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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법조라운지] 김앤장 파트너에서 학계로… 신희택 서울대 로스쿨 교수

"연수원 수석졸업 후 로펌으로… 이제는 후학양성에 보람"

신희택(61·사법연수원 7기)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엘리트다. 엘리트가 넘쳐나는 법조계에서도 알아주는 엘리트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했다. 하지만 그는 엘리트들이 가지 않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사법연수원 수료생 대부분이 판·검사를 선호하던 시절 과감히 로펌행을 택했고, 국내 최고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다가 다시 자리를 박차고 홀연히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로펌 발전과 글로벌 로이어(Global Lawyer) 양성에 밑거름이 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 교수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국제중재센터가 문을 연 다음날인 28일 서울대 로스쿨에서 그를 만났다.



법률가로 사회 기여하고 싶어 변호사 길로
주변 반대 많았지만 용기 내 '김앤장' 결정
유학 후 기업법무 전문… 법정엔 서 본적 없어


#첫 번째 모험. 사법연수원 수석 수료 후 김앤장 행(行)을 택하다.

신희택(61·사법연수원 7기·사진) 교수는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52년 8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가 부산에서 군의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3살 때 서울 인사동으로 이사를 와 서울 토박이나 다름없다. 성품도 세련됐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말은 부드럽고 신중하지만 힘이 있다고 말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침착하고 진중하면서도 농담을 얹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의 발자취를 들여다 보면 두 번의 큰 모험이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50명 남짓이던 70년대에는 연수원을 마치면 대부분 법원이나 검찰로 갔다. 하지만 서울법대와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수료한 그는 당시만해도 변호사 10명의 소규모 벤처 로펌이었던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갔다. 첫 번째 모험이다. 전화로 '김앤장 법률사무소입니다'라고 소개하면 '김현정 법률사무소요?'하는 물음이 돌아오던 때다. 설립자의 성을 딴 미국식 로펌 이름이 익숙하지 않던 때였고 변호사보다는 판·검사가 선망의 대상이던 때였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로 한창이던 1970년대 말, 연수원을 나오면 막연히 법원·검찰을 가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법원과 검찰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이 가니까 상대적으로 인재가 부족한 민간 부문을 성장시키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어요(웃음). 법률가로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연수원을 수료한 뒤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군법무관 생활을 했던 것도 로펌으로 진로를 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국가 예산을 놓고 외국 기업들과 협상하는 일을 맡았는데, 협상을 잘하면 예산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거래 분야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영어로 협상을 해 국제차관을 유치하는 경험을 통해 그는 "국제거래 분야가 앞으로 유망하고 보람 있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반대가 많았지만 일 자체가 재밌고 보람이 있을 것 같고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에 용기를 내서 김앤장 행을 결정했다.

그가 변호사로 일한지 3년째 되었을 때 사무실에서는 인재에 대한 투자를 단행했고 신 교수는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20명 규모의 회사에서는 상당한 부담이었을텐데 큰 결심을 하고 3명이나 유학을 보내줬습니다. 국내 로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변호사로 일을 해본 뒤 떠난 유학이기에 어느 분야를 공부해야 할지 명확했고 귀국한 뒤에는 배운 내용을 곧바로 회사에 적용했다. 사무실에서는 각자 한 분야를 전문화하고 힘을 모아 일을 했다. 잘 나가는 변호사였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27년간 단 한 번도 법정에 서본 적이 없다. 기업법무를 전문화해 송무는 맡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국내 20대 로펌 대표변호사가 뽑은 이 시대 '최고 전문 변호사 12명'에 포함되기도 했다.

로스쿨 도입 산파역할… 책임감에 대학교로
갑작스런 진로 변경에 주변에서 많이 놀라
27년간의 실무경험 다음 세대 밑거름으로


#두 번째 모험. 국내 최고 로펌의 선임 파트너 변호사, 학계로 진출하다

잘 나가던 김앤장 변호사에서 돌연 로스쿨 교수로 진로를 바꿨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파트너 변호사로서 김앤장의 경영에도 참여하던 터라 신 교수도 주변의 반응만큼 마음에 부담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로스쿨제도 도입의 산파역을 했던 그가 갓 태어난 제도의 보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그는 새교육위원회 산하 대학위원회 위원 10명 중 한 명으로 참여하며 법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을 검토했다. 그 뒤 2007년 7월, 로스쿨 법안이 통과되면서 법조인 양성체제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다.

