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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평석

납품업자와의 특약으로 대규모유통업법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지 여부

- 대법원 2020. 6. 26. 선고 2016두55896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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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관계 및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 사이에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규모유통업법') 조항과 다르게 정한 특약이 존재하는 경우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볼 수 없는지에 대한 쟁점을 살펴보기 위하여 최근 선고된 홈쇼핑사업자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0. 6. 26. 선고 2016두55896 판결)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홈쇼핑사업자인 A사는 납품업자로부터 생활용품 등을 납품받아 판매한 후 상품판매대금을 월 판매마감일부터 40일(법정지급기일)이 지난 후에 지급하면서 그에 따른 지연이자를 지급하지 아니하였다. A사는 납품업자들과 표준거래계약을 체결하면서 "법원, 세무당국 또는 연금관리공단 등으로부터 지급정지요청, (가)압류, (가)처분, 추심 등의 결정이나 명령이 있는 경우(제1호) 등에는 A사의 납품대금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고 약정을 하였는데, A사에게 납품업자들에 대한 채권가압류 결정 등이 송달되었기 때문이다. 즉, A사는 위 약정에 따라 지급을 보류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A사의 행위가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대규모유통업자는 해당 상품의 판매대금을 월 판매마감일부터 40일 이내에 납품업자 등에게 지급하여야 한다) 위반이라고 판단하였다.


2. 대법원 판단

서울고등법원은 A사의 행위가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는데, 대법원은 해당 부분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규모유통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특정 조항을 계약에 편입시킬 우려가 항시 존재하는 거래현실을 아울러 고려하면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 사이에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제1항, 제2항에서 정한 법정지급기한과 지연손해금률과 다른 내용의 약정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위 규정의 적용을 곧바로 배제할 수 없고, 그 약정이 납품업자의 자발적 동의하에 체결되었다는 사정까지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제1항, 제2항보다 불리한 내용의 계약 조항이나 약관 조항에 관하여 납품업자로부터 자발적 동의를 얻지 못하였음에도 이를 근거로 납품업자를 상대로 위 규정 위반행위를 하는 것은 그 계약 조항이나 약관 조항이 사법상 유효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우 납품업자는 대규모유통업자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대규모유통업자의 위반행위가 없었더라면 지급받을 수 있었던 지연손해금 상당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대법원은 당사자 간의 사적자치를 존중하여 사법적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되, 거래상 열위에 있는 납품업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납품업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한 경우에만 사법적 약정의 효력 및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대한 정당화사유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으로, 납품업자의 구제를 위하여 일정한 요건 하에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여 시정명령으로서 지급명령을 부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3. 쟁점별 검토
가. 납품업자와의 특약으로 대규모유통업법 적용배제가 가능한지

본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를 단속규정으로 판단하였는데, 법 조문의 규정방식이 그 위반행위에 대하여 무효라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점, 거래를 무효로 할 경우 거래의 안정성이 침해된다는 우려 등을 고려한 하도급 공정화에 관한 법률 규정에 관한 선례가 다수 존재하는 점, 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조치 등을 하면 사법상 효력을 무효로 하지 않더라도 납품업자에 대한 보호가 충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대상이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라는 상인간의 거래인 점, 대규모유통업법에서 정한 내용과 다르다고 하여 당사자 간의 합의가 존재함에도 그러한 합의의 효력을 일괄적으로 무효로 하는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납품업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규모유통업법의 모든 규정을 효력규정으로 보거나 대규모유통업법과 내용이 다른 모든 약정의 효력을 무효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법원의 판단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대규모유통업법 조문 중 제8조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할 때 효력규정으로 볼 여지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대규모유통업법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규모유통업자의 횡포로부터 열세적인 지위에 있는 납품업자 등을 보호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보완적으로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입법취지로 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는 납품업자에 비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있는 대규모유통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대금지급기일을 늦추어 납품업자에게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으로 법문상 특별한 예외사유를 규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해당 위반행위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입법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와 합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대금지급기일을 늦추는 행위는 납품업자의 현금흐름을 원활하지 못하게 하여 납품업자의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법에서 예외조항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법정지급기한을 회피하기 위한 사업자간 약정을 유효하다고 본다면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를 의무규정화한 취지 자체가 몰각될 여지도 있다. 실제적으로 해당 법률행위의 사법상 효력을 유효로 할 경우 피해자인 납품업자는 법 위반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민사규제를 받기 어려워진다. 행정법상으로는 납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존재하나 민사상으로는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시정명령으로서 지급명령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납품업자의 권리구제가 복잡해 질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면 민사상 권리구제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는 듯하다. 또한, 가압류 결정이 송달되더라도 이행지체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데 이러한 지체책임을 면제하여 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표준계약서상 이 사건 지급보류조항은 A사에게는 이득인 반면 납품업자에게는 불리한 조건이고, A사는 공탁을 통하여 이중변제 등의 위험을 쉽게 회피할 수 있으므로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 간 이익을 형량하더라도 해당 약정을 반드시 유효로 해야 할 필요성이 높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나.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위반에 해당되는지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정 내용과 다른 약정이 존재하는 경우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는지 여부가 문제되는데, 대법원은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 사이의 지위를 고려하여 대규모유통업자가 자발적인 동의여부를 입증하도록 절충안을 두면서 자발적인 사법상 약정이 존재하면 정당화사유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듯하다.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자의 거래는 상인간의 거래이고, 상인간의 거래에는 경쟁당국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 간 사법상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납품업자를 보호하려는 대규모유통업법의 취지를 반영한 대법원의 판단은 타당하고, 다른 대규모유통업법 위반행위의 위법성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문언의 형식은 정해진 유형의 행위가 이루어진 경우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위법성을 인정하거나 혹은 부당성을 위법성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대규모유통업법의 다른 규정과 다르다. 즉, 법 문언에서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부당성 및 정당화사유를 규정하지 않고 그 지급기일을 명확히 특정한 제8조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할 때 당사자 간 사법상 약정의 존재만으로 정당화사유를 인정하여 법 위반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또한, 본 사안에서 문제가 된 당사자 간 합의는 대규모유통업자의 입장에서는 제8조와 달리 정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게 될 손해가 명확하지 않은 반면, 납품업자의 입장에서는 가압류 결정 등이 송달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납품대금지급이 보류되는 불이익을 입게 된다는 점에서 해당 약정의 존재가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여야 할 불가피한 사정(특단의 사정)에 해당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론적으로 당사자간 사법상 약정을 근거로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은 대규모유통업법의 위법성 판단방식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불공정거래행위와 달리 정한 취지, 제8조의 문언에서 법 위반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확히 규정한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다만, 대법원의 입장과 같이 납품업자의 자발성을 판단함에 있어 엄격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면 실제 법 적용에 있어서는 조화로운 해석이 가능하나 실제 거래관계에서 형식적인 자발성을 이유로 대규모유통업법 규정의 취지를 몰각할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유통업법 제8조와 같은 형식으로 규정된 법 위반행위의 예외를 일반적으로 인정함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현영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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