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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터뷰] '법관 외길' 첫 65세 정년퇴임 김정학 부장판사

"재판은 명분보다 누구를 보호해야 옳은지 따져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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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29년간 법관의 외길만 걸어오다 정년퇴임한 판사가 있어 법조계에 감동을 주고 있다.

 

"재판이란 현실 속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이끌어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지 추상적 법논리나 법이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진 김정학(65·사법연수원 18기) 인천지법 부장판사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소아마비로 얻은 장애를 모두 이겨내고 판사가 된 뒤 끝까지 일선 법원에서 본분을 지키다 지난달 29일 퇴임한 그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만났다.

 

"더 이상 법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섭섭한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환송해준 동료 법관들이 보여준 저에 대한 신뢰와 각별한 동료애에 진심으로 뿌듯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30년에 가까운 법관 생활을 되돌아보며 이같은 소회를 밝혔다.

 

2013년 법관 정년이 만 63세에서 만 65세로 조정된 이후 정년퇴임한 판사는 2016년 8월 한병의(67·12기)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에 이어 그가 두 번째다. 특히 변호사나 검사 등 다른 직역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법관의 한 길만 걷다 정년퇴임한 것은 처음이다.

 

서른 셋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서른 여섯에 늦깎이 판사로 임용된 뒤 줄곧 재판 업무에만 전념해 왔다. 넉넉치 않은 형편 탓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판사가 천직(天職)'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사시 공부를 할 때부터 꼭 판사를 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에도 검사나 변호사는 생각해본 적 없었고 꼭 판사가 돼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다행히 법관으로 임용돼 자랑스럽게 이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소아마비 이겨내고

사법시험 합격

 

김 부장판사는 부산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지만 타고난 명석함과 성실함으로 명문인 경남중·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부친의 사업이 쇠락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아버님은 부산에서 형제들과 함께 군납 건빵공장을 운영하셨습니다. 그런데 공장이 부산을 휩쓸었던 사라호 태풍(1959)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지요. 이후 대구에서 제지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그마저도 화재사고로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장남이던 그는 사업으로 집안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낙담하던 시기, 학창시절 '절친'이었던 문재인(65·12기) 대통령이 그를 찾아왔다.

 

"문 대통령이 저를 찾아와 '너는 꼭 고시를 봐야 한다' 고 설득했습니다. 제가 머뭇거리니 다시 후배 한 명을 보내 고향인 부산에 내려오게 했고 고시원비와 책값을 내주는 등 뒷바라지를 해줬지요. 덕분에 2년 뒤 사시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서른여섯에 판사로 임용

29년간 '천직'으로

 

늦은 나이에 판사가 됐지만 그것이 오히려 판사로서 정년을 마칠 수 있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어차피 동기들보다 열살 정도 많은 나이에 판사를 시작해 승진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중앙지법으로 자리를 옮길 무렵 변호사 개업을 권유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당시 양승태(70·2기) 대법원장님께서 평생법관제 정착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셨고, 저도 기대감을 갖고 정년까지 쭉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평생을 재판업무에만 매달려온 '고수'에게 '재판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분쟁 해결'과 '당사자 구제'라고 했다. 법이 추상적 차원의 형식논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나 법적 안정성 같은 법의 이념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 자체에 매몰돼 당사자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누구나 초임 시절, 공부한대로 다분히 형식 논리적인 판결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경륜이 쌓이게 되면, '지금 누구를 위하는게 구체적으로 타당한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여기서 법이론은 타당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지 절대적으로 신봉해야 할 무엇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명분보다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누구를 보호하는게 옳은지 따져봐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그랜저 승용차 화재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로 꼽았다.

2010년 서울 역삼동에서 운행중이던 그랜저 차량에 돌연 화재가 발생하자 차량 소유주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차량화재로 제조업체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은 전문가의 감정에 의하더라도 화재원인을 밝히기가 어려워 제조업체에서 보상을 거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현대차의 제조물 책임을 인정하고 33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선례가 없는 판결이었고 법 해석상으로도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었지만 저는 지금도 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사법부 현안에 대해서도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외부의 '사법부 흔들기'에는 단호히 대처하되, 내부의 개혁 목소리에는 겸허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본질은 재판입니다. 재판이 독립된 상태에서 올바르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법관의 지위가 보장돼야 합니다. 그런데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대법원장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 오가는가 하면, 판결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에 대한 '신상털기'가 무분별하게 자행됩니다. 이러한 사법부 흔들기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이럴 때일수록 법원은 뚝심을 갖고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사로 제2의 인생

의미 있는 사회봉사 준비

 

그는 법무법인 에이스에 둥지를 마련해 변호사로서 인생 2막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 공동체에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봉사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이전보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그동안 닦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새로움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대와 희망이 앞섭니다. 의미 있는 사회봉사를 통해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빚을 되돌려주는 일에도 앞장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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