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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홍의 영화이야기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영화에서 본 사기범

고석홍 부산지검 부장검사

사기죄는 남을 속여 재물을 취득하는 범죄로서 거짓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신의성실과는 양립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사기꾼이 재물을 편취하더라도 신의성실성이 본질적으로 부족하므로 인간관계는 늘 불안하고 재물도 낭비되기 일쑤다. 한편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대부분 노력의 산물인 재물을 착오와 욕망으로 인해 편취 당했다는 자책감이 큰데, 금전적 피해와 더불어 자신과 주변인까지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기죄는 피해자 역시 사기꾼을 위해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하므로 영화를 촬영한다면 사기꾼과 함께 영화에 꼭 출연하게 된다. 그런데 일반인 입장에서는 선량한 피해자가 편취당해 비탄에 잠기고 또 나락에 빠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 꽤 불쾌한 경험이다. 그런데 영화감독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관객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화면을 구성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인해 감독들은 비열한 자, 당해도 마땅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 치거나 소동 수준의 사기를 소재로 삼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기죄라는 소재를 좋아하는 감독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최동훈 감독을 들고 싶다. 그는 ‘범죄의 재구성’에서 배우 백윤식의 입을 통해 사기를 예술로 칭한 바 있고, 또 ‘타짜’에서 사기도박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국내 영화제작자들은 사기라는 소재를 선호하는 것 같다. 목사를 사칭하는 박중훈 주연의 ‘할렐루야’를 비롯하여 윤다훈 주연의 ‘자카르타’, 김하늘 주연의 ‘그녀를 믿지 마세요’ 등 사기 관련 국내 영화는 꽤 존재한다. 이에 비해 외국에서는 사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외화를 꼽으라면 George Roy Hill 감독의 ‘Sting’(1973)을 들고 싶다. 수많은 공범들의 치밀한 계획 하에 벌이는 시원한 활극은 비열한 자에 대한 응징이라는 사기 영화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사기를 다룬 걸작들을 보면 우선 부잣집 도련님을 후리는 미녀사기꾼 이야기인 Preston Sturges 감독의 ‘Lady Eve’(1941), 사기·절도범 남녀의 사랑을 다룬 Ernst Lubitsch 감독의 ‘Trouble in Paradise’(1932), 보험사기와 살인, 배신을 그린 Billy Wilder 감독의 ‘Double Indemnity’(1944)가 있다. 유명한 작품들로는 타인 행세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는 Rene Clement 감독의 ‘Plein Soleil’(1960, 알랭 드롱이 주연하고 우리에게는 ‘태양은 가득히’로 알려짐)과 그 리메이크 작 Anthony Minghella 감독의 ‘The Talented Mr. Ripley’, 사기범이 되어가는 과정과 인간적 고뇌를 묘사한 Steven Spielberg 감독의 ‘Catch me if you can’, 방송사기를 다룬 Robert Redford 감독의 ‘Quiz Show’, 모녀사기단을 다룬 시고니 위버 주연의 ‘Heartbreaker’(2001), 온갖 사기 수법을 묘사한 일본의 ‘黑詐欺(쿠로사기)’가 있다.

일선 검찰청 형사부 검사가 취급하는 사건 수에서 사기 사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비중도 제일 높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고소, 진정사건으로 온전하게 기소되는 비율은 20∼30 퍼센트 밖에 되지 않아 대표적인 남고소(濫告訴) 종목이다. 초임검사 시절 지구상에서 사기 사건이 몽땅 없어져버리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단순히 치기어린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