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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평석

병원 침대 낙상사고와 의료기관의 손해배상책임

- 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20다244511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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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관계

① A는 2017년 12월 7일 급성담낭염으로 피고 병원에 입원하여 경피적 담도배액술 및 도관 삽입술을 시행 받았는데, 피고 병원은 낙상위험도 평가도구 매뉴얼에 따라 A를 낙상 고위험관리군 환자로 평가하여 낙상 방지를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하였다. ② A는 2017년 12월 11일 오전 4시경 중환자실에서 침대에서 떨어져 뇌손상을 입는 이 사건 낙상사고를 당하였다. ③ 피고 병원의 중환자실은 침대 매트리스 및 신체손상 여부 등의 확인을 위해 간호사를 2인 또는 3인 1조로 배치하고 있는데, 이 사건 낙상사고 발생 당시에도 중환자실에서는 간호사 1명당 환자 3명을 보살피고 있었다.

2. 항소심법원의 판단

항소심은 "①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도 A가 어떠한 경과로 침대에서 떨어져 이 사건 낙상사고가 일어난 것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② A는 이 사건 낙상사고 당시 수면 중인 상태로 보이고 달리 A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볼 자료가 없다. ③ A가 낙상 고위험군 환자였음에도 이 사건 낙상사고 당시 A의 침대 근처에는 낙상에 대비한 안전예방매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등의 사실을 인정하고, A가 낙상의 위험이 큰 환자였음에도 낙상사고 방지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피고 병원에 있다고 보아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서 환자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에 관하여 의료상의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을 증명함으로써 그와 같은 손해가 의료상의 과실에 기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지는 아니한다. 피고 병원이 A가 낙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취하였던 당시의 여러 조치들은 현재의 의료행위 수준에 비추어 그다지 부족함이 없었다고 볼 여지가 있을뿐더러, 피고 병원의 간호사가 중환자실에서 A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살핀 뒤 불과 약 15분 후에 이 사건 낙상사고가 발생한 것을 가지고 낙상 방지 조치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를 피고 병원 측이 충분히 살피지 아니하거나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또한, 원심은 이 사건 낙상사고 당시 A의 침대 근처에 낙상에 대비한 안전예방매트가 설치되지 아니한 것을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한 논거 중의 하나로 삼고 있으나, 원심으로서는 이와 같이 단정하기에 앞서 낙상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예방매트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오늘날의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현가능하고 또 타당한 조치인지, 나아가 피고 병원이 안전예방매트를 설치하지 아니한 것이 의료행위의 재량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는지를 규범적으로 평가하였어야 한다. 나아가 원심도 인정한 바와 같이 낙상사고 당시 A가 어떠한 경과로 침대에서 떨어지게 된 것인지 자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고,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 병원 측에서는 당시 낙상 방지를 위한 나름의 조치를 취하였을 뿐 아니라 침상 난간 안전벨트를 채운 상태에서도 환자가 스스로 침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므로, 원심으로서는 피고 병원의 과실을 쉽게 인정하기에 앞서 이 사건 낙상사고의 발생에 의료상의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인지 등을 보다 충실히 심리·판단하였어야 한다. 원심의 판단에는 의료행위상의 주의의무 위반 및 그 증명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4. 검토(본 대법원 판결의 의의)
1)
의료과오소송에서 피해자인 환자 측은 비전문가이고, 증거방법은 의사가 거의 독점하고 있음에도(증거의 구조적 편재), 감정인이나 감정증인인 의사나 의료기관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정결과나 진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송현실을 감안하면 피해자에게 증명책임의 기본원리를 수정 없이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증명책임제도의 기본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형평의 이념(무기 평등의 원칙)상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가능하면 환자 측의 손해배상청구가 용이하도록 하는 일반 증명책임원칙에 대한 수정법리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수정법리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의 논의가 있으나, 의사가 침습적 의료행위에 착수하기 전에 환자나 그 가족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할 설명의무를 부과하고, 사후적으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환자 측의 증명책임을 경감하여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일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의사의 진료행위를 위축시킬 정도로 증명의 부담을 의사 쪽에 전이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관하여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조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리적 검토가 진행되어 왔다.


2) 대법원은 의사의 손해배상책임 판단의 전제가 되는 주의의무는 의료행위를 할 당시 의료행위의 수준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불법행위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성립여부 판단의 기준을 규범적인 수준에 맞추고자 하는 것은 상당인과관계론의 기계적 적용으로 인한 폐단의 시정에 그 목적이 있다(지원림, 민법강의, 제18판, 1110면 참조). 의사의 의료행위 과정에서의 주의의무 위반과 환자의 피해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의 존재를 부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법 규범의 존재 목적과 함께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서비스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적 공공재인 점에서 각종 공공영조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 법리를 의료과오소송에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은 민법 제758조 제1항의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에 드는 비용이나 위험방지조치를 함으로써 희생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여(대법원 2017다14895 판결) 법경제학적 관점을 반영할 수 있다고 하였다. 본 건에서 낙상사고 예방을 위하여 안전예방매트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오늘날의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현가능하고 또 타당한 조치인지여부를 규범적으로 평가하도록 판시한 것은 이러한 입장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3)
본 대법원 판결은 일반 의료사고 소송과 침대낙상사고의 경우는 간접사실의 원용을 통한 입증방식을 취하더라도 그 입증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기고 있다. 본 건 사실심 변론에 나타난 증거를 종합할 때, A가 어떠한 경과로 침대에서 떨어져 낙상사고가 일어난 것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고, A가 자력으로 안전벨트를 벗어나 낙상에 이르는 행위를 한 사실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도 없으며 그 가능성을 담보하는 간접사실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의 의료행위로 인한 일반 의료사고라면 이 정도의 간접사실에 대한 입증이 이루어졌다면 의사(의료기관) 측의 과실을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항소심법원의 판단과 달리 사실상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하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본 건 사고가 의사의 의료행위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의료행위'라 함은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검안·처방·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대법원 2002다48443 판결). 본 판결은 침대낙상사고를 일반 불법행위의 경우와 동일하게 보아 간접사실에 대한 입증을 위주로 하는 피해자의 입증책임 경감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즉 이 사건의 경우에 '담당 간호사가 부주의하게 침대안전벨트를 채우지 아니하였고, 그로 인하여 A가 낙상사고를 당하였다'는 사실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 있는 확신을 법관으로 하여금 가지도록 할 책임이 환자 측에 있다는 것이 본 판례의 입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입장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사고 장소가 일반인과 환자 가족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병원 중환자실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증거의 '구조적 편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증명책임의 기본원리를 수정 없이 적용한다는 것은 증명책임론의 기본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형평의 이념(무기 평등의 원칙)상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권혁재 상임조정위원(부산법원조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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