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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비주류'서 서울변회 首長으로 '맷집'좋은 김한규 변호사

'개룡남(개천에서 용(龍)이 된 남자)', '인생 역전', '꼴찌의 반란'…. 김한규(45·사법연수원 36기) 서울지방변호사회장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학창시절을 보냈고, 법조계의 주류인 '스카이(SKY) 대학' 출신도 아닌데다 12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늦깎이. 돈 없고 빽 없는 청년변호사의 삶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그가 변호사로 첫 발을 뗀 지 8년만에 전국 변호사 1만6340명 가운데 73.4%인 1만1993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국내 최대 지방변호사회의 수장에 선출됐으니,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하지만 김 회장은 "개천에 살았던 건 맞지만 용인지는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이 서울회장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이 공정사회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법조계 선후배 하나 없이 철저한 '비주류' 출신으로 서울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맷집' 덕분이라고 말했다. 회장으로 취임한 지 120일을 넘긴 지난달 '맷집왕' 김 회장을 만났다.

 
김한규(45·사법연수원 36기)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어릴 적부터 '맷집'이 강했다. 그는 자신을 천안시 우량아 대회 우승자였다고 소개하며 웃었다. "우량아로 태어난데다 체격이 좋아서 그랬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들이랑 싸웠어요. 친구들을 많이 울리기도 했지만 어떨 땐 맞고 코피가 나서 집에 들어와 울기도 했죠. 어릴때부터 말썽꾸러기였어요."

국어 교사인 아버지 덕분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그가 본격적으로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때였다. 담임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에 글짓기 숙제를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나빴다. "C를 받았죠. 제 실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반에서 가장 잘 사는 친구가 숙제를 안 해왔다고 제 것을 베껴서 냈어요. 같은 글인데 그 친구는 A를 받았죠." 충격을 받은 김 회장은 여름방학 숙제를 제출하면서 담임 선생님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총 10페이지였는데 1페이지의 내용과 똑같이 써서 10페이지까지 채웠어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통과시켜줬어요. 읽지도 않았단거죠."

김 회장은 그 날 이후로 삐뚤어졌다고 말했다. 일부러 숙제도 안 하고 공부를 멀리하며 다른 하고 싶었던 것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공부는 하기 싫었고 음악에 심취했어요. 특히 락(Rock)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월간 팝송', '핫 뮤직'을 오랫동안 구독했어요. 잡지의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전부 다 갖고 있어요. 빠진 호는 헌책방에서 구해와서 지금 저희 집 벽면을 차지하고 있죠. 대부분 50번 넘게 읽어서 어디에 무슨 기사가 있는지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문제아 아니였지만 공부하기 싫어 음악에 심취
무언가 좋아하면 깊이 빠지는 마니아 기질 있어
고교시절 사 모은 팝송·복싱잡지 아직도 못 버려

김 회장은 무언가에 한번 빠지면 깊게 빠져드는 '마니아(mania)' 기질을 갖고 있다. "제가 어렸을 땐 복싱이 굉장이 유행했습니다. '펀치라인'이라는 복싱잡지가 있었는데 78년부터 87년까지 10년치를 모았어요. 아내가 버리라고 하는데 아직도 못 버리고 있습니다."

'마니아'로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성적에 맞춰 경원대(현 가천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런 그가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목소리를 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제가 90학번인데, 당시 사회는 민주화 되지 않은 사회였잖아요. 사회 제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싶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잘 들어주지 않았어요. 객관적인 제 스펙에 따른 선입견이 있으니까요. 같은 말을 해도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의 말을 더 잘 들어준다는 것을 그 때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사회적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직업, 누구나 인정하는 직업이 변호사라고 생각하고 사법시험에 도전했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했던 그에게 가장 좋은 아르바이트는 고시원 총무였다. 공부할 시간을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고시원을 전전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직장인들이 많은 신사동 고시원에서 총무 생활을 할 때였다. "양복을 입은 직장인이 새로 입주했는데 짐을 들어달라고 해서 들어줬어요. 그랬더니 맥주 한잔 사주겠다면서 불러내더군요. 편의점에서 캔 맥주와 땅콩을 사줬는데 저에겐 그조차도 너무 멋져보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속은 거였죠. 당시 고시원비가 25만원이었는데 그 사람은 100만원짜리 수표밖에 없다며 고시원비 내기를 차일피일 미뤘어요. 그래서 수표를 일단 받고 제가 가진 돈 전부였던 15만원을 먼저 거슬러주고, 나머지는 다음에 거슬러 주기로 했는데 알고보니 그 수표는 위조 수표였고 그는 사라진 후였죠. 15만원은 제게 너무나도 큰 돈이었고,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환멸을 느꼈죠."

