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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대한민국이 체결한 백신구매계약과 UN통일매매법(CISG)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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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지난 4월 23일 유럽연합과 27개 회원국은 벨기에 법원에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를 상대로 COVID-19 백신 부족 사태의 책임을 묻는 소를 제기하였다. 한국도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과 백신구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국가계약임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이 적용되고, 특히 그 내용이 공적, 즉 국가적, 경제정책적 이익에 주로 관련되는 규정들은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관련하여, 그 목적물이 백신처럼 동산(動産)이고, 일방 당사자가 외국기업이어서 국제거래인 경우, 국가계약에서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한다는 것이 UN통일매매법(국제물품매매협약, 이하 'CISG')에 관하여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만일 CISG를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경우 우리 국가계약법령과는 어떠한 관계에 놓이는지 문제된다.


Ⅱ. CISG의 소개

1980년 4월 채택된 CISG는 가장 기본적인 국제거래 유형인 물품(동산)매매계약을 규율하는 국제규범으로서 조약인 '통일실질법'이다. 이는 법적용규범인 저촉법(국제사법)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우리 민·상법처럼 저촉법(국제사법)에 의하여 준거법으로 지정됨으로써 특정 법률관계나 쟁점을 직접 규율하는 통일적 규범이다. CISG가 적용되는 국제물품매매계약의 경우, 계약의 준거법을 고민할 필요 없이 곧바로 이에 의하여 규율된다.


Ⅲ. CISG와 국가계약인 국제 백신구매계약의 준거법: 유럽연합과 미국의 사례

유럽연합과 아스트라제네카 사이에 2020년 8월 27일 체결된 백신구매계약 제18.5조 (b)항에 따르면 벨기에 브뤼셀 법원이 관련 분쟁의 전속관할을 가지며, 제18.4조에 따르면 벨기에법이 계약의 준거법이다. 벨기에는 CISG의 체약국이므로 CISG는 벨기에법의 일부를 이룬다. 위 백신구매계약에는 CISG의 적용 배제 조항이 없으므로, 위 준거법 조항에 따라 CISG가 위 백신구매계약을 규율한다(CISG 제6조). 아스트라제네카가 체약국인 벨기에 등에 영업소를 두고 있으므로 CISG 제1조 제1항 (a)호에 따라 계약관계 전반에 CISG가 적용된다(국가가 일방 당사자인 경우, 해당 국가의 '영업소'란 문제된 거래행위를 수행하는 국가기관의 주된 사무소 소재지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해당 정부기관이 체약국인 유럽연합 국가들 내에 소재하므로 위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체약국이 아닌 몰타와 아일랜드의 경우에도 CISG 제1조 제1항 (b)호에 따라 유럽연합의 국제사법규칙인 로마 I 규정 제3조 제1항을 통하여 준거법인 벨기에법의 일부인 CISG가 적용된다. 결론적으로 유럽연합과 아스트라제네카 사이의 백신구매계약은 CISG에 의하여 규율된다. 유럽연합이 큐어백, 화이자와 체결한 백신구매계약도 각각 제1.21.1조와 제I.13.1조에서 벨기에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연방정부가 COVID-19 백신의 신속 접종 등을 위하여 민관 정책 협력 태스크포스(Operation Warp Speed)를 출범시켰고, 2020년 7월 이래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의 제약사들과 백신구매계약을 체결하였다. 미국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위 계약상 준거법 규정이 불명확한데, 아스트라제네카와 체결된 서한계약(Letter Contract) 형태의 백신구매계약 Section I(a)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상업물품 조달에 적용되는 미국 연방조달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FAR')의 제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연방조달규정은 이에 참조되어 계약 내용을 이룬다. 위 규정 (6)호는 "해당 계약의 위반에 관한 청구에는 미국법이 적용된다"고 규정한다.

