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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공정의 차원에서 행정구제법의 개혁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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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처음에 - 행정법 및 공법은 결코 민사법의 단순 연장이 아니다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이 각자의 나름의 철학과 나름의 정략적 차원에서 서로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공정과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대통령 선거의 최대의 화두가 된 것에서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우리의 냉정한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정과 정의가 시대적 화두가 된 점을 온전히 수긍하여, 새삼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과연 공법제도 특히 행정구제에서 구현되고 있는지를 성찰하고자 한다.

행정구제시스템은 행정소송과 국가책임제도를 통해 법치국가원리의 구체화를 담보하는 기능을 하는데, 동시에 그것의 전개양상은 민주화에 비례한다. 현행의 행정구제시스템의 문제점과 미비점은 법치국가원리의 관점에서 늘 성찰해야 한다. 행정구제에서 권리보호친화적 해석이 원칙으로 통용되어야 하지만, 기본적 체제를 넘어갈 수는 없다. 현행의 법제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메워야,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의 구체화로서의 행정법의 위상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현행 행정구제법을 포함한 행정법제 전체는 기실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에 터 잡아 구축된 것이 아니고, 원천적으로 관헌국가적 행정법으로서의 태생적 DNA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의 이해와 현실과의 심각한 부조화가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더욱이 일본 행정법의 문제점으로 아베 야스타카(阿部泰隆) 교수가 지적한 민사법제국주의(民事法帝國主義) 마냥 과도한 민사법위주적 접근이 견지되면, 행정법 및 공법은 본연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浮遊)할 수밖에 없다.

행정법 및 공법은 결코 더 이상 민사법의 단순 연장이 아니다.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에 합치하며 시대에 조응하는 행정구제법의 구축이 시급하다(참고문헌: 김중권, 개헌논의에 따른 국가배상(國家賠償) 시스템의 발본적 개혁(拔本的 改革)에 관한 소고(小考), 유지태 교수 10주기 추도논문집, 2018.; 공법재판에서 잠정적 권리구제시스템의 개혁에 관한 소고, 성낙인 총장퇴임기념논문집, 2018. 참고).


Ⅱ. 논의의 전제 : 민주공화국에서 개인의 지위

행정기본법은 목적으로 '국민의 권익보호'를, 그 목표로 '행정의 민주성', '행정의 적법성', '행정의 적정성' 및 '행정의 효율성'을 내세운다(제1조). 이들 목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행정의 민주성'의 확보이다(행정기본법 이전에 전자정부법,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주민투표법에서 '행정의 민주성'이 법률목적에 등장했다). 사람을 국가내에서 객체(대상)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한다(BVerfGE 27, 1(6)). 민주공화국에서는 국가가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개인이 정점에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행정과의 관계에서도 행정사건과 행정활동의 대상에 해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대우받을 것이 요구된다. 민주화는 자유로운 개인의 주체적 지위를 전제로 하기에, 국민이 통치의 대상에서 벗어나 국가를 상대로 권리주체로서의 지위를 갖는 임계점에 행정의 민주성의 실현이 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적어도 자신의 매우 중요한 이익이 문제되는 한, 국가에 대한 주관적 권리의 주체이다. 행정법의 관헌국가적 역사성에 비롯된, 시대와 부조화된 행정법의 상황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상황인 동시에 '이질적 시간의 병존'을 여실히 나타낸다. 행정법제 전반을 개인의 주체적 자아를 전제로 한 민주성의 차원에서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사람이 대상(객체)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차원에서 개인은 행정구제에서 단지 판결을 포함한 국가권력행사의 객체로 치부되어서는 아니 되는데, 여기서 무기대등의 원칙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Ⅲ. 국가배상법의 차원의 개혁

