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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홍의 영화이야기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살인의 추억'과 '조디악(Zodiac)'

고석홍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부장검사)

1989년 1월 수원지검 검찰시보로 근무하던 시절, 당시 차장검사님 덕분에 소위 ‘화성연쇄살인사건’ 검사장님 보고 자리에 참석하였는데, 담당검사는 사체·사건현장·범행도구 등을 컬러영상으로 보여주면서 자세히 브리핑하였다. 그 처참한 화면을 본 지 벌써 20년, 아직도 범인은 오리무중이고 공소시효마저 도과하였다.

연쇄살인은 영화제작자에게 대단히 인기있는 영화 소재인데 이를 다룬 영화를 분류해보면 대부분 수사기관이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추리하면서 미궁에 빠지다가 극적인 반전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의 추리·스릴러물 영화가 대부분으로 데이비드 핀쳐(David Fincher) 감독의 ‘세븐(Seven, 1995)’, 조나던 드미(Jonathan Demme) 감독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Lambs, 1991)’이 대표적인 영화이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살인범 심리상태와 그의 관점에서 피해자를 찾는 방식으로 영화를 전개해나가는 존 맥노튼(John McNaughton) 감독의 ‘헨리 : 연쇄살인범의 초상(Henry : Portrait of a Serial Killer, 1990)’과 같은 영화이다. 한편, 피해자 입장에서 연쇄살인을 묘사하는 영화도 있는데 소위 슬래쉬 무비(Slash Movie), 납량공포영화라고도 하며, 연쇄살인 공포영화의 교과서가 된 토브 후퍼(Tobe Hooper) 감독의 ‘텍사스 기계톱 대학살(The Texas Chain Saw Massacre, 1974)’ 등이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은 위 세 분류와는 약간 다르다. 우선 수사관들이 주인공이고, 이들의 일상과 일하는 방법이 주된 관찰 대상이다. 1980년대 권위주의 폐습이 소개되고 답답한 수사 행태가 비판적으로 보여진다. ‘살인의 추억’과 비교되는 외화로서는 1970년대 캘리포니아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데이비드 핀쳐 감독의 ‘조디악(Zodiac, 2007)’이 있는데, 후자가 예고살인이었다는 점 외에는 수사기관의 무능과 사회적 현상을 다룬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조디악’은 핀쳐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패닉룸(Panic Room, 2002)’,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더 게임(The Game, 1997)’, ‘세븐(Seven, 1995)’ 등 작품과 달리 다큐멘터리처럼 평면적으로 표현되었는데 1970년대 아날로그식 사고방식으로 영화를 감상하도록 기획된 듯하다. 두 영화에서 나타난 수사기관은 무능하고 더구나 전자는 비민주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열정적이고 인간적이어서 살인의 참혹함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연쇄살인범 영화는 대개 위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고 사회비판, 유머감각, 허황됨이 느껴져 관객이 지닌 인간존엄성에 대한 소박한 인식이 침해될 정도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최근 유형철,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들의 참혹한 살인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 보도만으로는 부족한지 ‘소우(Saw)’시리즈, ‘추격자’와 같이 인간존엄성을 부정하고 비인간적인 새로운 유형의 연쇄살인범 영화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이 사회에 끼칠 해악의 정도가 아직 검증된 바는 없지만, 연쇄살인범들이 관련 영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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