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7.]
1. 최근 대법원은,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문제된 사안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함으로써, 위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조건이 무효라고 본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11. 10.자 2022다252578 판결). 이미 세아베스틸 사건(대법원 2019다204876호)에서 재직자조건의 유효성이 쟁점이 되었고, 위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어 2021년 3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 기일이 진행되었으며, 아직 그 판결이 선고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같은 쟁점이 문제된 금융감독원 사건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선고된 것입니다. 이처럼 현재 대법원에서 재직자조건이 논의 중임에도, 같은 쟁점이 문제된 사건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나와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판결의 이유나 취지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2. 금융감독원 사건 대법원 판결이 재직자조건이 무효라는 취지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만약 그러한 취지였다면 당연히 심리 속행 판결을 하였어야 할 것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였어야 할 것이므로, 실제로는 대법원이 재직자조건과 무관한 다른 이유에서 상고 기각 판단을 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이와 같은 사건에서는 판결의 이유를 밝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실수가 아니라면 취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입니다.
3. 나아가, 재판의 과정을 떠나 판결들의 내용을 보더라도 여전히 재직자조건 쟁점에 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습니다.
첫째, ‘그날그날의 근로’라는 표현에 의문이 있습니다. 재직자조건이 무효라고 본 일련의 하급심 판결들에서는 정기상여금이 “그날그날의 근로의 대가”이므로 이미 발생한 정기상여금을 사후적으로 박탈할 수 없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위 표현이 근로시간의 제공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곧바로 정기상여금이 발생한다는 의미라면, 이는 곧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는 판단의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즉, “그날그날의 근로의 대가”라는 표현은 논의의 결론일 수는 있어도 근거가 될 수는 없어 보입니다.
현재 “그날그날”의 근로에 대한 대가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임금이 그날그날의 근로(a day’s work)에 대한 대가라는 표현은 로마법 이래로 흔하게 사용되었던 것만은 사실로 보입니다. 다만, 로마법에서 그러한 표현은 ‘일용노동을 약정한 경우 하루의 노동을 마쳐야만 임금을 청구할 수 있고, 이를 마치지 못한 경우에는 하루 중 일부의 임금을 청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사용되었다는 점, 즉 일종의 만근 조건을 설명하는 의미로 쓰였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1]
[각주1] Alan Watson, The Digest of Justinian, Vol 3.,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Philadelphia, 1985, p. 321.
둘째, 정기상여금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조건을 부여할 수 없다는 논리도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임금의 비중이 커서 문제라고 본다면 조건 자체는 유효한데 비중이 문제라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면 조건을 달 수 있고 어떠한 경우에는 조건을 달 수 없는 것인지, 재직자조건이 부여된 상여금이 ‘재직’의 대가라고 본다면 그 정당한 대가를 노사가 정할 수는 없고 법원이 정해야 한다는 것인지, 법이 과연 정당한 대가를 정할 수 있는 것인지 등 여러 의문이 남습니다(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다50308 판결 참조).
비중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도 문제입니다. 재직자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정기상여금은 정기상여금 전체가 아니라 해당 지급기일의 상여금입니다. 이 상여금은 가령 ‘통상임금 100%’인 경우에도 전체 연봉의 5% 이내인 경우가 많습니다.[2] 연봉의 5% 정도가 어떠한 경우에도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되는 막대한 비중의 임금일지도 의문입니다.
[각주2] 가령, 연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의) 750%라면, 매월 통상임금만 받고 잔업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연간 월 통상임금의 1950%[=1200%(=100%x12)+750%(상여금)]을 받게 됩니다. 1회에 지급되는 ‘100%’의 상여금은 위 1950%의 약 5.1%(=100/1950)에 해당합니다.
설, 명절상여금, 휴가비에 대한 판단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여금은 과거 행정지도를 통해 정기상여금에 통합된 경우가 많으나, 여전히 설·명절·휴가 시 지급되는 점, 다른 정기상여금과는 액수를 달리하는 점 등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하급심 판결은 이러한 경우에도 정기상여금과 합쳐서 비중을 판단하였으나 그러한 판단이 타당한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재직자에 한하여 휴가비나 명절상여금을 지급하는 것은 상여금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조건인데 이를 주관적 관념으로 일도양단하에 무효라고 할 수 있을까요?
셋째, 단체협약의 규정에 따라 정기상여금에 조건을 부여하는 것이 금지될 수 있다는 논리는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단체협약으로 명시적으로 급역규정에 지급조건을 위임한 경우라면 당연히 재직자조건이 허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독일에서도 개별 근로계약으로 재직자조건을 부여한 사안 등에서는 재직자조건의 유효성에 관한 논란이 있었으나, 독일연방노동법원은 단체협약으로 재직자조건을 부여하는 것은 유효하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한 바 있습니다.[3] 그런데 현재 재직자조건이 문제 된 사건에서 단체협약을 통한 위임여부에 관하여 실질적인 심리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각주3] BAG, 10 AZR 290/17, Urteil v. 27.06.2018.
4.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이 명시적으로 재직자조건을 인용하였음에도 세아베스틸 사건에서 그 효력을 부정한 이후 재직자조건의 효력은 통상임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중요성에 걸맞게 충실한 논의를 거쳐 판단이 이루어지고, 당사자와 관계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이유가 제시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광선 변호사 (kslee@jipyong.com)
구자형 변호사 (jhku@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