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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헌법수호 수문장' 이진성 헌재소장

"헌법재판의 핵심은 사랑에 바탕을 둔 정의"

"헌법재판소가 조직적 완전성을 갖춰 본연의 임무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을 무엇보다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도 느낍니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불러왔던 탄핵심판과 유례 없었던 10개월에 걸친 장기 소장·재판관 공석 사태를 겪은 헌재의 새 수장이 된 이진성(62·사법연수원 10기) 소장은 여유있는 미소를 잃지 않고 담담하게 취임 한달 소회를 밝혔다. 지난해 11월 27일 소장에 취임해 어수선하던 재판소 분위기를 일신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는 그에게서 일평생 '판관(判官)'의 외길을 걸어온 법조인의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헌재는 2017년 격랑의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도 숨가쁜 한해를 보내야 한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으로 미뤄졌던 국민들의 민생 사건들이 한가득 쌓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 바탕을 둔 정의가 헌법재판의 핵심"이라며 "국민들이 헌재에 내민 손을 따뜻하게 감싸안고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드리면서 헌재 본연의 기능인 사회 갈등을 풀고 통합의 정신을 실현하겠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4명의 손주들이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감사하다는 따뜻한 할아버지이자, 판관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도록 격려해준 아내가 가장 고맙다는 로맨티스트, 법관과 헌법재판관 등 공직자로서 오래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천생 법조인인 그를 세밑인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집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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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전방과 후방으로 이사다니며 전학을 반복했던 이진성(62·사법연수원 10기) 헌법재판소장은 유년기 다섯 군데의 학교를 옮겨다닌 끝에야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 소장은 처음부터 법조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경기고) 입학 때까지는 상대에 진학해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할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교 2학년이던 1972년 10월 유신이 공교롭게도 저의 진로를 바꿔놓았습니다. 당시 동급생 7명이 10월 유신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처벌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후 법대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10월 유신·민청학련 등

사회 문제 보며 법대 선택


서울대 법대 재학중이던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해군법무관을 거쳐 1983년 부산지법 판사로 처음 판관(判官)의 길에 나선 이 소장이 헌법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고(故) 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영향이 가장 컸다.

 

"초임 법관 시절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비상계엄하에서 있었던 민간인의 행위에 대해서는 군법회의에 재판권이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이 대법원장님 홀로 반대의견을 쓰시면서 '대법관들이 헌법적인 가치에 눈을 뜨지 못한 것이 통탄할 따름'이라고 하셨죠. 사실 그 전까지 헌법이라는 건 교과서 안에만 있는 것이지 현실에 살아있는 법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법원장님의 반대의견을 보고 헌법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후 이 소장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에서 헌법 정신을 자주 각인시켰다. 그는 1985년 부모님을 모시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뺨을 때린 초등학교 교사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에는 삼청교육대 피해자에게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소멸시효를 이유로 파기됐지만, 이 소장은 당시 판결문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국민 개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단순히 이념이나 구호로 내세우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모든 국민이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실질적인 정책으로 담보하는 나라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소신을 밝혔다.


이일규 前 대법원장 영향

헌법적인 가치 다시 생각


광주고법원장으로 근무하다 2012년 헌법재판관에 지명된 그는 그동안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중점을 뒀다. 소년보호사건에서 1심 결정에 따른 소년원 수용기간을 항고심 결정에 의한 보호기간에 산입할 여지가 없도록 한 것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반대의견(2014헌마768)을 냈고, 야간시위를 금지하고 참가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2010헌가2)했다. 또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정당이 자동적으로 등록취소 되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위헌결정(2012헌마431등)을 내는 등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 참정권을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보장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가장 뇌리에 남는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다. 이 소장은 탄핵심판 과정을 '지켜보는 모두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간'이자 '재판관들에게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으로 기억했다.

 

"대통령의 직무수행 단절로 인한 국정공백 상태와 국론분열로 인한 국가손실이 엄중한 상황에서, 난국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심사숙고했습니다. 또 쌍방이 모두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재판을 진행하는데 최선을 다하려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소장은 2016년 12월 당시 이정미(56·16기)·강일원(59·14기) 재판관 등과 함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준비절차를 진행할 '수명(受命) 재판관'으로 지명돼 국회 탄핵소추인단과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과 입증사항 등을 빈틈없이 정리했다. 헌법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결정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해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남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내용의 보충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보다 치열한 논쟁과 판단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탄핵심판 절차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현행법이 탄핵심판 절차에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는 내용 외에 다른 구체적인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논란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재판부는 탄핵심판에 형사소송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보다는 탄핵심판의 본질과 특성에 맞는 한도에서 준용하도록 애썼습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를 헌법재판소법에 구체적으로 규정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규칙으로 세부절차를 정하는 방향도 검토 중입니다."

 

최근 개헌 논의와 관련해서는 "개헌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7년 헌법 개정 후 30년간 사회현실과 국민의식의 변화가 축적된 만큼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더 확고하게 실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법부에 관해서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이 소장은 신체의 자유와 참정권 등 기본권도 더 넓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치구조와 더불어 우리 헌법의 핵심인 기본권 부분에서는 특히 신체의 자유와 참정권을 지금보다 더 넓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헌법이 개정되었으면 합니다.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정절차에도 영장주의를 적용하는 범위를 확대하고, 선거권자의 연령을 하향 조정하는 것 등입니다. 또한 생명권이나 알 권리와 같이 헌재 결정에서 인정한 기본권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장은 헌법재판소 구성에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참여하는 현행 체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소신도 밝혔다. "헌재가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 것은 헌재 스스로가 재판소 구성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어딘가에 구속되지 않고 재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죠. 정치적으로 첨예한 이해관계를 다투는 사건이 헌재에 들어왔을 때 대통령이나 특정 정당에 의해 임명되지 않은 재판관들도 함께 심리에 참여하는 것이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헌재 설립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 소장은 올해 신속한 사건 처리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헌재 설립 30년…

적체된 사건 해결에 집중


"늘 지적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헌재의 심리 지연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 재판연구 인력의 증원이나 재배치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심리중인 사건을 중간 점검하는 체계를 확립하는 방법 등을 검토해 신속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장은 최근 논란이 거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 주요 사건을 처리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헌재도 답을 내놔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사실 지났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동안은 탄핵심판 때문에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제 재판관이 9명이 됐으니 최우선으로 해결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소장은 '헌법재판이란 무엇인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현답(賢答)을 내놨다.


"대학에 강의를 한번 나가면서 강연 제목을 '법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지은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답은 '정의(正義)를 먹고 산다'입니다. 정의에 대한 정의(定義)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엔 인간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둔 정의라야 합니다. 헌법재판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헌재의 주인이신 국민들이 내미는 손을 따뜻하게 잡고 눈물을 닦아드리는 것 아닐까요. 헌재에 주어진 이 같은 의무를 명심하면서 소임에 더욱 충실하겠습니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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