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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촌놈' 출신 IP 최고 전문가, 법무법인 다래 조용식 대표변호사

"지재권사건은 추후 분쟁소지까지 완전히 차단해야"


.'특허법원 창립 멤버', '한국 IP(Intellectual Property Right, 지식재산권) 분야 1세대 전문가', '1999년 특허 전문 법무법인을 설립해 IP분야 최고 로펌으로 만든 대표변호사'. 조용식(55·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다래 대표변호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하지만 정작 그는 '흔한 얼굴'을 가진 '촌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과 친근한 인상, 수더분한 말투는 상대방의 경계심을 순식간에 허문다. 넉넉함과 소탈함으로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범상치 않은 면모가 느껴진다. 업무에는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과 IP분야 1인자의 냉철함을 겸비한 조 대표를 지난달 30일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조용식(55·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다래 대표변호사는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한다. 하루에 버스가 두 대 밖에 다니지 않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가려면 산을 하나 넘어야 했어요. 매일 6㎞, 그러니까 15리를 걸어다닌 셈이죠. 덕분에 지금도 산을 오르내리는 건 누구보다 잘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한 '농사'는 빠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하루는 소를 산에 매어놓고 친구들과 강에서 물장난을 하며 놀았는데, 나중에 소를 찾으러 갔다가 피곤해서 옆에 누워 잠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될 때까지 너무 깊이 잠이 들어버려 온 동네 사람들이 저를 찾으러 온 적도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때 경북 월성군 산덕면으로 이사를 했다. 동네의 반은 농사를 지었고 반은 장사를 했다. "제가 살던 집이 초등학교와 담을 같이 썼는데, 제가 농사일을 돕고 있으면 같은 반 친구들이 축구하고 노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죠. 그 소리 들으면서 저렇게 실컷 놀아봤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조 대표는 농사가 너무 힘들어 '공부하는 게 제일 쉽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훗날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한양대학교 법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해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4년 동안 학교에서 여러 모로 배려를 해줬습니다. 기숙사에 방도 마련해주고, 장학금도 주고, 사법시험 준비에 최적화된 여건을 만들어 주었죠. 활발한 성격이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4년 동안 시험 준비 외에 다른 것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법조인, 그 중에서도 판사를 꿈 꾼것은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막연한 동경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꿈이 판사였습니다. 판사가 어떤 사람인지 본 적도 없었지만 사법시험 합격한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고 그 중에서도 판사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경북산골서 어린 시절… 힘든 농사 싫어 공부 매진
동경의 대상은 판사… 25회 사시합격으로 꿈 이뤄
해외연수 테마로 '특허' 선택… 日 재판과정도 참여

대학 재학중이던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해군법무관을 거쳐 1989년 대구지법 판사로 임용됐다. 산골 소년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그가 IP(Intellectual Property Right, 지식재산권)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7년 대구고법 판사 때이다. 해외연수 기회를 얻은 그는 당시 연구 테마로 평소 자신이 가장 어렵게 생각했던 '특허'를 선택했다. 그리고 일본 도쿄(東京) 고등재판소 특허전담 재판부에서 연수를 했다. 일본의 특허전문 판사들과 같이 재판에 들어가고 합의 과정에도 참여했다. 동경대 법학부 객원연구원을 병행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이런 경험 덕분에 1998년 신설된 특허법원 1호 판사로 발령받았다. 하지만 재직 2년만에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일본에서는 지재권 분야 부장판사들이 15년씩 같은 분야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2년만에 전보를 시키니까 지재권에 대한 전문성을 쌓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벤처 창업 열풍이 불었고, 한국에서 지재권이 점점 더 중요한 분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과감하게 법복을 벗고 변호사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99년 특허법원에서 같이 근무하던 박승문(56·13기)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다래를 설립했다. '친구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법인 이름을 친숙한 이미지의 '다래'로 정했다. '머루'와 '다래'는 누구나 아는 친근한 단어이니 기억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단다.

2년만 지나면 인사이동… IP 전문성 쌓기 힘들어
신설 특허법원 1호판사, 재직 2년 만에 변호사로
'다래'설립 10년안돼 IP분야 대표로펌으로 성장
 
조 대표는 그동안 맡은 수많은 사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으로 삼진식품의 '찰떡 초코파이 사건'을 꼽았다. "찰떡은 쉽게 딱딱해지고 부패해서 오래 못 가는 음식이죠. 그런데 삼진식품에서 방부제를 넣지 않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찰떡을 개발해 히트를 쳤습니다. 그러자 대기업들이 뛰어들어 찰떡 초코파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찰떡을 이용한 초코파이라는 게 특허를 인정받기 까다로운 품목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의 권리로 주장하기도 힘들고요. 5년에 걸친 소송 끝에 마침내 특허침해 판단을 받을 수 있었어요."

