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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창] "당신보다 그림을 더 사랑합니다" - 마티스의 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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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거호우 교수로부터 “너는 절대 할 수 없을 거야”라는 얘기를 듣고 좌절하고 있을 때 마티스는 카미유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시골 출신이었던 그녀는 파리에서 모자 가게 종업원으로 빈곤하게 살았지만, 자기에게 어울리는 모자를 직접 디자인하고, 날씬하고 가녀린 자신의 몸매에 착 맞는 옷을 만들어 입으면서, 작은 사치를 즐길 줄 아는 명랑하고 자립적인 여성이었다.

카미유와 마티스는 동거를 시작했고 딸도 낳았다. 미혼모를 금기시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카미유는 생활비를 보태며 마티스를 뒷바라지했다. 그러던 중 꽁꽁 얼어붙었던 두 사람의 삶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마티스의 그림이 살롱 전시에 초대된 것이다. 카미유의 뒷모습을 그린 'Woman Reading'을 포함해 8점이 전부 팔렸다. 파리국립미술대가 주최한 대회에서는 3등을 했다. 마티스는 그림이 팔릴 때마다 카미유에게 제비꽃을 선물했다. 카미유는 에스프레소 한 잔에도 취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화가의 길을 걷는 것에 반대하던 아버지도 친척을 데리고 와 그림을 사줬다.


작은 성공에 안주하려던 동거녀와 결별
예술적 변화 밀어주는 아멜리에 청혼
‘인내의 사랑’ 속에 화가의 경력 만개
아멜리는 40년 동행 뒤 황혼 이혼 택해


그런데 1896년 여름 브리타니 지방의 벨일앙메르에 다녀온 뒤 마티스의 그림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마티스가 처음에 성공했던 작품들은 전통적인 그림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지만, 고동색과 암갈색의 다소 어두운 색채였다. 새로운 작품들은 빛을 품은 듯한 환한 색과 질감(texture)을 더 살린 헐렁한 붓질로 만들었다. 마티스의 친구들은 “색깔은 밝아졌지만 테크닉은 후퇴했다”며 걱정했다. 카미유도 충격을 받았다. 한 번 더 살롱에서 전시하면 탄탄대로에 진입할 수 있는데 왜 이상한 변화를 추구한단 말인가?

마티스는 카미유와 친구들의 반응에 눈깜짝하지 않고 계속 변화를 추구했다. 1897년에 내놓은 'Dinner Table'은 완성되지 않은 듯 대충 색칠했다. ‘비도덕적인 회화’라고 비웃는 평론가도 있었다. 새 그림은 아무도 사지 않으려고 했다. 하꼬방 같은 작업실에서 아이를 키우며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던 삶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카미유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카미유는 제발 변화하지 말라고 눈물로 간청하고 싸우다가 마티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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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책 읽는 여인(Woman Reading)’, 1895년, 유화

 

그해 가을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 마티스는 아멜리라는 여성을 만났다. 마티스는 겉으로는 대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안했다. 자신을 믿고 밀어주는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아멜리는 삶의 목표를 잡았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야 한다는 이상과 열정, 자존심을 지닌 여성이었다. 예술적 성취를 향한 마티스의 투지와 용기는 아멜리의 심금을 울렸다.

마티스는 3개월만에 아멜리에게 청혼했다. “나는 당신을 매우 사랑합니다. 하지만 난 항상 그림을 더 사랑할 겁니다.” 마티스적인 프로포즈였다. 아멜리는 마티스의 예술적 도약 과정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냉소에 흔들리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도 꿋꿋하게 참아냈다. 마티스가 1905년 완전히 변화된 그림들을 살롱에 선보였을 때 그 중 하나는 아멜리의 초상화(지난 칼럼의 ‘모자를 쓴 여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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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앉아 있는 오달리스크(Seated Odalisque)’, 1926년, 유화

 

아멜리는 마티스의 성공을 바라며 인내의 사랑을 했다. 마티스는 느낌을 그림에 녹여내는 것을 중시했다. 그래서 모델과 강렬하고 친밀한 관계를 가졌다. 아멜리는 이 오디세이를 지켜보아 주었다. 'Odalisque' 연작에서는 1920년부터 1927년까지 모델이었던 헨리에타를 향한 마티스의 억누른 성적 욕망이 드러난다 (그림 참조).

아멜리는 마티스와 40년을 함께 한 뒤 이혼했다. 마티스가 크게 성공하니까 자신의 역할이 필요없어졌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마티스의 ‘한 눈 팔기’에 지쳐 황혼 이혼을 했는지도 모른다. 마티스는 카미유의 애원을 매정하게 거절하고 아멜리를 택했다. 지금도 마티스처럼 용감한 청혼을 할 수 있는 화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랑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프로포즈에 매력을 느끼고 예술적 대망을 도와주는 아멜리 같은 여인이 있는지도 궁금하다(아멜리는 2차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를 돕다가 6개월간 투옥됐고 감옥에서 나온 직후 생을 마감했다).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AP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