공부 여건이 좋지 않다보니 수험생활이 길어졌다. 결국 산전수전을 겪고, 12번의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시 합격으로 가장 좋았던 점을 'LP(Long-playing record)판을 마음껏 살 수 있어서'라고 말할 만큼 김 회장은 소박했다. LP를 듣는 것은 지금도 김 회장의 중요한 여가활동 중 하나다. "고시생 시절에는 LP를 살 돈이 없었는데 변호사가 돼 돈 벌고 나니까 맘껏 살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종로가서 중고 LP도 구하고 인터넷이나 해외에서 구입해서 2500장 정도 모았어요. LP를 듣는 것은 불편한 일에요. 음악을 듣기 위해 꺼내서 턴테이블에 올려야 하고 한면에 대여섯곡밖에 안 나오죠. 하지만 그만큼 집중하게 되고 그 순간은 그 음악이 내 것이죠. 몇 백곡씩 랜덤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저 소비재에 불과하잖아요."

목소리 내도 들어주는 사람 없어 사법시험에 도전
일·공부 병행하기 위해 고시원 총무로 아르바이트
12번 도전 끝에 합격… LP판 살 수 있는 여유 찾아

변호사 생활 10년차를 바라보고 있는 김 회장은 처음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현재 변호사의 위상이 과도하게 추락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누군가의 생명이나 재산을 지켜줄 수 있는 직업입니다. 동네 병원에서도 환자를 낫게 해줄거란 신뢰가 있는 것처럼 변호사도 합리적인 해결책을 줄 것이라는 신뢰를 줘야하는데, 지금 필요 이상으로 변호사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어요. 이것은 결국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법조인이 돼서 누군가를 구속하고 변호하고 판결하는 것은 국민에게도 손해입니다."


그는 제92대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 출신으로 제93대 회장에 당선됐다. 총 투표수 7053표중 2617표(37.1%)를 득표해 다른 후보들에게 '압승'을 거뒀다. 그의 선거전략은 바로 '페이스북'이었다. 비주류였던 그가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파하는데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 페이스북이 선거 전략이 됐죠. 선거운동 당시에 로펌을 방문하면 페친(페이스북 친구)이라며 저를 알아봐주고 반겨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에게는 다른 후보들처럼 대학 동문은 없었지만 페친은 많이 있었던 셈이죠. 페이스북을 통해 저의 주장을 일관되게 보여드렸기 때문에 신뢰를 얻은듯해요."

페이스북은 회장이 된 이후에도 회원들과 소통하는 유용한 창구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회원들의 좋은 제안이나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회장은 선출직인 만큼 유권자의 목소리를 들어야한다고 생각해요. 회원들의 이야기에 일일이 응답하며 경청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회장으로 취임한 지 벌써 4개월을 넘겼다. '변호사법 위반 신고포상금제'를 국내 최초로 실시하고, 손해사정인과 수용재결 브로커, 저작권 업무를 취급하는 특허법인들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직역침해 범죄 근절을 위한 성과를 올렸다. 또 '편법졸업 특혜' 논란을 빚은 제주대 로스쿨을 고발하고 로스쿨 학사관리 엄정을 요구하는 등 법조인 양성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추진하는 한편 '공정사회'를 위한 사법시험 존치에도 앞장서고 있다.

법조계 대학 동문은 없지만 '페북' 친구들은 많아
페이스북 통해 회원들의 제안·비판 목소리 경청
사시존치·회원복지 등 공약 실현위해 동분서주

"사법시험 존치가 주요 공약이었는데, 대법원도 최근 긍정적으로 논의가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히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변호사법 위반 사범도 10여건 고발했죠. 회원의 복지 향상도 신경쓰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상을 당하면 모든 제반 도구를 회 차원에서 제공하고 있고, 법원도서관과 협약을 맺어 종합법률 데이터베이스 '법고을'을 염가로 구매해 무상으로 배포하기로 했습니다. 또 회계연수원을 개설했는데 두시간만에 마감됐을 만큼 인기가 좋았습니다."

서울회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반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반대 등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이 때가 가장 아쉬웠다고 했다. "변호사단체로서 목소리를 내야할 사안이라고 해서 성명을 발표했는데, 결국 박 후보자는 대법관이 됐고, 세월호 특별법시행령은 정부안 그대로 됐죠. 이것이 변호사단체의 한계인가 싶어서 안타까웠어요."

남은 임기 동안 펼칠 그의 계획은 아직 무궁무진하다. "공익전담 변호사 2명을 청년변호사 인큐베이터인 다사랑에 무료로 입실시켰어요. 또 앞으로는 공익소송을 전담하는 법률사무소에 대해 경유회비를 면제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연말에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님 추모 행사를 할 것입니다. 또 로펌의 소속 변호사인데도 구성원 등기를 강요하는 것도 단속할 계획입니다. 로펌들이 퇴사 마지막 한두달치 월급을 안 주거나 퇴직금을 안 주는 문제도 해결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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