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의 민사소송법(이하 법명 생략) 관련 판결례들을 훑어보면, 집합건물에 관한 분쟁에서 권리의무 귀속주체 및 소송당사자 문제가 자주 부각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022년 판결례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몇 개를 선정하여 아래와 같이 논의해 본다.
1. 수감자의 추후보완항소 : 대법원 2022. 1. 13. 선고 2019다220618 판결
(1) 사안
소액사건에서 피고가 소장부본 및 이행권고결정서 등본을 송달받고, 답변서를 제출한 후에 구속·수감되었다. 그 후 법원이 피고에게 보낸 변론기일통지서가 폐문부재로 송달불능되었다. 제1심 법원은 원고승소 판결을 선고한 후 판결정본을 피고 주소지로 송달하였으나 역시 폐문부재로 송달불능된 후에, 이를 공시송달하였다. 그로부터 약 6개월 후에 출소한 피고가 출소일 이틀 후 위 판결정본을 발급받고 그 발급일로부터 13일 후에 추후보완항소를 제기하였다. 원심은, 피고가 소제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서 소송 진행 상황을 조사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피고의 항소를 각하하였다.
(2) 판결 요지
[공시송달 요건이 불비하더라도 재판장의 명령에 따라 공시송달을 한 이상 송달의 효력은 있지만] 수감된 당사자는 §185에서 정한 송달장소 변경의 신고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므로, 과실 없이 판결의 송달을 알지 못한 것이고, 이러한 경우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유로 불변기간을 준수할 수 없었던 때에 해당하여 그 사유가 없어진 후 2주 내에 추완 상소를 할 수 있다. 파기환송.
(3) 분석
§182에 의하면, 소송당사자가 수감되는 경우에는 송달장소뿐만 아니라 송달대상자가 변경된다. 즉 송달장소는 당사자의 주소지가 아닌 ‘교도소·구치소’로, 대상자는 당사자가 아닌 ‘교도소장·구치소장’으로 바뀐다. 위의 §182 등을 근거로, 대법원은 수감된 당사자에게는 송달장소변경 신고의무가 없다는 판시를 몇 차례 내렸다(대법원 1982. 12. 28. 선고 82다카349 전원합의체 판결; 2009. 10. 8.자 2009마529 결정 등). 대상판결은 이런 일련의 판결과 같은 입장에 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 1982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입장은 구 행형법상의 재감자에 대한 서신수발의 제한을 고려한 것인데(위 82다카349의 판시내용 참조), 위 82다카349 판결로부터 40년이 지난 현재, 행형법이 1995년 및 1999년 등의 개정을 통하여 서신수발 제한을 완화하는 등, 사실상 수감자가 기존 소송사건의 송달장소변경을 신고함에는 현재로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리고 수감으로써 송달대상자가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수감당사자의 송달장소 변경신고의무가 없다는 점이 논리필연적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대상판결이 과거의 입장을 유지함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또한 이러한 입장은 대법원 1992. 4. 14. 선고 92다3441 판결과도 반드시 합치하지 않는다. 즉 92다3441 판결은, 당사자가 구속되어 있어서 쌍불취하간주 후 1개월 내의 기일지정신청기간을 준수하지 못한 것이 당사자 자신의 귀책사유라고 보았다(다만 그 판시는 원고 등 적극당사자의 경우로 한정하는 것으로 보임). 대상판결은 재검토가 필요한 판결이다.
2. 배액배상을 명한 외국재판의 승인 여부 : 대법원 2022. 3. 11. 선고 2018다231550 판결
(1) 사안
원고들은 A(필리핀 회사)가 생산한 식료품을 독점 수입·판매하기로 하는 계약을 A와 맺었다. 피고가 위 독점계약을 불법적으로 방해하였다고 하여 원고들이 미국 하와이주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고, 그 법원의 배심평결에서 피고가 끼친 손해액이 원고1에게 20만 달러, 원고2에게 38만 달러로 인정되었으며, 판사는 하와이주 성문법상의 3배 배상 조항에 따라 위 금액의 각 3배씩의 손해배상 및 기타 변호사비용 등을 선고하였다. 그 후 원고들은 한국 법원에 피고를 상대로, 위 하와이 판결의 집행판결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원심은, 위 하와이 법이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으로서 위 판결이 명한 ‘3배의 손해배상’은 손해의 전보 범위를 초과하는 것이어서, 통상손해를 초과하는 범위에서 한국의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보아, 통상손해의 범위 내의 청구만 인용하였다.