2003년에는 1g당 11억원에 달하는 일본 제약회사의 백혈병 치료제의 특허등록을 무효화해 국내 기업들을 수백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위험에서 구해냈다. 일본 제약회사의 특허가 무효라는 특허법원의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 환송했지만, 다래는 파기환송심에서 재차 특허무효를 주장하고 입증해 결국 대법원에서 특허무효 판결을 이끌어냈다. 2011년에는 국내의 한 대기업을 대리해 독일의 유명 발광다이오드(LED) 제조회사 오슬람과의 특허전쟁에서도 승리했다.

조 대표는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국민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일조할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사회정의 실현, 인권보장을 꿈 꿀 것입니다. 지재권 변호사들도 정당한 권리를 지킴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백억원의 가치가 있는 지재권을 지켜냄으로써 국내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다른 변호사들이 못 느끼는 보람도 느낄 수 있죠."

 
법무법인 다래는 설립한지 10년도 되지 않아 IP분야 대표 로펌으로 성장했다. 16년 전 변호사 2명과 변리사 2명, 직원 6명으로 출발할 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지식재산권이라는 단어조차 국내에서 생소하던 시절에 'IP 전문'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일반 민·형사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이 거의 없었다.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민·형사 사건이 필요한데, 사건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중소기업의 고통을 느꼈죠. 서비스의 질로 승부할 수 밖에 없었어요."

10명으로 시작한 작은 로펌이었지만, 특허 등 지식재산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자 돈이 되는 IT 테크놀로지 시대의 붐을 타고 다래는 불과 4~5년만에 자리를 잡았다. 2009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지적재산권 침해 손해배상소송은 173건에 불과했지만, 2010년 289건, 2011년 634건, 2012년 2467건, 2013년 3143건으로 크게 늘었다. 5년새 1700%나 폭증한 것이다. '세기의 소송'으로 불린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특허분쟁 등 글로벌 기업들은 지금 특허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IP 분야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11월 국내에도 특허·저작권 등 지적재산권 분야 변호사들의 모임인 한국지적재산권변호사협회가 창설됐다. 조 대표가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재권 사건은 단순히 방어에만 머물지 말고 추후 분쟁의 소지까지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변호사의 역할입니다. 지재권 전문 변호사들끼리 지재권 관련 이슈 등에 관해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국내외 관련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확대해 우리나라 지적재산권 분야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법률시장 최종개방을 앞둔 상황에서 조 대표는 '상호보완과 협력'을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재권 분야는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로펌들의 주력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다래는 외국로펌들과 경쟁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 또는 협력 관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국내 대형 로펌들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죠. 외국로펌에서 케이스에 따라 다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내외 전문가 교류확대 위해 지재권 협회 창설
법률시장 최종개방 '상호보완과 협력'으로 대응
"업무와 일상은 분리… 그래야 인간으로서 행복"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조 대표는 '백문이 불여일행(百聞 不如一行)'이라고 답했다. 변호사는 실무가이기 때문에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사건을 처리해보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제가 변호사를 시작할 때는 전문 변호사가 없었기 때문에 공부를 별로 하지 않고 또 실무경험이 적어도 전문가 소리를 들었어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10년 이상은 경험을 쌓아야 전문가로 인정 받을 수 있죠.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점에 먹이가 많듯 융합된 분야에서 변호사의 새로운 먹거리도 나오는 것입니다. 기존의 업무영역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그 분야의 전문 변호사가 됐으면 합니다."
조 대표는 '친구 같은 변호사'를 강조했다. "후배 변호사들이 친구같은 변호사가 됐으면 합니다. 동료간에도, 의뢰인에게도 친밀감을 줬으면 해요. 의뢰인들은 아직도 변호사의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고 거리감을 갖고 있거든요."
조 대표의 인생철학은 '업무와 일상의 분리'다. "전문가로서는 1%만 부족해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할 때는 완벽을 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아요. 저는 촌놈이라 먹는 것도 대충 먹고, 격식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업무와 일상을 분리할 때, 변호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글=신지민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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