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클래식 산책

[클래식 산책] 카라얀! 카라얀!

하죽봉 변호사(서울변회 클래식동호회장)

누가 제일 잘 하는가, 무엇이 가장 좋은가라는 등수, 순위, 석차를 따지는 일은 인간사의 기본인 것 같다. 스포츠, 연예만이 아니라 예술이나 학문의 분야에서도 그러하고 클래식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누가 최고의 작곡가이냐, 최고의 작품은 무엇인가를 인기투표처럼 묻는 일은 레코드 회사, 방송국 또는 음악 잡지에서 매년 또는 잊을 만하면 들고 나오는 고정 레퍼트와이다.

에디슨이 연주를 녹음하여 재생하는 장치를 발명한 이후 100년의 기간 안에 인류는 마침내 집에서 편안히 앉아 연주회에서 듣는 수준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녹음과 재생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구극의 경지에 다다라서 원음과 구별할 수 없다고 레코드 업체나 오디오 메이커는 호언장담을 하고 있기까지 하다.

다시 순위를 따지는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나온 레코드(SP, LP, CD, SACD, DVD 등을 망라하여)를 가지고 최고의 연주자를 100% 주관적·감성적인 평가이지만 골라보고자 하는 데 나름대로 객관적·정량적인 기준이 있다.

첫째, 레퍼트와의 폭이다.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교향곡에서 오페라까지 시대와 장르의 다종·다양함이다. 둘째, 연주자의 실력과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메이저 레코드사에 의한 우수녹음이어야 한다. 셋째, 우리만큼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일본에서 회자되는 「최고의 명반」도 레퍼런스의 하나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상 요소를 가지고 일부 평론가가 쓰는 전무후무, 공전절후, 파천황, 절대지존의 표현에 걸맞은 연주자를 꼽아보는 데 우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들어 본다.

지휘자로 생각나는 사람만도, 독일의 푸르크뱅글러·클렘페러·발터·크나퍼츠부쉬·뵘·자발리쉬·카라얀·클라이버, 구 동독계의 주이트너·마주어, 영국의 비첨·데이비스·마리너·가디너·프레빈·래틀, 프랑스의 클뤼탕스·멍슈·불레즈·뒤투와,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쥴리니·압바도·무티, 동구권의 첼리비다케·쿠벨릭·솔티·노이만, 러시아의 므라빈스키·로제스트벤스키·게르기예프, 미국의 오만디·번스타인·마절·르봐인, 일본의 오자와, 한국의 정명훈, 기타 하이팅크, 메타, 바렌보임 등 수십명이나 된다. 그 중에서 최고는 카라얀을 꼽을 것이라고 본다. 70년대 유럽에서 그의 인기는 얼마나 높았는지 카라얀 병에 걸렸다(Karajankrank)는 말이 날 정도이었는데, 만년에 국내에서 연주할 때는 왜소한 노인으로서 연주 수준도 기대 이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의 연주에 대하여 깊이가 없느니, 통조림 음악이니, 인간적으로는 나치즘에 동조하였느니, 돈 밖에 모르느니 하면서 얕잡아보는 사람도 있지만 베를린필, 빈필, 필하모니아 등 그가 악기로 삼은 교향악단이나, 고전주의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관현악곡, 협주곡 및 오페라에 걸치는 작품의 숫자에서 카라얀에 비교되는 지휘자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어서 문자 그대로 전무후무한 존재이다.

독일계 지휘자의 장기는 교향곡 및 협주곡에 있다고 하나 카라얀은 오페라에서도 모차르트와 바그너는 물론 푸치니와 베르디만이 아니라 ‘카르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프랑스 출신보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 출신보다도 더 나은 레퍼런스가 되는 디스크를 남기고 있다. 그 카라얀이 1989년 7월16일 사망한 지 벌써 20주년이 되는 데, 요즈음 음반시장의 불황으로 수 십장의 CD로 된 카라얀 전집을 10만원정도로 구할 수 있으니 최고의 지휘자를 너무 값싸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불세출의 그런 지휘자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느껴져 새삼 그가 그리워진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