(2) 판결 요지
[한국법은 2011년에 처음으로 실제 손해의 3배까지 손해전보의 범위를 넘는 손해의 배상제도를 도입한 이래 현재는 여러 법률에서] 3~5배까지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규정을 도입하였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명하는 외국재판이 손해배상의 원인으로 삼은 행위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개별 법률의 규율 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그 외국재판을 승인하는 것이 손해배상 관련 법률의 기본질서에 현저히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는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서는 피고의 위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율하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사업자의 부당한 공동행위 등에 대해 실제 손해액의 3배 범위 내에서 손해배상을 허용함으로써 공정거래법이 규율하는 영역에 손해전보의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결국 이 사건 하와이주 판결이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삼은 피고의 행위는 실제 손해액의 3배 내에서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법조항을 두고 있는 공정거래법의 규율 영역에 속하므로, 실제 손해액의 3배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을 명한 이 사건 하와이주 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우리나라 손해배상제도의 원칙이나 이념, 체계 등에 비추어 허용할 수 없는 정도라고 볼 수 없다.
(3) 분석
과거에는 영미법계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에 관하여 이는 한국의 전보배상 원칙에 반한다고 하여, 전보배상의 한도 내에서만 판결을 승인하고 이를 넘는 부분은 승인하지 않는 것이 한국 법원의 태도였다(부산고등 2009.7.23. 선고 2009나3067판결 등). 그런데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필두로 하여 실제 손해액의 3~5배의 배상을 정한 개별 법률들이 다수 입법되어, 2023년 2월 현재 그런 법률이 20개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손해액을 넘는 배상을 명한 외국 재판을 불승인하는 종전의 법원 입장을 유지할 것인지가 쟁점이 된 판결이 대상판결이다.
대상판결은, (아마도, 영미 커먼로상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영미 성문법상의 배액배상을 구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징벌적 손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채로, ‘배액배상을 명하는 외국 재판이 손해배상의 원인으로 삼은 행위’가 “한국에서 배액배상을 허용하는 개별 법률의 규율 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그 외국재판을 승인할 수 있다고 하였고, 이는 대법원의 첫 판시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본건에서 외국재판승인의 근거로 삼은 “한국에서 배액배상을 허용하는 개별 법률의 규율 영역”이다. 미국의 셔먼법·클레이튼법은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율하지 않는다(FTC법이 별도임). 하와이 판결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피고의 행위를 ‘한국 공정거래법상의 불공정거래행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원래 민법에서는 제3자 채권침해 행위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공정거래법의 핵심규제대상은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니라) 경쟁제한 행위이고, 한국 공정거래법상 배액배상이 정해진 3개의 행위유형(§§40,48,51)에 불공정거래행위 자체는 포함되지 않으며, 한국 공정거래법 §45상의 불공정거래행위는 그 개념범위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재판이 배액배상을 명한 행위가 한국의 어느 개별법률의 규율대상행위들 중에서 B그룹에 속하는데, 그 법률의 규율대상인 A그룹 행위에 대해서 배액배상이 정해져 있다면, 그 외국재판은 승인될 수 있다”라는 논리는 어디까지 전개할 수 있는가? 불공정거래행위는 간접적으로 경쟁제한행위와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향후, 배액배상이 정해진 한국의 개별법상의 행위와 외국재판이 손해배상의 근거로 삼은 행위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과연 그 외국재판이 승인될 수 있는지 여부는 대상판결의 판시만으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3.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의 화해권고결정에 따른 일부 당사자의 분리확정 여부 :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20다224975 판결
(1) 사안
원고들 중 A가 서울특별시 강동구를 주위적 피고로, 서울특별시를 예비적 피고로 삼아서, 아파트 분양사업에 따른 부당이득의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피고들 중 누가 사업시행자인지가 문제됨). 제1심은 판결주문에서 강동구에 대한 A의 청구를 인용하였으나 서울시에 대한 A의 청구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하여 강동구만 항소하였다. 원심은 서울시에 대한 청구부분도 이심되었음을 전제로 화해권고결정을 하여 그것이 A와 강동구·서울시에 각 송달되었는데, 서울시만 이의신청을 하였다. 원심은, A-강동구 간 청구가 분리확정되고 A의 청구는 서울시에 대해서만 남아 있다고 보아서 판결주문에서 서울시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법§70(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에 대한 특별규정) ① 공동소송인 가운데 일부의 청구가 다른 공동소송인의 청구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거나 공동소송인 가운데 일부에 대한 청구가 다른 공동소송인에 대한 청구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필수적 공동소송에 관한] §§67~69를 준용한다. 다만, 청구의 포기·인낙, 화해 및 소의 취하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판결 요지
