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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 오션으로”… 제3의 길을 찾는 법률가들

‘영리목적 겸직 제한’ 관련법 개정… 규제완화 촉구도

융합형 법률서비스를 개발해 새로운 '퍼플오션(purple ocean)'을 개척하고 있는 법률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송무·자문이라는 보편적인 변호사 업무와 법률사무소·로펌이라는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나, 법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산운용 △신탁 컨설팅 △성년후견 △블록체인 △리걸테크 및 인공지능(AI) 등 각 분야에서 제3의 법률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는 사례들이 이어진다.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로 포화상태인 국내 법률시장에 활로를 열기 위해서는 영리목적 겸직·변호사 아닌자의 동업 등을 제한한 변호사법과 법 전문가의 참여를 제한하는 관련 법을 개정하는 등 규제 완화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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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운용사 첫 설립' 윤경 변호사 "퍼플오션 개척해야" = 빨강과 파랑이 섞이면 보라가 된다. 퍼플오션은, 발상의 전환과 이종(異種) 간 융합을 통해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을 기회의 땅으로 바꿔내는 사례 또는 경영전략을 뜻한다. 단순히 경쟁자가 없는 미개척 시장을 의미하는 블루오션과는 다르다. 

 

부장판사 출신인 윤경(59·사법연수원 17기) 법률사무소 더리드 대표변호사는 퍼플오션을 개척하고 있는 대표적인 법률가다. 그는 1년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최근 헤지펀드 운용사 '아하에셋자산운용(AHHA Asset Management)'을 설립했다. 변호사가 금융위원회로부터 전문사모집합투자업 인가를 받고, 자산운용사를 설립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표는 "경매전문 변호사로 활동한 강점을 살려 대체투자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격하락을 전제로 하는 경매 시장은 일반 수익형 부동산보다 환매가 쉽고, 비교적 단기간에 차익을 얻기 용이하다는 특성이 있다"며 "법과 부동산 전문가로서 기존 금융회사에서 찾을 수 없었던 서비스를 고객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하에셋은 공경매(법원 경매 및 정부기관 공매) 투자와 법률서비스를 결합한 신개념 자산운용사여서, 금융업계와 자산운용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자산운용 업계가 레드오션이고, 특히 30억원 이하 공경매 시장은 많은 투자자가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100억~2000억 범위의 공경매 시장은 법적 리스크가 커 사실상 공백상태다. 윤 대표와 그의 동료들이 이 시장을 주목한 이유인데, 윤 대표 외에 변호사·준법감시인·교수 등 법 전문가와 금융사 임원·전직 국세청장 등 금융·조세·투자 전문가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윤 대표는 "이미 포화인 시장에서 특허·공인중개사·세무사 등과 직역갈등을 벌이는 대신 기존의 범주를 벗어나려는 전환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도전의 가치를 젊은 변호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법을 의료나 부동산투자 등과 엮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청년변호사들이 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무·자문의 보편적 변호사 업무의

기존형태 벗어나

 

◇ "로펌행 대신 내 사업" = 지난 10여년간 법조계는 경기 침체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됐다. 2009년 1만명에 못 미쳤던 변호사가 현재 2만5000여명에 달하고, 매년 약 1500명이 더해진다. 국가 경제가 정체되고 법률시장 포화가 가속화되면서 변호사업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법원이나 검찰, 로펌 행(行)이라는 기존 코스 대신 법을 접목한 새로운 리걸 비즈니스에 눈을 돌리는 변호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과 출신인 임영익(49·41기)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인공지능 전문기업인 인텔리콘 메타연구소를 설립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뇌과학을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 그가 설립한 인텔리콘은 국내 최초 법률 인공지능 시스템인 '아이리스-N(iLIS-N)'과 지능형 법률 검색 내비게이션 시스템 '유렉스(U-LEX)'를 개발한 인공지능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세계 법률 인공지능 경진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황재영(35·변호사시험 7회)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IT 기업을 창업한 경력을 살려 블록체인 관련 회사에 경영기획·법무팀장으로 입사했다. 황 팀장은 "블록체인처럼 새로운 영역이 확대되면 진단·검토 되어야 할 법적 이슈도 증가한다"며 "변호사이지만 사업기획 업무도 맡으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과 리스크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정진숙(36·사법연수원 44기) 변호사는 리걸테크 기업인 아미쿠스렉스를 설립하고, 법률문서 자동작성 프로그램인 '로폼(lawform.io)'을 고도화하고 있다. 로폼은 주식양수도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주권미발행확인서를 발급 받는 자동 법률IT서비스인데, 정 변호사는 로폼을 블록체인 기술이 응용된 비상장사 주주명부 관리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법 전문성 바탕 자산운용·AI 등

리걸비즈니스 모색

 

◇ "리스크 분석 강점" = 전문가들은 변호사의 법적 리스크 검토 능력이 이같은 융합서비스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마진율이 높고 복잡한 분야일수록 잠재적 리스크는 큰 비용으로 작용하는데,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와 로펌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직접 뛰어들면 다른 전문가들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고품질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업역을 종합 컨설팅까지 확장하면서, 컨설팅 역량에 수익사업을 결합하는 로펌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재권 분야 대표 부띠크 로펌인 다래(대표 박승문 변호사)는 법무법인·특허법인과 함께 '전략사업화센터'를 두고 컨설팅·엑셀러레이팅 분야를 키우고 있다. 다래 관계자는 "다래의 강점인 기술 전문성을 투자에 접목하면서,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로고스(대표변호사 김무겸)는 올 초 로펌 내에 '로고스부동산중개사무소'와 부동산 관련 소송·자문·컨설팅을 맡는 '부동산원스톱센터'를 오픈했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박지영(49·32기) 변호사가 소장과 센터장을 맡았다. 박 변호사는 "원스톱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의 니즈와 활로를 찾기 위한 법조계의 갈증이 함께 높아지고 있다"며 "상업용·주거용 부동산, 수익형 상가, 공장부지, 신축부지, 빌딩 등 다양한 매물을 보유하고 매매·임대차 등 중개를 하는 한편 풍부한 소송경험을 바탕으로 법적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법률검토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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