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臺에서

하모와 갯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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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전어. 그럼 여름은? 부산에 근무하며 알게 되었는데, 여름에는 하모회가 제 맛이다. 지난 여름, 하모 사건을 맡았다. 거래장부가 증거로 제출되었는데 끝까지 넘겨도 하모는 안 보인다. 첫 변론기일, 멀리 남해에서 올라온 원고에게 물었다. 장부에 광어, 전어, 갯장어 등등은 있는데 하모는 없네요 하니까, 원고가 동그란 눈으로 “갯장어가 하모 아닙니꺼…”한다(하모는 갯장어의 일본 이름). 법정에 실소가 터져 나오더니 이내 한숨소리가 들린다. 원고와 피고의 눈에는 불안함,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변호사는 자신이 그렇게 말한 듯 부끄러워한다.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좀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이렇게 탈탈 털리는 날이 있다. 이 날도 그랬다. 하모가 갯장어라는 것이 쟁점은 아니었지만, 저 판사가 재판을 제대로 하겠나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그런데 정말 어느 날에는 판례를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어서, 도면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시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어서 등으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한다.

그 순간 참 부끄럽지만 결국에는 들켜서 다행인 경우가 있다. 결론을 내릴 때쯤에는 판사의 무식함을 염려한 당사자와 대리인의 친절한 준비서면과 증거로 모자라는 부분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들키지 않았더라면 내렸을 결론과 다른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판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데, 법대에 앉으면 모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하늘의 명령이 있는 것처럼 뻣뻣해진다. 그렇지만 재판은 설득의 과정이고, 판사는 설득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니까, 솔직하게 그 과정에 동참하려고 한다. 판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나 법리가 있다면 이를 바로 잡아주는 역할은 재판 중에는 원고와 피고만 할 수 있으니까, 기꺼이 들킬 용기를 낸다.

저 여름 하모 사건은, 하모가 갯장어라는 것을 잘 아는 조정위원을 통해 조정이 되었고 원고와 피고는 서로 나에게 하모회를 사주고 싶다며 웃으며 조정실을 나갔다. 들켜서 좋았다.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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