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클래식 산책

[클래식 산책] 실내악을 듣는 가을

하죽봉 변호사(서울변회 클래식동호회장)

두보의 시 한편으로 시작해본다.

岐王宅裏尋常見 崔九堂前幾度聞 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기왕의 궁궐에서 늘상 보았고, 최구의 앞마당에서 몇 번 들었지요. 바야흐로 이 강남은 좋은 풍경인데, 꽃이 지는 시절에 다시 만나는구려.)

'강남에서 이귀년을 만나며'라는 제목의 칠언절구이다. 전문가의 해설은 이렇다. 안록산의 난으로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라던 장안에서 양자강 하류의 남방으로 피난 온 두보가 피난 전 왕족과 고관의 집에서 연주하던 명가수 이귀년을 꽃이 지는 늦봄에 강남의 거리에서 만나면서 지난 시절의 화려한 생활과 지금의 영락한 처지를 비교한 독백이다. 상심이나 유랑을 뜻하는 글자는 하나도 쓰지 아니하면서 때와 장소와 사람(시인과 음악가)의 3박자를 교묘히 조합하여 왕시를 회고하고 목전의 비참함을 아련히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고전음악에서 교향곡, 협주곡이나 오페라처럼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음악은 이런 것이다'라고 크게 소리치지 아니하나 '음악의 진수는 멀리 아닌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하는 장르는 실내악이다. 한, 중, 일 모두 chamber music에서 번역 사용하고 있는 실내악은 이름 그대로 작은 실내에서 소규모 악기 구성으로 혼자 또는 소수의 감상자를 위한 음악이다. 요즘은 공명효과가 좋은 큰 연주회장에서 수천명 앞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내악의 본령은 적은 악기로 적은 감상자를 위한 데 있다.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혼자 듣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역시 실내악으로서 음반으로 들을 때 작곡자나 연주자와 대면한다는 느낌이 온다는 분도 있는 게 실내악이다.

적은 악기 구성이라고 하지만 그 종류는 의외로 적지 않다. 피아노를 동반한 바이올린(또는 비올라 첼로) 소나타, 피아노 3·4·5중주가 있고, 현악기만으로 된 현 2·3·4·5·6·7·8중주(보통 현악 몇 중주라고 부르나 피아노악 3중주라고 하지 아니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임) 외에도 플루트, 오보, 혼, 클라리넷, 바순을 동반한 중주도 더러 있다. 모차르트는 실내악에서도 발군이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물론이고 현악중주도 모두 좋기 그지없다. 모차르트의 실내악 중 널리 알려지지 아니하지만 케겔슈타트 트리오로 부르는 피아노 3중주와 디베리멘토의 하나인 현3중주K563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인 모차르트의 경박한 인상을 재고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실내악 중 정수는 현4중주에 있다고 본다. 부지런히 연주회장을 다니면서 또 좋은 오디오 기기를 갖추어서 열심히 음악을 듣던 분들의 말이다. 어느 때 '아 음악이란 이거구나' 하고 느끼는 한 순간이 오게 되고 그 후로는 집에서 실내악 특히 현4중주만 집중적으로 듣는데 거창한 오디오도 실내악용으로 바꾸어 혼자서 구도하듯이 음악에 침잠하게 된다고 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역사에 남는 작곡가가 예외 없이 만년에 이르도록 현4중주에 집착하게 만드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를 통하여 음악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는 데 있다고 한다. 4계가 뚜렷한 북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실내악을 듣기에 가장 어울리는 계절은 두말할 필요 없이 가을이다. 앞에 든 시가 언외의 표현으로 감동을 주듯이 가을에 듣는 실내악은 음악이 가진 그 무엇을 조용하게 전해 주리라 생각한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