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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대형로펌 최초 ‘유리천장’ 깼다… 이영희 ‘바른’ 대표변호사

“여성변호사들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공감능력”

미국변호사
지난 9월 법조계의 두꺼운 유리천장을 깨고 당당히 대형로펌 경영대표변호사에 선출된 여성 법조인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이영희(50·사법연수원 29기·사진) 바른 신임 대표변호사이다. 2000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공채 1기'로 바른에 입사해 바닥에서부터 잔뼈를 키웠다. 실력을 쌓아 2011년 파트너 변호사가 됐고 2018년 운영위원에 선출된 데 이어 입사 22년 만에 경영대표에 올랐다. 우리나라 10대 로펌 중 사법연수원 수료 후 어쏘변호사로 입사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여성은 이 대표가 처음이다. 법조계의 유리천장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이 신임 대표를 지난달 19일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서 만나 삶과 포부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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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 작은 소도시의 '딸 부잣집'에서 자란 이영희(50·사법연수원 29기·사진) 법무법인 바른 신임 경영대표변호사는 어릴 적부터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다섯 딸들 중 첫째인 이 대표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는 남달랐다고 한다. 아버지는 "여성도 법조인이 될 수 있다"고 늘 강조했다. 그 영향 때문이었을까, 이 대표는 자연스럽게 '법조인'을 꿈꾸게 됐고 학창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도 당연하게 법조인이라고 적었다.


“여성도 법조인 될 수 있다”

아버지 격려에 법대 진학

 

"아버지께서 사실 법조인이 되는 것이 꿈이셨어요. 하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사법시험을 오래 준비할 수 없었고 직업군인이 되셨지요. 그래서 법조인이라는 꿈에 미련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에는 여성 법조인이 굉장히 소수였기 때문에 여성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면 신문에 크게 실릴 정도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 신문을 스크랩해서 저희들에게 보여주면서 '이것 봐라. 여성도 법조인이 될 수 있다. 너희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표는 아버지의 말씀을 받잡아 홀로 서울로 상경해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모든 행사의 주체가 여성이 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히 얘기하는 여대의 학풍 속에서, 모교 출신인 이태영 변호사를 롤 모델로 삼고 법조인이 되기 위해 사법시험에 매진했다. 그 사이 그가 법조인이 되길 누구보다 응원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슬픔도 겪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언제가 되더라도 경제적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유지를 남겼다. 뜻을 이어받은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이 대표는 1997년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1997년 사시합격 후  

공채 1기로 법무법인 바른 입사

 

사법연수원 졸업반이 되면서 이 대표는 진로를 고민했다. 그런 그를 보고, 정장오·박삼봉 사법연수원 교수가 "신생 회사인데 작지만 배울 게 많고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이라며 법무법인 바른을 추천했다. 자신을 오랜 기간 지켜봐 온 교수들이 추천하는 곳이라 다른 곳은 고려도 하지 않고 바른에 지원서를 냈다. 당시 30명 이상이 바른에 지원했고 최종적으로 2명이 선발됐다. 이 대표와 현재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 중인 문선영 교수가 바른의 '공채 1기' 변호사다. 바른이 설립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2001년 ‘이용호게이트 특검’ 합류 

법조인으로 큰 경험

 

"2000년 2월 입사하고 보니 바로 윗 선배가 최혜리 변호사였고, 조중한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귀호 전 대법관 등이 계셨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이지요. 여성 변호사가 소수인 시절이었음에도 공채 1기에 여성 변호사 2명이 뽑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 전 대법관께서 '성별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 유능하다면 성별을 가리지 말고 여자 두 명을 뽑자'고 하셨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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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은 가족적인 분위기의 로펌이었다. 이제 막 법조계 생활을 시작한 막내 변호사였지만 선배들은 큰 사건 미팅에도 막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이 대표가 나름대로 쟁점을 정리해서 가지고 가면 선배들이 '빨간펜'을 들고 잘못 짚은 부분들은 하나하나 고쳐줬다. 때때로 감당하기 벅찬 업무에 3~4일씩 집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이 대표는 이때의 가르침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한때 여성변호사에 대한 편견과  

싸워야 하는 순간도 

  

그러다 2001년 이 대표는 그의 법조인 생활에 한 획을 긋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용호 게이트' 수사를 위한 차정일 특별검사팀에 수사관으로 참여한 것이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바른으로 추천 요청이 왔지만 선배들은 "신입이 둘 뿐이고 일이 많아 특검에 보내는 것은 곤란하다"고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이때 정 전 대법관이 목소리를 냈다.


