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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김태청 전 변협회장 ⑦ 여간첩 김수임 사건

김태청 전 변협회장 -제3143호-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꼭 열흘전인 1950년 6월14일 아침, 육군본부 중앙고등군법회의 대법정에는 무장 헌병들의 삼엄한 경계속에 미모의 여죄수 하나가 포승줄에 묶인 채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희대의 여간첩 김수임이다.
재판장 김백일 대령 바로 옆자리에 법무사로 배석해 있던 나는 그 이름난 '미모의 여간첩'이 진술하는 간첩죄의 범행사실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오래된 일이어서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녀가 털어놓은 자기의 범죄사실(간첩행위)은 가물가물한 내 기억으로는 대개 이런 것이었다.
피고인 김수임은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살 때 이른바 민며느리로 시집을 갔으나 2년을 채 못넘기고 빠져나와 미국인 선교사에게 발견되어 여학교와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해방 후 그 탁월한 외국어 실력으로 세브란스병원의 미국인 통역으로 일하게 되었고, 그 뛰어난 미모로 서울시내 사교계의 꽃이 된 그녀는 어느날 저녁 미군 파티에 참석했다가 해방전 경성제대 출신으로 공산주의자이며, 박헌영이 주도한 남로당의 골수당원인 이강국을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강국이 남로당 핵심간부로 암약하게 되고 김수임 자신도 미국 대사관 통역이 되면서 두사람의 사이는 일단 멀어졌다.
김수임이 미군 수사기관의 최고 고문인 헌병대령 베어드와 동거까지 하는 사이가 되자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공산당이 아니었다.
이강국이 다시 접근해 오자 옛사랑을 못잊은 그녀는 남로당 간첩인 옛애인의 청을 받아들여 한·미 양국의 군사기밀과 고급정치정보를 속속 빼내 제공하였고 베어드 대령의 숙소는 어느새 가장 안전한 남로당의 아지트로 변하였으니 美人計를 써서 정보를 캐내려는 남로당의 전술에 완전히 걸려든 것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이강국이 우리 특무부대의 수사선상에 올라 체포령이 내려지자 그녀는 애인 이강국을 얼마동안 자기 집에 숨겼다가 박헌영 등 다른 남로당원들처럼 월북하게 한다.
김수임은 또한 6·25 전인 그 당시 어머니의 문병을 빙자하여 남로당 빨치산 총책인 이중업을 왕진의사로 가장, 월북케 하는데 성공한다. 그들이 미군 MP가 운전하는 지프차로 한·미 헌병검문소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순간은 007제임스본드 그대로였다.
위와같은 자신의 간첩행위를 비교적 담담하게 자백한 그녀에게 나는 피고인 신문의 격식대로 최후 진술의 기회를 주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각오하고 저지른 일이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면서 기꺼이 그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느님과 그동안 자기를 사랑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는 말로 흐느끼듯 최후진술을 마쳤다.
'여간첩'하면 곰보딱지라도 그 앞에는 반드시 '미모의'라는 형용사가 붙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세계 제1차대전때의 샹하이로즈를 비롯해 마타하리 등 '미모'가 아닌 여간첩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간첩 김수임 앞에 붙어 다니는 '미모의'라는 수식어는 성장한 그녀가 샹들리에 찬란한 파티의 여왕일 때,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제비족'들의 아부이거나 매스컴의 센세이셔널리즘일 뿐, 그녀의 실상을 벗겨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그녀는 돈과 사랑을 위해 조국을 적에게 팔아 넘긴 전형적 여간첩이었다.
오늘은 외국인의 현지처, 내일은 내국인 유부남의 情婦로 전전하는 불륜마저 사랑이란 이름 아래 순애보로 분식되는 그 법정의 요정을 심판관석에서 내려다 본 나에게는 한낱 매춘·매국하는 추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백일 재판장에 의해 선고된 '사형' 판결은 그녀의 조국인 '인민공화국'의 6·25남침직전 서울근교에서 집행된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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