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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산책

[클래식 산책] 피아노

유현정 변호사(서울변회 클래식동호회)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았다. 88둥이로 20대 초반인 그는 순수 국내파로 2006년 리즈콩쿨 우승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고, 지금은 영국에 거주하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선욱의 연주회는 몇 차례 가본 적이 있어 이번에는 예매를 할 때 일부러 맨 앞자리 가운데줄을 골랐다. 공연장 맨 앞자리 피아니스트의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곳. 예상보다 피아노가 왼쪽에 위치해서 건반은 볼 수 없었지만 피아니스트의 얼굴은 마주 보 듯 볼 수 있었다.

입장할 때부터 단원들과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은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한 치의 흐트러짐이나 망설임 없이 연주에 임했다.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지자 그는 입으로 곡을 소리 없이 따라 불렀고 잠시 후 그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의 표정과 동작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낼 소리를 미리 생각해 놓은 듯 건반을 두드리면서 만들어지는 소리를 머릿속의 소리와 맞춰보는 듯 했다. 스스로 감상하면서 연주하는, 음악 속에 완전히 몰입한 연주자의 모습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예술이었다. 감정이 격해지면 '흡!'하고 숨을 거칠게 들이쉬고 부드러운 속삭임의 연주에서는 그 표정과 몸동작도 물이 조용히 흐르는 듯했다. 곧 굵은 땀방울이 건반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는 더욱 곡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피아노 위에 엎드리 듯했다가 몸을 뒤로 젖히며 고요히 눈을 감았다가 건반의 울림에 맞춰 온몸이 경쾌하게 움직였고, 바라보는 나 역시 즐거워졌다 심각했다 신이 나기를 반복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던 기억이 났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목은 반드시 들어야 하며 손가락도 둥글게 만들어서 손끝으로 건반을 두드리라고 배웠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회초리를 맞았고 그게 싫어서 결국 피아노를 그만 두었다. 그러나 내 눈 앞에 있는 세계적 연주자는 허리를 꼿꼿이 계속 세우고 있지도 않았고 음악의 흐름에 따라 자유자재로 자세를 바꾸었다. 물론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기본자세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음악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했다면 '피아노는 지긋지긋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피아노 배우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말 본질적인 것은 음악을, 피아노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었을 터인데 표면적이고 부차적인 '자세잡기'로 피아노에 질리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건을 처리할 때에도 그렇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그렇지만, 바로 눈앞에 보이는 표면적이고 부차적인 것들로 무언가를 쉽게 판단해버리고 결정을 내리는 일이, 그로 인해 뒤늦게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신이 아닌 이상 본질을 바로 꿰뚫어 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폭과 깊이를 늘리고 넓혀서 본질적인 것에 가까운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봄이다. 방 한 귀퉁이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 보아야겠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