"오랫동안 논의돼 온 로스쿨이 막상 도입되니 초기에 로스쿨 교육에 대한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쉰다섯이었어요. 로스쿨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기여하고 싶었고, 마지막 10년은 27년 간의 실무경험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학교로 간다는 그의 결정에 신 교수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흔쾌히 받아들였다. 결정을 전하기 가장 어려웠던 건 사무실 동료들이었다. "처음 10명 남짓으로 시작한 로펌이 국내 최고의 로펌이 됐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데, 그만둔다고 하니 선후배들은 섭섭한 감정과 배신감도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최선을 다했고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여러 기회가 주어졌던 것을 로스쿨 체제가 시작되는 시기에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습니다."

교수의 길을 걸은 지 5년이 된 지금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고 있다.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는지 묻자 "오랫동안 교육에 몸담으신 분들께 외람될 것 같다"면서 조심스레 자신을 농부에 비유했다. "저는 지금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학생들을 잘 길러서 사회 각 분야에 진출시키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을 확실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서울국제중재센터 운영위원장 직도 맡아
첫 번째 목표는 동북아지역 국제분쟁 유치
"성공한 변호사의 요소는 법지식보다 지혜"


#서울국제중재센터 정착에 앞장서

신 교수는 지난달 28일 개소한 서울국제중재센터의 운영위원장이다. 그는 "국제중재인들이 서울국제중재센터에서 중재심리를 한 뒤 편리한 교통과 센터의 최첨단 설비에 대해 소문을 내기 시작하면 우리나라도 각광받는 중재지가 될 것"이라며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초반의 부진을 씻고 지금의 명성을 얻은 싱가포르의 맥스웰챔버(Maxwell Chamber)처럼 우리도 인내심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 기업 간의 분쟁을 비롯해 동북아 지역의 국제분쟁 유치를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다. "중재센터 설립과정에서 만난 동북아 법조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중국과 일본, 러시아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서울이 이상적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굳이 싱가포르까지 갈 필요 없이 더 가까운 중립장소인 한국에서 중재 심리를 하기를 원하는 것이죠." 우리나라가 대륙법계 국가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영미법계 국가인 반면 우리나라는 대륙법계 국가입니다. 국제중재인들은 중재장소가 한 곳 더 늘어났으니 영미법계 국가와 대륙법계 국가를 감안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신 교수는 올해 2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중재재판장이 됐다. 미국계 유리병 생산업체인 오언스일리노이와 베네수엘라 정부 간의 투자자-국가소송(ISD)의 중재재판장을 맡았다.

#내 이름은 하이택(?), 취향도 하이테크!

그는 오래 전부터 이름의 영어표기를 'Shin, Hi Taek'로 써오고 있다. 이 때문에 유학시절 친구들은 신 교수에게 인사를 두 번씩 하곤 했다. "'희'자를 'Hee'로 쓰면 괜히 '헤벌쭉한' 것 같아서 'Hi'로 썼어요. 그런데 외국 친구들이 '하이 하이(Hi! Hi!)'해서 '왜 인사를 두 번 하냐'고 했더니 처음 하이는 인사고 두 번째 하이는 내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엔 외국인들에게 제가 먼저 '하이택'이라고 소개하는데 하이테크(hightech)가 연상돼 각인이 되고 재미있어 합니다."

회갑을 넘긴 나이지만 그의 취향은 이름처럼 최첨단(하이테크)이다. 락밴드 국카스텐과 노브레인의 음악을 즐겨듣는다.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노브레인을 처음 보고 '아 정말 잘한다, 아주 시원하다'고 생각했고 아내의 권유로 조용필의 '바운스'를 따라 듣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재밌게 봤고 음악의 여운도 오래 갔어요. 첫 장면 나올 때부터 아주 압도돼서 영화를 보고 프랑스혁명사를 다시 읽었는데 여운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법지식보다 지혜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검색만 하면 웬만한 법지식은 얻을 수 있어요. 누군가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할 때 '신교수와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떠올리고,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쌓은 지혜를 나눠줄 수 있다면 변호사로서 성공한 것이라고 봅니다."

<글=박지연 기자, 사진=백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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