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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내가 쓴 책] '한국 가족법 읽기'

양현아 교수(서울대 로스쿨)

새해 설 무렵 세상에 나온 이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 호주제폐지 등 최근 한국 가족법의 변화양상에 대한 글을 묶은 이 책은 모두 4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사계절 열 두 달을 맛볼 수 있다고나 할까. 도시의 마력을 내뿜던 뉴욕시에서 필자는 페미니즘과 법학에 눈을 떴고, 지구 건너편에서 한국학(Korean Studies)을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필자는 어머니와 조상을 거스르지 않는, 아니 그들에게 말을 거는 그런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학문적 산물이 나오려면 돈과 시간, 걱정거리에서 벗어날 자유,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시각이 필요하기에 필자는 왜 소수자 담론(minority discourse)이 그리도 드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 가족법을 '통해 보는' 한국사회, 한국가족, 한국의 전통문제를 읽는 여성주의 사회학 연구라 하겠다. 이렇게 학제적 접근(interdisciplinary approach)를 통해 한국 가족법을 분석하고자 했던 점이 기존 한국 가족법 연구서와의 차별성이라 할 수 있다.

제1부에선 이 책의 이론적 기초와 구성을 밝히고 있다. 공사 이분법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 및 '평등과 차이'의 변증법 속에서 전개된 서구의 페미니즘 법학을 고찰하면서 한국에서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즘 법학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제2부에서 식민주의 유산과 한국의 '관습'과 '전통' 문제를 다루면서 전통과 관습 개념의 구성주의를 택하고 식민지시기 관습이라는 역사적 미로(迷路)를 되짚어간다. 이 때, 조선시대를 식민지시기 이후에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로서의 조선시대가 아니라 사회적 구성으로서의 조선시대라는 인식을 나타낸다.

제3부는 1945년 이후 해방정국과 민법 제정 이전의 가족법의 상황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하여 1950년대 민법 제정과정을 살펴본다. 특히 '동성동본불혼' 규정의 심의 과정에 관한 국회속기록을 분석한다. 계속 1960-1980년대의 가족법 개정운동의 끈질긴 역사를 살펴본다. 특히 이태영 변호사가 불을 놓아서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한국 가족법 개정운동은 2005년 호주제 폐지에 의해 역사의 한 장을 마감하게 된다.

제4부에서는 가족법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꾀하고 있다. 남성으로 읽기로 되어 있는 법문을 여성으로 읽으면 어떤 의미가 생성될까. 한국여성들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할머니로서, 또 이외의 수많은 위치에서 혈족, 친족, 가족 등과 같은 여러 층위의 '가족'에 속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녀들은 가족제도상 중심적 지위를 가지지 못하는 주변인인데, 이 주변성은 특히 '어머니의 비어있는 피' 즉 모계구성의 곤란함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진단한다. 한편 법정부부재산제도인 부부별산제는 동등한 경제주체로서의 부부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양성평등한 제도의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사사로운 보살핌 역할을 하는 대다수 여성들의 경제생활을 화폐경제 바깥에 놓는 장치이다. 이상과 같은 분석을 통해 한국 가족법에서 여성들의 위치와 주체성은 때로는 조선시대에, 때로는 식민지시대에, 때로는 현대 한국이라는 역사적 시대에 속해 있는 듯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고, 통합되기 어려운 여러 원리들이 그녀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시대착오적 젠더 정체성이 조화와 통합을 찾을 때 한국사회와 가족의 구조변동을 이끌 수 있기에 한국에서 페미니즘의 의미는 역사 변혁의 '큰 수레(大乘)'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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