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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창

[미술의 창] 색은 내 머리 속의 빛…마티스의 순수색과 시감(視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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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는 순수색(pure color)으로 강렬한 시감(視感)을 주는 근대 회화의 거장이다. 사업가인 아버지는 가업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체력이 허약한 마티스가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파리로 유학을 보냈다. 마티스는 예비법률시험 코스에 등록하여 공부를 한 뒤 고향에 돌아와 법률사무소 서기로 일했지만, 변호사가 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대신 사무소 일이 끝나면 독학 자습서를 보고 그림 공부를 했다. 첫 번째 작품을 완성한 것이 21세가 되던 1890년이었다.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피카소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피카소는 그 나이가 됐을 때 이미 1000여 점을 그린 상태였다.

 
마티스는 결국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리에 가서 화가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05년 경 그의 작품이 파리 미술계를 강타하기 시작했을 때 당시 비평가들은“무질서의 화신이고 전통으로부터 야만적으로 분열했다”고 혹평했다. ‘야수파(Fauvism, 野獸派))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여진 것이다.

 

외관에 나타난 색의 묘사가 아니라
느낌을 번역해 낸 색을 화폭에 옮겨


비평가 비난에도 관객들은 받아들여
미술계는 시각적 교감이 언어를 앞서
 

 
마티스의 작품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린 그림과 확연히 달랐다. 전통적 그림에서는 물감을 여러 층으로 얹어서 명암과 입체감이 자연스럽고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반면 마티스는 선명한 순수색을 그대로 또 거칠게 사용했다. 입체감을 내지 않고 캔버스 화면에 평평하게 색(flat color)을 칠했고 보색(complementary color)들을 나란히 배치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빨강의 조화(Harmony in Red)’를 살펴보자. 러시아의 유명한 컬렉터였던 세르게이 슈킨이 모스크바 저택에 걸었던 작품이다. 이 큰 그림의 대부분은 고르게 칠한 순수 빨강이 차지한다. 테이블부터 벽까지 마치 염색한 것처럼 빨강이 흠뻑 스며있다. 빨강 안에는 단순하게 색칠한 사과, 오렌지, 레몬, 디캔터(decanter), 장식대 등이 벽과 테이블 보에 떠있는 듯한 파란 아라베스크 무늬와 어우러져 있다. 창문 밖에 보이는 나무 잎은 초록색이 아니다. 밝은 하늘색과 흰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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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빨강의 조화(Harmony in Red/La desserte rouge)’, 1908, 유화 (178cm x 219cm)


이 그림을 보면 우리의 시각은 단순화되어 있는 형태나 빨강의 과감한 화면 정복에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 즉각적으로 받아들인다. 단순한 것들이 유아적인 듯 하면서도 빨강 속에서 고함을 치는 게 아니라 화음을 이루어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느낌을 받는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끌리듯이, 빨강 화면은 눈길이 놓칠 수 없는 무언의 에너지를 내뿜는 듯하다.


전통적 잣대만 들이대던 비평가들은 마티스의 창조를 ‘무질서’나 ‘분열’, ‘야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마티스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더라도 순수색들을 잘 배치하면 머리 속에서 시감(視感)이 만들어지는 것을 수많은 노력을 통해 깨달았다. 마티스의 천재성은 이렇게 그림 그리는 새로운 문법(文法)을 내놓은 데 있다. 마티스는“색은 내 머리 속의 빛”이라고 말했다. 사물의 외관에 나타난 색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느낌을 번역해낸 색을 화폭에 그려냈다.

 
미술 관객들은 이러한 시각이 보내는 초대장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인다. 당시 비평가들은 전통적인 규범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마티스를 즉각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애호가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마티스의 문법을 설명하는 비평가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미술에서는 시각적인 교감(交感)이 언어를 앞선다.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