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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만나는 클래식

[영상으로 만나는 클래식] 과거 명연주자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영화 ‘카네기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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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영화란 무엇인가? 정하기 나름이다. 작곡가나 연주자 이야기를 직접 다룬다면 최선이겠지만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광의의 범주에 포함된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과거의 명연주자 여러 명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또한 추억의 보물창고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에드가 울머 감독의 <카네기 홀>(1947)이 그런 영화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 지식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했다. 음악계도 마찬가지였고, 이들이 미국 무대에 서고 음악원 교수 자리를 꿰차면서 신대륙의 클래식 음악은 비약적 발전을 이룬다. <카네기 홀>은 이런 연주자들을 잘 활용한 흑백 필름이다.


드라마로는 진부한 내용이다. 아일랜드 출신 가난한 이민자의 딸로 뉴욕에 정착한 노라는 카네기 홀의 청소부로 일하다가 개성이 강한 피아니스트와 결혼하는 행운을 얻지만 일찌감치 남편을 사고로 잃고 외아들을 피아니스트로 키우는데 온갖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좋은 재능을 지닌 아들은 빅 밴드 가수와 사랑에 빠지더니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가 클럽에 합류한다. 연락이 끊어진 채 제법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아들은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으로 카네기 홀 무대에 오르고, 노라는 비로소 아들과 화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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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치는 드라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라가 카네기 홀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접하는 1940년대 최고 아티스트들의 공연 장면이다. 찬조출연한 음악가들의 면면이 놀라울 정도다. 가장 연장자인 월터 담로슈(1862년생, 1871년 미국 이주)를 필두로 브루노 발터, 아르투르 로진스키, 프리츠 라이너,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이상 지휘), 아르투르 루빈슈타인(피아노), 야샤 하이페츠(바이올린),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첼로), 릴리 폰스(소프라노), 리즈 스티븐스(메조소프라노), 잔 피어스(테너), 에치오 핀차(베이스) 등이 그 명단에 포함된다. 이중 미국 출생자는 스티븐스와 피어스 뿐이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하이페츠가 연주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발췌본이지만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리 어려운 기교에서도 완벽하게 활을 긋는 바이올린의 전설을 13분에 걸쳐 만날 수 있다. 아마도 하이페츠가 남긴 가장 좋은 화질의 영상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전설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한 쇼팽의 ‘영웅’ 폴로네즈와 파야의 ‘불의 춤’이다. 뛰어난 연주인 것은 당연하고 건반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손놀림 자체가 우아한 예술이요, 현란한 놀이처럼 보인다. 하나 더 꼽으라면 할리우드가 환영한 스타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희한한 은발을 휘날리며 지휘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라 할 것이다.




 

<카네기 홀>은 영화 전체를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점이 불편하다. 그래서 한글자막 DVD를 구입해 소장하라고 권하고 싶다. 인터넷서점에서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고, 초염가판의 경우는 민망할 정도로 싸다. 다만 흑백영화이고 오디오 포맷도 모노이므로 싼 가격이라도 가정에서 보기에 화질이나 음질상의 문제는 없다.

 

 

유형종 (무지크바움 대표·음악&무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