§70에서 정한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에서 화해권고결정에 대하여 일부 공동소송인이 이의하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그 공동소송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위 결정이 확정될 수 있다. 다만 화해권고결정에서 분리 확정을 불허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 결정에서 정한 사항이 공동소송인들에게 공통되는 법률관계를 형성함을 전제로 하여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경우 등과 같이 결정 사항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분리 확정을 허용할 경우 형평에 반하고 또한 이해관계가 상반된 공동소송인들 사이에서의 소송 진행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70① 본문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에는 분리 확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에서 화해권고결정에 대하여 일부 공동소송인만이 이의신청을 한 후 그 공동소송인 전원이 분리 확정에 대하여는 이의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3) 분석
§70①이 §67를 준용하여 소송진행을 통일하므로,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인 중 1인에게 발생한 소송의 중단·정지사유는 모두에게 효력을 미치며, 따라서 예비적·선택적 공동소송에서는 변론준비·변론·증거조사·판결선고를 같은 기일에 해야 하고, 변론의 분리나 일부판결을 할 수 없다. 그런데 §70① 단서가 “청구의 포기·인낙, 화해, 소취하”의 경우에 필수적 공동소송 관련 조문들을 준용하지 않고 있으므로, 일부 공동소송인이 이런 소송행위를 하면 그 공동소송인에 대해서는 소송종결 효과가 생겨야 하겠지만, 이는 소송진행을 통일한다는 §67의 준용과 충돌한다.
여기서 판례는 조정갈음결정 및 화해권고결정에 대하여, 일부 공동소송인이 이의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에 그에 대한 관계에서는 그 결정이 확정될 수 있음이 원칙이지만, 그 결정에서 분리확정을 불허하고 있거나 혹은 분리확정을 허용하면 형평에 반하고 또한 소송진행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70① 본문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에는 분리확정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이미 판시한 바 있으며(대판 08.7.10, 2006다57872; 15.3.20, 2014다75202), 대상판결은 이러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위 판시문구상으로는 분리확정이 (§70①단서에 따라) ‘원칙’이고, 일부 ‘예외’의 경우에만 분리확정이 불허되는 듯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사실상 모든 주관적·예비적 공동소송이 그 분리확정 허용시 형평에 반하고 또한 소송진행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70① 본문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판시문구상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는 존재하기 어렵다. 실제로는 분리확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을 돌려 표현한 것일 뿐이며, 이를 보면 §70①의 입법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다.
4. 계약명의신탁의 해소와 임대인 지위승계 및 처분권주의 :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다210720 판결
(1) 사안
재건축조합이 사업종료시 이 사건 아파트를 Y건설사에게 공사대금조로 양도하면서 상호 양해 하에 그 소유권이전등기를 A 앞으로 마쳤다. 그 후 Y는, A의 등기가 계약명의신탁에 기한 것이라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A 및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각각 등기말소 및 이전등기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2015년에 승소·확정되었으며, 2018년에 이 판결에 따라 자기 앞으로의 이전등기를 마쳤다. 한편 X는 2011년에 A로부터 위 아파트를 임차하였다가 2016년에 A에게 임대차계약 해지통고를 한 다음, A를 상대로 임대차보증금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승소·확정되었다.
그 후 X는 Y가 A로부터 위 아파트의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였다고 주장하면서 Y를 상대로 보증금 반환을 구하고(주위적 청구), Y가 A로부터 보증금을 전달받았으므로 동액만큼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하면서 그 반환을 구하였다(예비적 청구). 원심은 ㉠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기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여 등기명의를 회복한 것을 두고 임차주택의 ‘양수’라고 볼 수 없으므로 Y가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지 않는다고 하여 청구를 기각하였고, ㉡ X의 A에 대한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전소 변론종결일 이후 이 사건 아파트의 소유권을 이전받은 Y에게도 그 효력이 미쳐서 X의 Y에 대한 청구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하였다.