국가배상법의 차원의 문제는 민사불법행위의 기조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접근하는 데 있다. 사적 자치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리행사 및 의무이행이 다투어지는 민사관계에서의 한편 당사자의 불법행위가 문제되는 상황과 국가가 법구속의 요청에 반하는 행위를 하여 국민이 그로 인해 손해를 입어서 다투는 상황은 이미 출발점에서 다르다. 후발법이자 신생법으로서 행정법이 민사불법행위의 시스템을 벤취마킹한 것은 자연스러우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행정법과 공법이 자신의 본연의 위치를 공고히 한 다음에는 국가배상책임제도를 고유한 공법제도로 구축해야 한다. 더 이상 그것이 의미 없는 공법의 베일로 가려진 민사불법행위론이 발현하는 장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국가배상법상의 주관적 책임요소의 존재는 행정소송상의 위법성판단과 국가배상법상의 위법성판단을 다르게 만들거니와(대법원 2008다30703판결 등) 가해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의 존부가 국가책임 인정의 궁극적인 기준이 되게 한다(대법원 2010다83298판결 등). 특히 대통령의 긴급조치가 법적으로 무효로 판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집행에서의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 책임요소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음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이 부정되곤 한다(대법원 2013다217962판결 등). 법적으로 위헌 무효가 된 긴급조치가 국가배상책임의 차원에서는 결과적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인데 과연 일반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구보다도 법에 정통하고 정통해야 할 공무원이 위법하게 행위를 하였는데, 그의 고의나 과실의 존부로 국가배상책임의 존부가 가늠된다는 것은 국가배상책임제도의 제재기능·위법행위억제기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아가 주관적 책임요소의 존부에 관한 판사의 전속적인 판단에 좌우될 여지가 있다는 것 역시 낮추어 볼 수 없는 문제점이다. 국가배상법 제2조의 '공무원의 고의와 과실' 부분은 삭제되어야 한다.


Ⅳ. 행정소송법의 차원의 개혁

법치국가원리에서 완전히 유효한 권리보호의 보장이 도출된다. 헌법 제27조의 재판청구권의 기능은 포괄적인 사법적 권리보호의 보장에 있은 즉, 그것을 통해 효과적인 권리보호의 보장이 강구되어야 한다. 잠정적 권리보호는 효과적인 권리보호를 위한 기본요소이다. 그러나 잠정적 권리구제는 공법소송상으로 낮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공법재판에서의 잠정적 권리보호 자체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보다는 민사상의 그것의 파생물로 여겨질 정도이다. 공법소송의 메커니즘은 법치국가원리의 차원에서 국가와 국민을 권리주체의 차원에서 대등하게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행정소송에서 집행부정지 원칙의 채택은 국민을 여전히 국가활동의 객체적 지위에 머물곤 한다. 행정쟁송에서 집행정지 원칙의 채택 여부를 입법정책적 물음으로 접근한 일본에서의 논의가 아무런 비판 없이 채용한 것에 대한 성찰이 시급하다. 민사집행법상의 가처분제도는 보전기능과 중간만족의 기능을 갖지만, 법치국가원리에 터 잡은 행정소송의 잠정적 권리보호는 보전기능과 행정통제기능을 갖는다(Hufen, Verwaltungsprozessrecht, 8.Aufl., 2011, S.458.). 행정통제기능은 행정의 법구속의 차원에서 행정소송이 종료되기 전에 불법이 집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여기에 공법소송에서의 잠정적 권리보호가 민사가처분제도와 구별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집행정지의 원칙을 규정한 그들 행정법원법 제80조 제1항을 효과적인 권리보호의 기본법적 보장의 개별법적 표현으로, 또한 정지효의 원칙이 공법쟁송의 근본원칙이라고 판시하였다(BVerfGE 80, 244(252). 또한 집행정지와 집행부정지가 원칙과 예외의 관계에 있으되, 만약 이런 관계를 역전시키는 행정실무는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BVerfGE 35, 382(402)). 행정법원에 의한 잠정적 권리보호가 입법자가 임의로 부여하거나 제한하거나 빼앗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 헌법상의 명령인 점을 자각하여 하루바삐 집행정지가 원칙이 되어야 한다.


Ⅴ. 맺으면서-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논리가 요구된다

법률은 법령집을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고, 실제 생활을 위하여 만들어져야 하듯이(독일 2016년 규제개혁 보고서 메르켈 수상 환영사), 행정구제시스템은 국민을 위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과거 필자가 '차기정부의 공법적 과제'를 주제로 2012년 10월 27일에 개최된 공법학회 학술대회에서 "21세기 국가모델을 위한 행정기본법의 제정"을 주창하였는데, 그 결실로 지난해 3월에 행정기본법이 제정되었다(법률 제17979호). 우리 행정법 및 공법이 일본의 그것과 다른 길을 내딛는 첫걸음인 행정기본법마냥 행정구제시스템 역시 이상과 같이 바뀔 것을 기대해본다. 대전환의 시대에는 그에 맞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논리가 요구된다(김중권, 대전환의 시대에 국가의 역할과 행정법(공법)의 개혁 및 현대화, 2021행정법포럼, 2021년 11월 12일).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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