 성장했다. 주변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마약중독자나 범법자가 넘쳤다. 소토마요르와 쌍둥이처럼 자라고 할머니로부터 함께 사랑을 받은 사촌 넬슨은 훗날 마약중독자가 되었다. 허물어져 가는 듯 보이는 사회에도 사랑이 있고 사람 사는 즐거움도 있지만, 의지와 투지 없이는 쉽게 일탈할 수 있음을 그녀는 이해한다. 아니 ‘이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공감’이다.

그녀의 말대로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물론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비슷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접경험이 가져다주는 깨달음의 깊이는 간접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편견 없고 사람을 분별하지 않는 마음. 사회의 규율을 깨뜨리고 일탈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마음을 가지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벽을 치지 않는다. 적과 친구를 가르는 벽. 마음의 벽. 프린스턴과 예일대에는 그녀와 비슷한 출신이면서도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토마요르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성공을 위한 티켓으로 여기지 않았으나 그들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 무엇도 자신이 그렇게 탈출하려고 애썼던 곳을 다시 돌아봐야한다는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했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했다.

그녀는 어떤 목적을 위한 방법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고등학교 때 만난 여학생은 소토마요르에게 “너는 모든 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너 같은 사람들의 문제는 원칙이 없다는 거야”라면서 비난한다. 소토마요르는 그 비난과 평생 씨름을 해왔다고 고백한다. 법률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고민이 컸을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는 다른 사람을 향한 많은 벽이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속의 벽도 우리의 한계가 될 수 있다.

자신만을 위한 인생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고리이다. 소토마요르는 삶에서 직업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람이 직업적인 야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산다면 순간적이고 중독성이 있으며 때로는 사악한 괴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인식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영웅은 공동체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 인생에 방관자란 없다고. 다른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치를 찾았고, 결국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낙관주의자다. 그것이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소토마요르는 솔직하다. 소아당뇨, 아버지의 알콜 중독, 부모의 불화, 어머니와 오랜 세월 풀리지 않았던 냉랭한 관계.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진솔한 고백. 그런데도 자신의 고민은 남과 공유하지 못한다. 자신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삶에서 배움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떠올린다. 언제나 배울 준비가 되어 있고 제대로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는 자에게 기적 같은 인생이란 선물이 주어졌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모든 친구에게서 그리고 그녀가 맞닥뜨린 모든 상황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찾았다. 삶 자체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다. 이런 자세라면 무엇인들 못할까, 어디까지 변하지 못하랴. 그녀는 이 친구, 저 멘토, 심지어 라이벌의 장점이 무엇인지,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배웠으며 그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였다. 그 결과 그녀에게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찬다.

우리 사회, 더 이상 행복해지기 어려운 세상이라고들 한다. 공동체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간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좀 더 성장한다고 해서 사회 구성원의 행복도가 얼마나 올라갈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의미를 찾아가고 풍요로운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 우리가 찾는 행복은 그 가운데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선(善)과 이해와 공감이 있는 공동체를 꿈꾸는 시간이었다.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KCL) 

 
  • 카카오톡
  • 라인
  • 밴드
  • 구글플러스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