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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법조라운지] 다시 野人으로… 송두환 前 헌법재판관

"공직에 임명된 이후는 누구로부터도 자유로워야"

미국변호사
지난 1월, 헌법재판소는 이강국(68·사시 8회) 전 소장 퇴임 이후 후임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헌정사장 두번째로 소장 공백사태를 맞았다. 소장이 없는 헌재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은 임기를 불과 두달 남긴 송두환 헌법재판관에게 넘어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관습법에 대한 위헌심판권은 헌재가 가진다'는 결정을 내리는 등 흔들림 없이 헌재를 이끌었다. 제4기 헌재의 마지막 재판관인 그는 퇴임식에서 "헌법재판관 공백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생길까 우려스럽다"는 말을 남겼다. 그를 다시 만난 건 퇴임한 지 한달여가 된 지난달 29일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오후, 그는 "멀지 않은 거리라 전철을 타고 왔다"며 웃는 얼굴로 서초동 법률신문 사옥에 나타났다.


法大진학 후 학회활동 통해 사회의식 눈 떠
공군장교로 복무 후  長考 끝에 考試 공부
31살에 司試 합격… 법관 8년 후 변호사 길로


송두환(63·사법연수원 12기·사진) 전 헌법재판관은 공부 잘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서도 반드시 법조인이 되겠다고 목표를 정하지는 않았다. 대다수의 법대 동기들과 달리 그는 '비고시파'였다. "저는 가급적 제 진로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법조인이 되겠다는 뜻을 세우지는 않았지요."

대학 진학 후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것은 사회법학회 활동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인생의 큰 물줄기를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하느냐에 있어서 학회 활동이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고의 방식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행로도 달라지지잖아요? 아주 중요한 분수령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일정한 영향을 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회 활동을 통해 사회의식에 눈을 뜬 것이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부 생활을 마친 그는 공군장교로 군입대했다. 장기 복무를 마치고 나니 스물 일곱이었다. 장고 끝에 그는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다른 진로를 택하는 데 부담도 컸고 법조인이 될 거라는 부모님의 기대도 저버리기 어려웠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적성에도 맞았다. 특히 헌법 이론을 공부하는 데 흥미를 느꼈다. 학회 활동을 하며 '고시파'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 그로서는 새 세계를 맞이한 셈이었다. 1980년, 그는 서른 한 살에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을 마친 그는 법관을 지원해 서울북부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법관생활을 하다보면 법률가로서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8년 동안 법관 생활을 하고 변호사 개업을 한 그는 2000년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을 맡으면서 재야 법조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우연히 인연이 닿았다. 2003년 대한변호사협회 추천으로 김대중 정부 대북송금 사건 특별검사를 맡게 된 것이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노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노 대통령은 법안을 수용했다. 대신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김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사실을 모른다고 부인한 상태에서 대북송금을 '통치행위'로 볼 여지가 없어 특검법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진 데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송 특검 입장에서는 노 대통령의 연장신청 거부는 아쉬움이 컸다. "확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사의 단초로 삼을만 한 흔적을 발견한 이상 수사를 연장해서 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률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나중에 돌이켜보니 연장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것이 법률적인 문제를 뛰어넘은 정치적인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내가 합리적 근거를 두고 연장신청을 했지만,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겠구나 생각했어요."

민변회장 맡으며 노무현 前대통령과 인연
'대북송금 特檢' 활동 후 헌법재판관으로
'노대통령 선거중립 위반사건'주심도 맡아


이 때 노 전 대통령이 눈여겨 본 덕인지, 그는 2007년 제4기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사건과 행정수도 이전 위헌심판 사건 등을 처리하면서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시기였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재판관으로 지명한 노 전 대통령의 선거중립위반사건의 주심을 맡았다. "특별히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다만 대통령이 당사자인 사건이었고, 결과에 따라서는 정치적·사회적 의미가 크니까 아무래도 신중하게 다각도로 검토하고 고민했지요."

정권이 바뀐 후에도 미디어법 관련 국회 권한쟁의 심판 등 정치적인 이슈가 섞인 사건들을 심판하는 일은 꾸준히 이어졌다. "우리 헌법을 보면 4장에 정부, 5장에 법원, 그리고 독립된 별개의 6장에서 헌법재판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입법부나 행정부, 사법부를 통틀어서 국가기관에 의해 헌법의 정신과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 바로 헌법재판입니다. 헌법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가 헌법재판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성격을 내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민변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는 재야 법조계와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재판관으로 인식됐다. 이 때문에 2010년 사형제에 관해 합헌의견을 냈을 때도 의외라는 반응이 쏟아졌지만, 그는 소신껏 의견을 펼쳤다. "제가 어떤 기대를 받고 있는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임명되는 순간 나를 임명한 사람이 누군지, 내가 소속했던 단체가 어디였는지로부터 자유로워져야죠."

그는 사형제에 대한 소신은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합헌의견을 냈지만, 보충의견을 달았어요. 사형제 폐지론에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극단적인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제를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다만 사형제를 운영하면서 사회적 법익이나 국가적 법익을 침해한 범죄에 대해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조문들은 삭제해야 옳습니다. 아마 민변 회원들을 모아놓고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길 한다면 의견이 갈리고 토론이 가능할 겁니다. 단정하기가 어려운 문제죠."



헌재의 재판관 공백사태 자체가 '위헌 상황'
더러 있을 수 있는 일로 인식될까봐 걱정
이제는 재야 법조인으로 공공이익을 염두에…


송 재판관이 활동한 4기 헌재는 유난히 재판관 공백사태로 어려움을 겪었다. "우려라고 할 수도 있고 두려움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공석인 헌법재판관 자리가 하나냐 두개냐를 떠나 공석이 생겼다는 그 자체로 위헌인 상황인데, 더러 있을 수 있는 일로 인식될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새 헌재소장 후보자와 송 재판관 후임은 그가 퇴임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3월 21일에야 겨우 정해졌다. "지금 상태로는 재판관 임기만료로 인한 교체기가 되면 언제든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어요.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으로 선출 경로가 나뉘어져 있는데, 인선을 통합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출신으로 헌재를 구성한다는 면에서도 지금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해요."

재판관 선출방식에 관한 문제 제기는 자연스럽게 헌재 구성의 다양성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헌법재판관을 하면서 각자 서로 성의를 다해 진정어린 토론을 하면 모든 문제에 대해 하나의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온 경험과 그 생각, 농축해온 생각의 방향에 따라 아무리 진정어린 토론을 오래해도 최종적인 결론은 일치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도 있다는 것을 여러 사건에서 느꼈습니다. 지금 헌재를 구성하시는 아홉 분이 개개인으로 보면 다들 훌륭한 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국가 전체 차원에서 보자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 사회가 일류대학을 나와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엘리트로 성장한 사람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불교신자인 그는 퇴임 이후 전국의 산과 사찰을 여행했다. 퇴임하면 한 달은 '무념의 상태'로 쉬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 그동안 못만난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자유인으로서의 생활을 만끽했어요. 이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서 유익한 활동을 할만한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할 차례입니다. 요즘에 문제가 되고 있는 형태로서의 재야 변호사가 아닌, 공공의 이익을 항상 염두에 두고 활동하는 재야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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