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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취지 사라진 ‘공수처’ 설치안… 법조계 거센 비판

대통령·국회의원 빠지고 판·검사는 기소 대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으로 처리하는 것을 두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설치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만 벌이는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의 폐단을 막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제3의 수사기관을 만들어 고위공직자 비리를 엄단토록 하겠다던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할 정도의 반쪽 짜리 공수처가 도입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공수처 기소 대상에서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인사, 국회의원 등은 빠지고 사실상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고위 경찰만 남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아니라 '법조비리수사처'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공수처에 부여한 영장청구권과 재정신청권 등은 위헌 논란이 일고 있고, 사법적·민주적 통제방안 등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누더기 공수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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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등 1200명은 수사만 하고 기소는 못해 =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26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자적인 방식인 '입안지원시스템'을 통해 국회에 제출했다. 한국당이 법안 제출을 막기 위해 국회 의안과 사무실 안팎을 점거했기 때문이다.


여야 4당의 합의안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공수처에 기소권을 제외한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재정신청권을 주되, 공수처 수사 사건 중 판·검사나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경우에는 공수처가 기소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아닌

‘법조비리수사처’로 전락

 

이에 따라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대통령과 영부인,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족을 비롯해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국무총리와 행정기관의 정무직 공무원, 대통령 비서실의 3급 이상 공무원, 장성급 장교,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 모두 7000여명(정원 기준)에 달한다. 그러나 공수처가 기소할 수 있는 것은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 5700여명에 그친다.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지지 않는 1200여명은 수사만 가능하고, 실제 기소하는 것은 기존대로 검찰이 해야 한다. 공수처가 기소할 수 있는 고위공무원은 판·검사와 경찰이 전부인 셈이다.

 

여야 4당은 공수처장 임명 절차와 관련해 공수처장후보추천위에 여야 각각 2명씩 위원을 배정하고, 공수처장은 후보추천위 위원 5분의 4 이상의 동의를 얻어 추천된 후보 2명 중 대통령이 지명한 1명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합의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국회가 추천한 4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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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검사 비리수사처에 불과" 비판 고조 = 법조계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와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됐던 '옥상옥(屋上屋)'이라는 비판까지 가지도 못할 정도의 누더기 법안"이라며 "검찰개혁과 고위공직자비리 척결을 내세우며 국정과제로까지 추진한 결과가 겨우 이것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과 경찰, 감사원, 상설특검, 특별감찰관 등등 수많은 공직자 감시기구를 두고도 못 미더워 만든 특별기구가 고작 법조비리수사처 구실만 하는 것이라니 어이가 없다"고 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말도 안되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며 "외국에서는 국가 조직 하나를 만들기 위해 로커미션(법 위원회)을 만들어 몇 년씩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결과물을 내놓고 입법과정을 거치는데, 우리는 기계적으로 정치권에서 타협하듯이 선거법에 끼워넣어 만들었다"고 강력 비판했다. 그는 "공수처에 비견되는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 CPIB) 등은 영미법계에서 법률가들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경찰한테만 맡겨놓기에는 부패수사가 안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는 이미 이 기능을 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그것도 앞으로 어떤 기능을 할지 제대로 예측하기도 힘든 기형적인 제도를 만든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에 영장청구권·재정신청권 부여는

위헌 논란까지

 

한 로스쿨 교수는 "공수처 기소대상에서 국회의원 등이 빠지고 판·검사가 포함되면서 결국 판·검사 비리수사처로 전락했다"며 "최근 불고 있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의 흐름을 보자면 사법부나 검찰권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보다 여론이나 정치권의 영향이 거세지고 있는 모습인데, 이런 추세라면 공수처가 생기더라도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법집행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또 "정치와 법치는 상호 견제가 돼야 하는데 현재의 공수처는 이를 위한 통제 방안도 없어보인다"며 "법치 위에 정치가 서는 곳이 중국 공안인데,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가 그렇게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교수는 "권력기관인 공수처를 독립기관으로 두는 것도 맞지 않다"며 "이럴 경우 공수처장이 전횡을 하더라도 임기 동안 아무런 책임을 묻거나 통제할 방안이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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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장청구권 부여' 위헌 논란… 재정신청권도 문제 = 공수처에 영장청구권을 부여하고, 공수처가 수사해 이첩한 사건을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경우 공수처가 법원에 재정신청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제12조는 영장청구의 주체를 '검사'로 규정해, 검사에게만 독점적인 영장청구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헌법에 이 같은 규정이 있는 것은 검찰청에 소속돼 있는 검사 이외의 사람에게는 영장청구권 주는 것이 위헌이라는 의미"라며 "공수처에 공수처 검사를 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는 어떤 기관에도 검사를 두기만 하면 영장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다른 변호사도 "특별검사는 검사로서 특정 사건 수사를 위해 일시적으로 꾸려지는 기관이기 때문에 헌법 예외에 해당할 수 있지만, 공수처는 상설기관"이라며 "헌법이 검사에게만 영장청구권을 부여한 이유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인권옹호기능을 강조해 법률가인 검사들이 경찰이 신청하는 영장에 문제가 없는지 1차 점검토록 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이같은 논리라면 경찰청에도 검사를 둬서 영장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해도 상관 없다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

사법적민주적 통제방안도 부재”

 

공수처의 재정신청권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로스쿨 교수는 "공수처는 (독립기구이긴 하지만) 결국 정부에 속하는 행정기관인데, 수사권과 조세권 등 국가의 행정권력은 하나로 통일돼 외부로 표출돼야 한다"며 "공수처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는 것은 행정부 내 기관이 의사결정을 가지고 서로 싸우다 결론을 못내 법원에까지 들고 가는 것인 셈인데 이는 행정부가 자기의 권한 행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다지만, 지금까지 재정신청 제도가 잘 활용되지 않은 것을 보면 사법적 통제가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이번 패스트트랙안은 공수처 '도입'에만 방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측면에서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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