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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복' 벗고 행정부 진출…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직원들 의견 경청… 소통위해 '동호회 투어'도


최성준(58·사법연수원 13기) 방송통신위원장은 법관 시절 특허법 개정작업에 참여했으며 특허법원 초대 판사,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지내 '지식재산의 대가'로 일컬어졌다. 이후 한국정보법학회 회장을 지내 법원내 대표적인 IT 분야 전문가로도 꼽혔다. 또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와 춘천지법원장 등을 역임하며 법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사법행정 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이젠 행정부처로 진출해 성공한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다. 법관 시절 쌓은 갈등 조정 경험을 바탕으로 방통위 업무에서도 '법치(法治)'를 구현해내고 있다. 취임 초반 판사 출신 위원장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는 곧 기대와 존경으로 바뀌었다. 국내 유일의 방송·통신 전문 규제기관인 방통위를 이끌고 있는 최 위원장을 지난달 18일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최성준(58·사법연수원 13기) 방송통신위원장은 경기고교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해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그에겐 중학교 졸업장이 없다. 최 위원장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68년 여름, 문교부는 중학입시제도를 폐지하고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하는 무시험추첨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명문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과외까지 받던 학생들은 어느날 갑자기 바뀐 입시제도에 허탈감을 느꼈다. "중학교 입학 당시 서울이 4개 학군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집에서 굉장히 먼 중학교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년 선배들 중에 중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로 명문 고등학교에 가려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 사람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1학년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결국 검정고시에 합격해 친구들보다 1년 먼저 경기고에 입학했다. "사실 뒤늦게 생각해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공부가 아닌 다른 여러가지를 배워야 할 시기에 학원을 다니면서 계속 공부만 했으니 별로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 위원장은 3형제 중 장남이다. 바로 아래 동생이 최경준(55·14기)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다. 최 위원장이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최 대표가 연달아 시험에 합격했다. 그가 사시에 일찍 합격한 데에는 동생의 영향도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집안이 잘 되려면 장남이 잘 돼야 한다'고 걱정하셔서 마음 한 켠엔 '형으로서 시험에 먼저 붙어야지, 역전되면 큰일이다'라는 위기감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KS출신' 이지만 중학교 졸업장은 없어 
명문고 진학 욕심에 중퇴… 검정고시로 고교 입학
81년 사법시험 합격… 이듬해 동생도 잇따라 합격

최 위원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지난 2009년 암투병하던 어머니가 타계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아픔을 추스린 그는 동생들과 함께 상속받은 유산 중 5억원을 암환자 치료를 위해 써달라며 어머니가 다니던 서울아산병원에 기부했다. "어머니가 1981년 유방암 수술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신 이후 여러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수술을 받으실 때도 돌아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형제들끼리 '어머니가 의학의 도움으로 잘 살아오셨는데, 이번에 퇴원하시면 의학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모아 기부하자'고 얘기했는데…."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산병원은 기부금을 어머니 이름을 따 '한명자 암환자 지원기금'으로 운용하고 있다. "기금이 소진되면 형제들과 계속 기부해 나갈 계획입니다."

최 위원장이 지식재산과 IT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였다. 그가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 일하던 1994년 당시 특허분쟁 1심은 특허청 심판소가, 2심은 특허청 항고심판소가, 3심은 대법원이 담당하고 있었다. 사실심인 1·2심 모두 행정청에서 이뤄져 헌법이 보장한 '법관에 의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특허법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했고, 한편으로는 위헌 결정이 날 것을 대비해 특허소송 제도개선에 착수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1998년 3월 1일 개원한 특허법원이다. 그는 송무심의관으로 직접 특허법 개정작업에 참여했지만, 그때까지는 특허법을 공부한 적도, 사건을 심리한 적도 없었다. 특허분야 관련 서적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최 위원장은 1996년 서울고법 판사로 재판부에 복귀했다. 그때 서울고법 4·5부에 지적재산권 전문재판부가 설치됐는데, 우연히 4부로 가게 됐다. "법 개정 작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감은 적었습니다. '하늘이 이런 공부를 하라고 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2년을 근무했습니다." 특허법원이 문을 열 때는 자원했다. "1년 뒤면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나갈 수 있는 연차였는데, 특허법원은 고등법원급이라 배석으로 근무해야 했기 때문에 잠시 고민도 했지만 결국 지원해 특허법원 초창기 2년동안 근무하면서 전문성을 쌓게 됐습니다."
 
