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최승재 변호사의 변호사뎐(傳)] 변호사와 법치주의

법을 의미하는 2개의 단어

언어적으로 법은 영어의 statute, 독어의 Gesetz, 불어의 loi와 같은 유형의 단어와 영어의 law, 독어의 Recht, 불어의 droit와 같은 유형의 단어로 나뉜다. 차이가 뭘까. 법이라는 단어는 하나만 있으면 족하지, 왜 2개의 단어를 가지고 있을까.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 3국의 이러한 단어의 용례는 기본적으로 의문을 가지게 한다. 이와 달리 필자의 아둔함 때문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법(法)이라는 단어로 양자를 모두 표현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독일 민법은 Zivilrecht인데, 독일 부정경쟁방지법은 Gesetz이다.
왜 2개의 단어가 있을까 하는 문제에 답을 하려면 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법은 시민사회의 구성원에게 규범을 부여하고, 사회에 질서를 부여한다. 이런 규범력의 근거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국회는 어떤 법을 만들어도 법이 되는가. 그렇다면 국회의 위임을 받아 만드는 시행령은 위임을 받았으므로 어떤 내용으로 만들어져도 규범력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없는가. 법을 법으로 만드는 기본정신(基本精神)이 담겨있어야 법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변호사라면 해보았을 것이다. 필자는 법에서 정신을 빼고 나면 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2개의 단어로 구성된 법이라는 단어들은 서로 다른 2개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들 단어들의 존재는 법은 국회에 의해서 법형식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와 법의 원리적인 측면을 의미가 구별된다는 점, 그래서 법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법의 정신 내지 권리라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다.

법의 범람(氾濫)과 법형식의 남용(濫用)

원칙적으로 법이 규범력을 가지는 정당성의 원천은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기관인 국회에서 제정되고 개정되었다는 점에 있다. 국민이 선출하였다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출된 민복(民僕)의 현명함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국민이 부여한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능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런데 법(法)이 법(法)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의 법이 뒤의 법이 되기 위해서는 법의 정신이 법의 원리가 그 법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천으로 기능하여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1748년 "정체의 원리가 일단 타락하면 최선의 법도 나쁜 법이 되어서 국가에 대해 역작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원리가 건강하면 악법(惡法) 조차도 좋은 법이 되는 효과를 가지는 만큼 우리는 원리의 힘이 전체를 이끄는 것을 알 수 있다."(법의 정신, De l'esprit des lois 8편 11장 357면)라고 말하였다. 법은 어느 면에서 중립적인 도구이다. 그러나 제도 설계의 결과물인 법은 대상이 되는 제도를 담아내면서 그 제도 설계자의 정신과 혼(魂)을 담아낸다. 몽테스키외가 강조한 원리가 바로 법의 정신이다. 그는 이 법의 정신이 건강해야 하며, 그 정신이 법의 운용에 반영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타당한 원리가 법을 관통하면서, 법의 기초가 튼튼하게 원리적으로 지지하고 있어야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다수는 법을 형식적으로 보아, 법(Ein Gesetz)이란 일반적으로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기관(입법자)에 의해서 형식적인 절차에 따라 제정된 구속력을 가진 규범형식의 총합이라고 이해하곤 한다. 이런 눈으로 보면, 법은 무엇이든 국회에서 글자로 법이라는 형식으로 적기만 하면 법이 된다고 보게 되고, 법문만이 남아서 언어적인 의미를 궁구하는 작업이 법률가의 일이 된다. 이런 접근법은 형식적 법치주의(形式的 法治主義)의 문제를 만들어내며 법의 범람(氾濫)과 법형식의 남용(濫用)을 초래하게 된다.

변호사와 법치주의

변호사에게 법이 가지는 의미는 법전에 존재하는 그 무엇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 현행법령집은 변호사가 일생을 두고 읽어도 다 읽기 어려운 만큼의 분량이 되었다. 시도를 한 변호사가 있다고 해도 다 읽었다고 생각할 때 쯤 또 개정될 것이니, 애초에 다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변호사가 법치주의에서 기여하는 것은 개별법의 법문을 정확히 암기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진정한 규범력을 가지게 하고, 그렇지 않은 법은 법의 세계에서 퇴출시킴으로써 진정한 법이 사회공동체를 규율하는 실질적 법치주의(實質的 法治主義)를 구현하는 것에 있다. 우리 헌법은 이런 차이를 인식하고 있고, 형식적 법치주의의 범람을 막고 실질적 법치주의가 달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소를 창설하고 변호사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설립 25주년이 얼마 전에 지났지만 변호사들의 실질적 법치주의 구현을 위한 노력은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