"정 전 대법관께서 '다들 전관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경력이 되고 앞으로도 일하는 데 큰 곤란함은 없겠지만 막내 변호사들은 아니다. 특검을 통해 이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경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마침 동기인 문 변호사가 임신 중이라 자연스럽게 제가 특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차정일 특검팀에서도 역시 기라성 같은 분들을 만나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옆에서 직접 지켜보니 사건에 대한 집요함과 집념, 직업적 소명의식이 강한 분들이라 느꼈습니다. 105일간의 특검 경험은 저에게 사건을 보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중요한 사건은 의뢰인 요구로 

 배제되는 경우도 있어


변호사로 일하면서 의뢰인들의 여성변호사에 대한 편견 및 차별과 싸워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변호사 수 자체가 워낙 적어 의뢰인들도 여성변호사가 익숙치 않았다. "여성변호사에게 내 사건을 맡겨도 괜찮은거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지금은 의뢰인들의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껴 


173983_2.jpg"20년 전만 해도 중요한 사건들은 의뢰인의 요구로 여성변호사들이 배제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러면 속으로 '내가 더 잘하는데…'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웃음). 지금은 여성변호사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이 늘어났습니다. 여성변호사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고, 오히려 더 꼼꼼하고 잘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여성변호사를 찾는 의뢰인도 있습니다. 여성변호사를 바라보는 의뢰인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20년 전 선배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일을 배워나가기 바빴던 새내기 변호사가 지금은 바른에서 맏언니의 위치가 됐다. 이때문에 이 대표의 방은 늘 후배들로 북적인다. 격무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후배 여성변호사들이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육아로 인해 저녁 시간을 할애해 의뢰인을 발굴할 수 없다면 여성변호사만의 장점인 '공감 능력'을 발휘해 의뢰인의 신뢰를 얻으라"고 조언한다.

 

의뢰인의 이야기 잘 들어주는 줄 때  

신뢰도 쌓여


"후배들 중에는 저녁 시간에 육아를 해야하니 의뢰인과 술자리 등을 함께 하기가 어려워 이후 사건 수임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공감 능력이 여성변호사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6시간 동안 의뢰인의 고민을 공감하며 들어준 적이 있어요. 그 의뢰인은 제가 세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변호사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의뢰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건 여성변호사들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의뢰인에게서 신뢰를 얻으면 그 의뢰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믿을 만한 변호사라며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증거 기록을 가만히 앉아서 보지 말고 현장에 가보라고 말합니다. 변호사들은 종이에는 나오지 않는 이면의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럴려면 사건 현장에 가야 하지요. 저녁에 술을 마시는 것보다 이러한 노력이 변호사에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증거기록도 앉아서 보지만 말고 

현장에 가 봐야 


이 대표가 입사할 때만 해도 변호사가 10여명에 불과해 작은 로펌이었던 바른은 어느덧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로펌이 됐다. 그 사이 때로는 엄하게 가르침을 받으며, 또 때로는 가족처럼 희노애락을 나누며 이 대표 역시 바른과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지난 9월 이 대표는 소속 파트너 변호사 130여명의 선거를 통해 바른의 차기 경영담당 대표변호사에 선출됐다. 우리나라 10대 로펌 가운데 어쏘로 출발해 유리천장을 깨고 최고경영자가 된 최초의 여성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최초’ 타이틀은 

수많은 여성변호사 노력의 결실  


"제가 '최초'라고는 하지만, 다른 분들의 노력이 지금까지 뒷받침 되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법조계에 여성 숫자가 늘어나면서 많은 분들이 여성변호사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주장하고 또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들이 그동안 끊임 없이 유리천장을 두드리고 또 두드려온 것이지요. 저는 이미 충분히 그들의 노력으로 금이 간 유리천장에 마지막으로 한번 툭 쳤을 뿐인데 마침 그 순간에 유리천장이 깨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최초'의 의미는 그런 수많은 여성변호사들이 헌신한 노력의 결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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