미국 연방조달규정은 연방기관의 물품, 용역, 공사 조달에 필요한 모든 법률적 사항을 규제하는데, 연방조달규정에 관한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CISG가 국제조달에 적용되는 규칙의 일부를 이룰 수 있다(W. N. Keyes, Government Contracts under the 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2003), pp. 566-569). 미국은 CISG의 체약국이며 백신은 물품(동산)이므로, 이를 목적물로 하는 구매계약에는 CISG가 미국법의 일부로서 적용될 수 있다. 미국의 판례와 학설에 따르면 CISG는 자기집행적 조약이고, 미국 연방헌법 제6조 제2항에 따라 조약은 연방법에 우선하는바, 미국(연방정부)와 다른 체약국의 당사자 간 체결되는 물품매매계약에 있어 CISG는 통일상법전(Uniform Commercial Code) 제2편이나 주의 계약법에 우선하여 적용된다(U.S. Nonwovens Corp. v. Pack Line Corp., 4 N.Y.S.3d 868, 871, (N.Y.Sup 2015)). 다만 미국계 제약사들은 외국(정부)과 백신구매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CISG의 적용을 배제하기로 별도 합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 경우에는 제약사들의 영업소 소재지가 채택한 통일상법전이 해당 계약을 규율할 가능성이 있다.


Ⅳ. 한국 국가계약의 주요 사항과 국제거래인 국가계약에서의 특수한 고려사항

국가계약은 본질적으로 사인 간의 계약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법의 규정 내지 법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2002다73852 판결 등). 다만 국가계약은 요식성을 요구하여, 국가계약법 제11조에 따라 계약을 체결할 때 목적, 금액, 이행기간 등 그밖에 필요한 사항을 명백하게 기재한 계약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이는 국가계약의 성립요건인바(2013다215133 판결 등), 내용에 이러한 사항들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새길 수 있다.

그런데 국가계약이 국제거래인 경우에는 국가계약법령과 달리 할 수 있는지, 특히 위에서 본 국가계약의 성립요건을 완화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특례규정 제40조는 특정조달계약에 있어서 조달절차 수행과 관련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국제상관례에 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제상관례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립된 것이 없어 사안별 검토가 필요하나, COVID-19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함에 따라 백신구매계약이 세계 각국에서 체결되고 있고, 한국도 그러한 계약의 내용에 준하여 조달절차 수행에 불가피한 사항들을 규정하였다면 국제상관례에 의한 계약 체결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이 백신구매계약서에 비록 이행기간(공급시기)을 특정한 일자로 확정하지 않았더라도, 유럽연합과 아스트라제네카 사이의 백신구매계약 제5.1조와 유사한 형태로 '최초 물량(initial doeses) 중 일정 물량은 대략 2021년 1분기까지(approximately by Q1 2021), 나머지는 2021년 연말까지' 등 이행기간을 단계별로 규정한다든가 최대한도를 명시하는 등으로 규정하였다면 국제상관례에 준하는 계약 체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례가 없는 COVID-19과 같은 사태의 경우, 공급자와 구매자에게 불측의 사정이 생길 수 있으므로, 큰 틀에서 기본계약(umbrella contract)을 체결해두되 개별 발주량별 공급시기나 대금지급시기 등은 그때그때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는 유연하게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V. 맺음말 - 국제거래인 국가계약에 관하여 CISG와 국가계약법령의 관계

백신구매계약에서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했거나 또는 지정이 없더라도 CISG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CISG가 적용된다. 그렇다면 한국이 여러 제조회사들과 체결하는 백신구매계약의 준거법이 통일되어 신속한 계약이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에 백신구매계약에서 CISG의 적용을 배제하였다면 제약회사에 따라 준거법이 다를 수 있으므로 우리는 준거법이 어느 국가의 법인지와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것을 모르는 채 백신구매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혹여 준거법의 차이로 인하여 제약사에 대한 책임추궁이 불가능하게 되어 한국에 불이익이 발생한다면 계약 담당기관의 책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CISG가 적용되는 경우 국가계약법령과 충돌이 있는 사항에 관하여는 상충되는 범위 내에서 국가계약법령이 CISG를 수정하게 된다고 볼 수도 있으나 아직 확립된 원칙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국가계약법령의 여러 규정들 중 어느 것이 국제적 강행규정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필자는 국가계약법 제5조 부당특약 금지원칙의 경우 이것이 효력규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당초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다가 법에 승격되어 규정된 점, 계약상대자의 형평과 국가에 대한 합리적 기대 등을 보장하려는 규정인 점 등을 고려하면 이를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행 국가계약법 체계는 위와 같이 국제상관례라는 불확정개념을 활용하고 있을 뿐 국제계약의 특수성을 세밀히 고려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어서, 이를 점차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유정화 변호사 (김·장 법률사무소)

 

 

※ 이 글은 학술적 관점의 개인적 견해이며 소속 사무소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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