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라운지

[법조라운지] 여성·아동 인권의 '代母'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사회봉사 열심히 했더니 아이들은 사회가 키워 준 것 같아"

미국변호사
  법조계에도 남성보다 여성 법조인이 돋보일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이를테면 모성과 여성의 눈길로 살펴봐야 하는 여성·아동 성폭행 사건에서 그렇다. 소년사건이나 가사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여성과 아동, 장애인 성폭행 사건이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된 것은 시민·여성단체와 언론의 힘이 컸다. 재야법조계에서는 이명숙(51·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의 역할이 눈에 띈다. 지난 1월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에 뽑혔다. 그는 '엄마'의 감수성으로 여성과 아동의 인권 신장에 힘을 기울였다. '돈 안 되고 품만 많이 드는 공익 사건'을 많이도 했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도가니' 사건과 조두순 사건에는 이 회장의 땀이 배어 있다. 국내 최초로 아내에 대한 강제추행치상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일에 빠져서 정작 자신과 두 딸에게는 소홀했다. 지난달 17일 서초동 법무법인 나우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아이들은 사회가 키워준 것 같아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7일부터 여성 몫의 당연직 대한변협 부협회장으로도 일하게 된다.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최근 '울산 계모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의 진상조사단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여성 변호사 165명과 함께 공동변호인단을 꾸렸다. "아이의 갈비뼈가 16개나 부러지고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는 등 조사 과정에서 접한 학대사실은 잔혹하고 끔찍했어요. 화상을 입은 사진을 여성 변호사들에게 보내 사람을 모았더니 지원자가 줄을 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6명은 서면을 쓰면서 재판에 참여하고 다른 분들은 공동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어요."

이 회장은 그간 공익사건을 다루며 쌓은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진상 규명에 나섰다. 가해자는 아이가 샤워를 하다가 화상을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친분이 있는 서울대 교수에게 사진을 보내 "대야 등에 있는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들은 뒤, 사인을 진단한 한강성심병원 의사에게 의견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도가니 사건' '조두순 사건' '아내 강제추행' 등
대부분 성폭력·아동학대·성매매관련 사건 맡아
사건 끝날때 마다 기대한 새 정책 없어 아쉬움

이금형 당시 광주지방경찰청장의 부탁으로 도가니 사건을 맡았을 때도 성폭력, 아동학대, 성매매 관련 사건 피해자를 변호하면서 10년 넘게 친분을 쌓은 유관기관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정신과 전문의인 신의진 연세대 교수는 일관되지 못했던 아동의 진술을 보완해 주었고 아동의 트라우마로 인한 상해를 밝혀냈다. "당시 청각장애인이었던 아동과 밤새도록 메신저를 주고받았지요. 소파와 의자를 구분하기 어려워 해 사진을 보내주며 정확한 진술을 이끌어내기도 했죠."

 
그는 그런 사건을 끝낼 때마다 아동 학대에 대한 새로운 정책 대안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의 고생에 답하지 않았다. 조두순 사건을 맡아 국가배상판결을 받아낸 지 5년이 지났지만 후속 정책들이 자리를 잡는 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음주로 인한 형의 감면이 없어졌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어요. 당시에 144개의 법이 국회에 제출됐다고 하는데 통과된 건 거의 없지요. 이것이 현실입니다. 정부에서 토론회도 열고 대책도 발표했지만 이후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같은 사건이 반복됐어요."

KBS 라디오 '이명숙 변호사의 가정법원' 5년 진행
가장 많은 법조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으로 손 꼽혀
드라마 '사랑과 전쟁' 탄생에 한몫… 조정제도 알려

 
여성·아동인권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24년간 이혼을 비롯한 가족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덕분이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한 한국방송(KBS) 제2라디오 '이명숙 변호사의 가정법원'은 외부 전문가가 가장 오래 진행한 방송 프로그램이자 가장 많은 법조인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이후 피디와 작가가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며 찾아오는 바람에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고두심 씨 같은 분을 주인공으로 해 여성 법조인의 활약을 그리고 싶다길래 그러지 말고 조정제도를 소재로 해서 양쪽 입장을 들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어요. 사랑과 전쟁은 정이 많이 가요. 제가 진행한 라디오로 시작해 자리를 잡은 데다 국민에게 조정을 널리 알리고 공평하게 양쪽 입장을 보게 했잖아요. '사랑과 전쟁 찍냐', '4주 후에 만납시다'가 유행어가 됐고요."

