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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법조회고록

[나의법조회고록] 이선중 전 법무부장관 ① 3·15 부정선거 수사(상)

이선중 전 법무부장관 -제3130호-

1958년 4월부터 1960년 9월까지 나는 대구지검 부장검사로 있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이를 규탄하는 학생의거로 혁명이 성공한 4·19 직후, 5월5일 검찰총장이 박승준씨로부터 이태희씨로 교체되고 부정선거와 이에 수반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됐다.
서울에 근무하지 않아서 자유당정권 핵심부와 친분관계가 적다고 생각되는 지방에 근무하는 부장검사 두명이 동원됐다. 3·15 당시의 국무위원에 대한 수사는 필자가, 자유당 수뇌부 등의 부정을 처리하는 것은 부산지검 오탁근 부장검사가 각각 맡게됐다.
5월10일경 상경해 덕수궁 옆 구법원 청사에 있었던 검찰청에 근무했다. 숙소는 부근에 있는 조그만 여관으로 정했다.
법무부는 홍진기씨가 3·15 직후에 내무부장관이 되어 차관인 신언한씨가 대행하였고 외무부는 조정환 장관이 사임하여 최규하 차관이 대행하였으나, 나의 건의로 차관은 처벌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국방부장관 김정렬씨(후일 국무총리)는 민주당 실세인 장면씨 등이 국방부 산하의 군병력의 반발을 의식하였던 때문인지 처벌대상에서 제외하라는 검찰총장의 지시가 있었다. 그렇다면 산하기관이나 단체가 없는 부흥부장관 신현확씨(후일 국무총리)나 산하기관이 있다고 하나 직속기관이라고는 보건소 등이 전부인 보사부장관 등은 제외하여 처리하자는 건의를 해보았으나, 필자의 건의는 허용되지 않아서 전부 구속하게 되었다.
전직장관 15명 전원(체신부장관 곽의영씨는 현직 국회의원이어서 국회의 동의관계로 불구속기소)을 구속기소하자면 각각 개인별 독직 등 부정행위를 발견해 처리하여야 하는데 전 국무위원을 개별적으로 조사한다는 것은 필자 단독의 수사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하므로 전 국무위원이 같은 공범으로 처리되어야 하겠는데, 여러날 주변수사를 해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부에서는 3·15 부정선거는 천하가 다 아는 공지의 사실이므로 증거가 필요없고 부정선거는 결국 이북 공산당을 유리하게 한 것이니 국가보안법을 정면으로 적용해 처리하면 될 것을 무엇을 고민하느냐 하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던 중 1960년5월18일 오후 7시경 검찰총장의 급한 연락으로 총장실에 갔더니 "내일 어떤 데모 행사(당시 신문을 보았더니 4·19의거학생 대책위원회 발족행사)가 있는데 4·19 당시의 내무부장관인 홍진기씨를 오늘 중으로 구속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사태수습이 어렵다"고 하면서 구속수감하라는 엄명이었다.
당시 아무런 사전수사나 정보도 없이 과거의 직속상관이었던 홍진기씨의 출두를 기별하고 아직 추우니 한복을 두툼하게 준비해 착용하시기 바란다고 첨가하였더니 오후 10시경 필자의 면전에 나오셨다.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고 "교도소 내의 음식 사정이 어려울 것이니 곰탕 한 그릇 드시고 가십시요"하면서 곰탕 한 그릇을 드시게 하고 구속영장 청구는 주소, 성명 등 형식만을 기재하였다. 그리고 검찰청 영장담당직원으로 하여금 법원에 가서 전후 사정을 일응 말씀드리라고 하고 그것으로 안되면 필자가 가서 부탁하려고 하였는데 전후사정을 십분 양해한 영장담당판사께서 역시 백지 내용의 구속영장을 발부(후일 다 보완하였음)해 주어 구속수감한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이고 법원에 미안할 뿐이다.
당시 언론기관인 각 신문사에서는 평소의 법조출입기자 이외에 기자를 증원하여 취재 활동이 활발하였는데 대체로 오후 7시 전후에 각 검사실을 돌면서 "오늘 무슨 일 없습니까" 할 때에 설사 어떤 예정이 있더라도 "아무일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고 상례로 되어 있었다.
홍진기씨가 구속되는 저녁에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모씨가 역시 그와 같이 하고 귀가하였던 모양인데 그날밤 늦게 홍진기씨가 구속되어 다음날 조간에 일제히 톱뉴스로 보도되었는데, 동아일보만이 그 기사가 없었고 담당기자는 혼비백산하였던 모양이다. 그 후부터는 무슨 설명을 하여도 귀가하지 아니하고 필자가 여관방에 들어가서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야 귀가하였는데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미리 공개하면 사진기자와 더불어 수십명이 난장판이 될 것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李善中 변호사 약력
1924년 1월 20일 경북금릉 生 1947년 서울대법대 졸업 1947년 제1회 조선변호사시험 합격 1950년 대구지검 검사 1958년 대구지검 부장검사 1960년 제주지검 검사장 1962년 광주지검 검사장 1965년 대검찰청 검사 1967년 법무부 법무실장 1971년 법무부차관(17대) 1973년 법제처장(7대) 1975년 검찰총장(14대) 1976년 법무부장관(23代) 1979년 변호사 개업(서울)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