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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법원, 특허법원

판사가 지적한 변호사의 ‘대단히 부적절한 소송행위’

‘몰카’ 사건으로 퇴학 처분… 5급 공무원 연수생사건

미국변호사

고등법원 행정 재판부가 판결문에 정부기관을 대리한 소송대리인이 '대단히 부적절한 소송행위를 했다'고 적시해 뒷말이 무성하다. 재판부가 영구보존되는 판결문에 변호사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문제가 된 사건은 이른바 '몰카 논란'으로 퇴학 처분을 받은 5급 공무원연수생 A씨 사건이다. 그는 연수 과정에서 여성연수생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했다는 이유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퇴학 처분을 받자 소송을 냈다.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A씨가 여성 연수생의 신체부위를 촬영한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고 징계 과정에서 방어권을 침해받는 등 절차법적으로도 퇴학 처분은 위법하다며 1심과 같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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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일어났다. 퇴학 처분을 내린 개발원 측을 대리한 변호사가 재판과정에서 재판부가 제출하라고 요구한 증거를 존재하지 않는다며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가 요구한 증거는 A씨가 촬영한 2개의 사진 중 나중에 찍힌 사진으로 피해자인 여성연수생이 서있는 사진이었다. A씨는 당시 2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하얀색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가 허리를 굽혀서 허벅지 뒷부분 일부가 노출된 사진(①번 사진)과 △3초 후 피해자가 그냥 서 있는 채로 찍힌 사진(②번 사진)이었다.

 

퇴학 처분 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측 

대리 변호사

항소심 재판부가 요구한 사진 

존재 않는다고 ‘발뺌’

 

개발원은 A씨에 대한 징계 과정에서 피해자와 A씨에게 사진이 ②, ①의 순서로 찍혔다고 실제와는 반대로 제시하기도 했다. 사진 촬영 순서는 A씨의 몰카 의혹에 대한 고의성을 판단하는 주요 근거이다. A씨는 조원들과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뒤쪽에 있던 다른 조 소속인 피해자가 우연히 배경의 일부로 찍힌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②번 사진은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된 1심 본안재판 과정에서는 제출되지 않았고, 같은 재판부가 심리한 A씨의 퇴학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만 소명자료로 제출됐다. 이 같은 내용은 1심 판결문에 적시됐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②번 사진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개발원 측에 석명준비명령을 보냈다. 하지만 개발원측 대리인은 '석명준비명령에 대한 답변'에서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소을가 3호증까지 제출했으므로 소을가 제4호증(②번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항소심 재판부가 요구한 증거(②번 사진)를 제출하지 않았다. 

 

재판수서 관련문서 확보

 연수생에 유리한 증거 확인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직권으로 1심 재판을 한 서울행정법원에 문서송부촉탁을 해 관련 문서를 확보한 뒤 개발원 측이 해당 증거(②번 사진)를 법원에 제출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제서야 대리인은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법원 2002. 2. 22 선고 2001다23447 판결의 법리 등에 비춰 볼 때, 재판장의 2차례에 걸친 석명에도 불구하고, 개발원 측 소송대리인이 명백하게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면서 A씨에게 유리한 증거 제출을 거부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소송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인용한 대법원 판례는 강도강간범으로 지목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B씨가 무죄 판결이 확정되자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 관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검찰이 피해자의 속옷에 묻은 정액의 DNA가 B씨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를 수사기록에 포함시키지 않고 재판과정에서도 증거로 제출하지 않아 중대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면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뒤늦게 대리인도 자인

 “대단히 부적절한 소송 행위”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당사자에게 불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해도 이미 법원에 제출한 증거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미국에서는 판례를 잘못 인용해도 법정모독으로 징계를 받는다"고 말했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30년 가까이 판사 생활을 하면서 판결문에 이런 내용이 적시된 것은 처음 본다"며 "불리한 증거를 소극적으로 내지 않은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은폐한 것이라 볼 수 있어 법조윤리에 어긋나 보인다"고 했다.

 

'변호사법 주석'의 저자인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변호사법 제24조 2항은 '변호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변호사 윤리장전과 민사소송법에도 재판절차에서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에 관한 주장을 하거나 위법행위 협조 금지 등의 규정이 있어 이 사례는 진실의무 위반과 관련된 사안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곧바로 징계까지 논하기에는 사실 확인 등 절차적으로 거쳐야 할 부분이 많지만, 재판부가 판결문에 이렇게 지적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라며 "재판부를 속인 것인지 여부 등의 측면에서도 적절한 변론활동의 한계, 변론의 범위와 한계를 이번 사례를 통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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