이혼, 가정폭력, 성폭력, 간통 사건 등을 숱하게 다뤄온 전문가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도 문제점을 짚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진단해낸다. 최근에는 시청률 47.3%를 기록한 KBS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제작진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만취상태인 아내를 강간해 임신하게 하는가 하면, 둘째 딸에게만 궂은 일을 시키고, 때리는 장면도 나와요. 아내강간, 간통, 협박과 감금,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와 가정폭력까지 아주 '골고루' 들어있는 드라마에요. 단순히 자극적인 요소만 담아낼 뿐, 해결책을 보여주진 않았어요.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 중인 한 의뢰인은 아내 강간 장면을 보며 '죽고 싶을 만큼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하더군요."


 

일터에서는 열혈 변호사이지만, 자녀들에게는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 늘 미안한 엄마다. 15년 전 이혼의 아픔을 겪은 그가 일과 가정을 조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올케가 같은 아파트 위, 아래층에 살면서 아이들의 엄마가 돼 줬어요. 퇴근이 늦으니까 올케가 밥도 챙겨 먹이고 잠도 재워준 거죠. 한 사람의 전문직 여성이 일에 매진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주말이 문제였다. 주말에도 개인 사무실에 나와 산더미처럼 쌓인 기록을 보고 서면도 써야 하는데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주말 아침 일찍 간식과 장난감을 잔뜩 사서 자신이 다니는 서울아동복지센터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사무실로 향했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데리러 가니 하나님이 온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뛰어오더라구요. 여기저기 할퀸 자국도 있고요. 막내는 겨우 4~5살 때인데 돌아갈 집이 있어서 감사하고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했어요. 이웃에 대한 이해도 커져서 얼마 전 큰 아이가 대학 입학 에세이 주제로 '사회적 약자'에 대해 쓰기도 했죠."
 
 
이혼사건을 맡았다가 전과 35범인 의뢰인의 남편에게 '왜 남의 가정을 파탄내느냐'며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길래 '내가 당신에게 죽도록 운명지어졌으면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못해준다'고 했더니 아이들을 들먹이며 협박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괜찮은데 아이들은 안되겠더라구요. 2주만에 아이들을 중국의 기숙학교로 유학 보냈습니다." 그 때부터 4년 동안 금요일 저녁이면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향했고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비행기 안에서 서면을 쓰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혼사건 의뢰인 남편 협박에 아이들 중국유학 보내
4년 동안 주말 해후… 아이들과 가장 많이 보낸 시간
"자기를 더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았으면"

'바쁜 엄마'이다보니 아이들을 방임했지만 잘 자라주어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무료소송으로 사회에 봉사한 것이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저는 돈 계산도 잘 못해요. 사정이 딱한 분들은 수임료를 무료로 했어요. 사건이 다 끝났는데 2년 만에 연락해 저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분들도 있고, 몇 년동안 과일을 보내주는 분도 있어요. 아이들을 방임해서 키워도 이런 마음들이 아이들을 잘 되게 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후배 여성 변호사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자기애와 배려를 강조했다. "너무 일에만 파묻혀서 살지 말고 자기를 더 위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여행도 가고 자신도 가꾸면서요. 인간에 대한 배려도 중요해요. 이혼소송을 많이 하면서 겉으로는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좋은 스펙과 좋은 직장이 전부가 아니에요. 스펙만 좋고 영혼이 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여성변호사회장으로서 후배들을 위한 멘토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저는 법조계에서 좋은 선·후배, 동료를 많이 만난 점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후배들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공익소송도 가르쳐주고 법조계뿐 아니라 사회 다방면에 대해서도 가르쳐주고 싶어요."

<글=박지연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종합법무관리솔루션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