(2) 판결 요지
① 매도인이 악의인 계약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로부터 명의신탁의 목적물인 주택을 임차하여 대항요건을 갖춘 임차인은 명의신탁약정 및 물권변동의 무효에 대항할 수 없는 제3자에 해당하므로, 명의수탁자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말소됨으로써 등기명의를 회복하게 된 매도인 및 매도인으로부터 다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명의신탁자에 대해 자신의 임차권을 대항할 수 있다. 이 경우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를 말소하고 매도인으로부터 다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은 명의신탁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3④에 따라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다. 그리고 변론종결 후 임대부동산을 양수한 자는 법 §218①의 변론종결 후의 승계인에 해당한다.
②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반환의 승소확정판결을 받았으나 이후 주택 양수인을 상대로 이를 반환받고자 할 경우, 임차인이 양수인을 상대로 승계집행문 부여의 소를 제기하여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음이 원칙이나, 이미 임차인이 양수인을 상대로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양수인과 사이에 임대인 지위의 승계 여부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공격방어 및 법원의 심리가 진행됨으로써 사실상 승계집행문 부여의 소가 제기되었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면, 그럼에도 법원이 소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후소를 각하하고 임차인으로 하여금 다시 승계집행문 부여의 소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을 무위로 돌리고 사실상 동일한 소송행위를 반복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당사자들에게 가혹할 뿐만 아니라 신속한 분쟁해결이나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와 같은 경우 소의 이익이 없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 파기환송.
(3) 분석
대상판결을 보면, X의 Y에 대한 보증금반환청구에 대하여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하면서, 현재의 X의 ‘보증금반환청구’를 법원이 그대로 인용하여 주라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대법원도 Y가 변론종결후 승계인으로서 선행 확정판결의 효력을 받는 자임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유효한 기존 판결을 둔 채로 같은 본안청구를 다시 하게 되면, 원래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는 것이다. 또한 확정판결에 대한 집행문 부여의 소는 그 판결의 제1심 수소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는 것이므로, 대상판결의 판시는 그 전속관할법원의 권한을 임의로 상실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대상판결은, 승계집행문 부여의 소가 본건에서 적법·타당한 제소방식임을 전제하면서도 절차상의 편의성 및 경제성을 이유로 (권리보호이익 및 기판력 이론 등을 무시하고) 보증금반환청구를 그대로 인용하여 주라고 하는 것인데, 편의성·경제성만을 이유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향후 유사사건에서 어느 정도의 편의성·경제성 요구가 있으면 이렇게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5. 집합건물법상 관리단의 소송상 지위 : 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1다239301 판결
(1) 사안
집합건물(상가건물)의 구분소유자 A가 공용부분을 점유사용하였음을 이유로 다른 일부 구분소유자들이 A를 상대로 해당부분 인도 및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을 구하였으나 제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에서 부당이득반환 청구부분을 취하하였다(전소). 그 후 집합건물 관리단이 원고로서 A를 상대로 다시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후소), A는 재소금지원칙 위배라고 주장하였다. 원심은 전소와 후소의 원고가 달라서 재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관리단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2) 판결 요지
관리단은 [집합건물법상의 조직으로서] 집합건물의 공용부분·대지를 정당한 권원 없이 점유하는 사람에 대하여 부당이득 반환소송을 할 수 있다. 관리단이 이러한 부당이득반환소송을 하는 것은 구분소유자의 공유지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서, 구분소유자가 각각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하는 것과 다른 내용의 소송이라 할 수 없다. 관리단의 부당이득반환소송의 판결의 효력은 구분수유자에게 미치고, 구분소유자의 부당이득반환소송의 판결의 효력은 관리단에게 미친다.
관리단의 이러한 소송은 구분소유자 공동이익을 위한 것으로, 구분소유자가 자신의 공유지분권에 관한 사용수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소송과 목적이 다르다. 구분소유자가 종국판결 후에 소를 취하하였더라도, 그후 관리단의 부당이득반환청구에는 새로운 권리보호이익이 발생하므로, 이는 재소금지 규정에 반하지 않는다.
(3) 분석
집합건물법상 관리단(본건에서 ‘상가번영회’)은 당연구성된다. 현재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이 주로 집합건물에서 영위되면서, 대상판결 외에서도 집합건물의 유지·관리의 주체 및 당사자적격에 관한 쟁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대법원 2022. 5. 13. 선고 2019다229516판결 등).