송무심의관으로 일하다 특허법·특허법원과 인연
특허법원 초기 2년 근무… 특허분야 전문성 쌓아

정보법학회서 활동… 방송·통신분야로 시야 넓혀 

최 위원장은 1996년 창립한 정보법학회에서 지식재산권 연구와 더불어 방송·통신·인터넷 분야를 접하게 되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 그는 초대 회장인 황찬현(62·12기) 감사원장에 이어 2006년부터 5년간 회장을 맡았다. 정보법학회의 3대 회장은 강민구(57·14기) 부산지법원장이다. 전직 회장들이 각 분야에서 맹활약하자 정보법학회는 '잘 나가는 학회'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최 위원장 취임 이후 방통위는 사업자에 대한 조사·제재 시 충분한 의견진술 기회를 보장하는 등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는 조사·제재대상인 방송·통신사업자가 다시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처분에 불복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그냥 수긍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당사자가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한 진술 기회를 보장해줘야 제재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며 "자유롭게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방통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임 이후 가장 큰 성과로 지난해 10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 시행에 따라 이동통신사간 핸드폰 지원금 경쟁이 요금과 서비스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꼽았다. 법 시행 초기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마음 고생도 심했다. 언론 등에서 법 이름을 줄여 '단통법'이라고 하다보니, '소통을 단절시킨다', '단지 통신사만을 위한 법'이라는 말이 나와 안타까웠다. 그는 "'사업자들간의 활발한 경쟁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것인데 안 좋은 평가가 나와 국민들을 납득시키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방통위가 적극적으로 제도를 홍보하고 이통사에게 법의 취지대로 영업하도록 이끈 결과 차츰 시장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고, 서서히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이 경감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균 가입요금도 내려갔고, 가계 통신비도 법 시행 이전보다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난 5월부터 데이터중심요금제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이통사간에 요금과 서비스 경쟁이 일어나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어 다행스럽습니다."
 
"충분한 진술기회 보장하면 제재 결과에 승복"
방통위 업무, 법원의 업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법률가들도 행정부에서 충분한 역할 할 수 있어

위원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방통위의 한 직원은 "역대 위원장들 모두 똑똑하다. 그래서 직원들이 설명을 마치기도 전에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다르다. 부하 직원들이 설명할 때 한 번도 말을 자른 적이 없다. 똑똑하면서 경청할 줄 아는 분은 최 위원장이 유일하다"고 말했다.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저녁마다 과 단위로 직원들을 만나 소줏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올해는 방통위에 있는 운동, 합창, 연구회 등 다양한 동호회를 돌며 직원들과 좀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 '동호회 투어'를 하고 있다. 최 위원장이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생각해 낸 아이디어다. 현재 전체 동호회의 절반 가량을 방문했다.

"합창 동호회에서는 합창을 시켜서 결국 1시간 동안 같이 연습을 하다 왔습니다. 쉬운 가곡이라고 해서 했는데 진땀을 뺐습니다."(웃음)
최 위원장은 법조인이 다른 직역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방통위가 담당하는 금지행위에 대한 조사·제재 업무가 법을 집행하는 법원의 업무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법률가들은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그를 토대로 법을 해석해 적용하는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부의 업무와 접목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부는 업무에 정무적·정책적 판단이 추가되겠지만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습니다. 법률가들이 행정부에 와서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고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률가들이 여러 분야에 많이 진출해 좋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그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발꿈치로 서 있는 사람은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발을 벌리고 겅중겅중 걷는 사람은 오래 걷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는 "'무리하게 앞서가려고 하거나 추진하려고 하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저의 최종 목표는 국민에게 봉사하고 방통위가 잘되는 것이지만, '법조계에서 온 사람이 제 역할을 하면서 올바른 정책으로 성과를 남기고 갔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직원들을 믿고 평범함 속에서 차근차근 정책을 추진해 나가다 보면 목표가 이뤄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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