집합건물법 §23의2에 의하면 “관리단은 건물의 관리 및 사용에 관한 공동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구분소유자의 권리와 의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행사하거나 이행하여야” 하므로. 관리단은 구분소유자들과의 관계에서 제3자 소송담당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법§218③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원고나 피고가 된 사람에 대한 확정판결은 그 다른 사람에 대하여도 효력이 미친다.”고 정하므로, 관리단에 대한 확정판결의 효력이 권리귀속주체에게 미치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거꾸로 권리귀속주체가 받은 확정판결의 효력이 (후소를 권리보호이익 없는 것으로 만들지언정) 당연히 제3의 소송담당자에게 미치는 것은 아니다.
대상판결은, 집합건물에 있어서 구분소유자가 받은 판결의 효력이 관리단에게 미친다는 점을 최초로 분명히 판시하는 한편, 더 나아가서 [그렇게 기판력이 미치더라도] 구분소유자가 1심판결 후에 소취하를 한 경우에 관리단에게는 후소 제기를 필요로 하는 정당한 사정이 있으므로 후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6. 복수 채권자의 사해행위취소가 경합하고 그 각 판결에서의 가액배상액이 서로 다른 경우, 청구이의의 소 : 대법원 2022. 8. 11. 선고 2018다202774 판결
(1) 사안
B의 채권자인 A(신용보증기금)가 C(수익자)를 상대로 사해행위취소의 소를 제기하여, 법원이 C에게 사해행위취소로써 회복되어야 할 공동담보가액이 9500만 원이라고 판단하여 그 지급을 명하였고, 이 판결이 확정되고 C가 A에게 6000만 원을 지급하였다. 한편 B의 다른 채권자인 D가 C를 상대로 사해행위취소의 소를 제기하자, 다른 법원은 동일한 사해행위의 취소에 따라 회복되어야 할 공동담보가액이 5500만 원이라고 판결하였고 확정되었다.
D가 3500만 원(=9000만 원-6000만 원)에 관하여 강제집행을 하려 하자 C가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였다. 원심은 “사해행위의 취소는 취소소송의 당사자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취소의 효력이 있는 것이므로, 피고가 선행 판결에서 인정된 가액배상금을 원용할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C의 청구이의를 전부 인용하였다.
(2) 판결 요지
① 여러 채권자가 사해행위취소 및 원상회복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복수의 소송이 계속 중인 경우, 각 소송에서 채권자의 청구에 따라 사해행위의 취소 및 원상회복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수익자가 가액배상을 하여야 할 경우, 수익자가 반환하여야 할 가액 범위 내에서 각 채권자의 피보전채권액 전액의 반환을 명하여야 한다.
② 복수의 사해행위취소소송에서 각 가액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었는데, 각 사해행위취소 판결에서 산정한 공동담보가액의 액수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이때 수익자에게 이중지급의 위험이 발생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공동담보가액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중 다액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따라서 수익자가 어느 채권자에게 자신이 배상할 가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반환한 때에는 다른 채권자에 대하여 각 사해행위취소 판결에서 가장 다액으로 산정된 공동담보가액에서 자신이 반환한 가액을 공제한 금액을 초과하는 범위에서 청구이의의 방법으로 집행권원의 집행력의 배제를 구할 수 있을 뿐이다. 본건에서는 3500만 원에 관하여는 집행력을 배제시킬 수 없으므로, 파기환송.
(3) 분석
위 ①의 판시는 이미 수차례 반복되었다. 즉 여러 채권자가 취소채무자의 하나의 사해행위를 대상으로 각각 취소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이는 중복제소가 아니며, 어느 한 채권자가 승소판결을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었더라도 그 후에 제기된 다른 채권자의 동일한 청구가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게 되는 것은 아니고, 그에 기하여 재산이나 가액의 회복을 마친 경우에 비로소 다른 채권자의 사해행위취소 및 원상회복청구가 그와 중첩되는 범위 내에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게 된다. (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5다51457 판결 등).
그런데 그 각각의 승소판결에서 수익자가 반환하여야 할 가액(‘공동담보가액’)이라고 판단되는 금액이 각각 다를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수익자가 반환해야 할 가액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 판결 중에서) 다액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를 근거로 대상판결은, 수익자가 선행 사해행위취소에 기하여 가액배상을 한 때에는, 다른 채권자에 대하여 가장 다액인 공동담보가액에서 이미 행한 가액배상액을 공제한 금액을 초과하는 범위에서만 청구이의로써 집행권원의 집행력의 배제를 구해야 한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혔다. 현재의 사해행위취소 제도의 구조하에서는 타당한 입장이라고 보인다.
전원열 교수(서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