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국회,법제처,감사원

행정심판, 법제처로 이관설에 우려 목소리 높다

136368.jpg


 

국민권익위원회를 '반부패·청렴 컨트롤타워'로 재편하면서 행정심판 기능을 분리해 법제처로 이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에 행정법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법절차에 가까운 행정심판 기능을 독립시키지 않고, 특정 정부부처 산하로 되돌리는 것은 행정심판의 독립성을 해치고 재결의 공정성 확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심판, 권익위로 넘어가면서 발전"= 행정심판제도는 위법·부당한 행정처분 등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이 소송을 통하지 않고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 준사법적 절차다. 행정기관은 행정심판 재결에 불복할 수 없기 때문에 행정심판을 청구한 국민은 확정 판결과 같은 결과를 무료로 간편하게 얻을 수 있다. 청구인인 국민은 행정심판을 냈다가 기각돼도 법원에 다시 행정소송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권익보호도 두텁게 하는 효과가 있다.


행정심판은 1985년 10월 소원법의 한계를 보완한 행정심판법이 시행되면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1998년 2월까지는 행정소송을 내기 전 행정심판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행정심판 전치주의'가 채택돼 행정심판 과정 자체를 법원의 1심으로 보고 이에 대한 불복소송을 고등법원에 내도록 했었다. 그러나 국민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행정심판을 거치지 않고도 행정소송을 낼 수 있도록 '임의적·선택적 전치주의'로 변경됐다.


 

136368.jpg



이후 행정심판은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국무총리 산하 행정심판위원회가 권익위로 소속이 바뀌면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이전에는 법제처장이 행정심판위원장을 겸직하는 등 법제처가 행정심판 기능을 담당했었다. 권익위로 기능이 이관된 뒤 국민이 행정심판을 제기하면 기존 처분을 내렸던 기관의 결정을 다시 묻는 과정이 폐지되고 제3자인 중앙행심위가 직접 재결하게 되면서 행정심판 기능이 강화됐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행정심판이 발전돼 국민 권익구제 측면에서 많은 공헌을 하게 된 시점은 행심위가 법제처에서 독립돼 나온 이후"라고 말했다.


◇"법제처 이관 시 행정심판 기능 약화" 우려도=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권익위 조직 재편에 따라 행정심판 기능은 법제처로 다시 이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행정법 전문가들은 "기능 이관은 행정심판의 독립성·공정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단순히 '법제처에 행심위가 있었으니 다시 넘기면 된다'는 발상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행정심판은 독립기구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정심판위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이번 행정심판 이관 작업은 법률상 문제가 많다"며 "마치 입법부와 사법부를 합치는 것과 같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행정입법을 제·개정할 때에는 최종적으로 법제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행정부가 행정입법을 잘못해 위법·부당한 행정처분을 내릴 경우 행정심판을 통해 이를 고치도록 명령하게 돼 있는데, 법제처가 행정심판까지 하게 되면 법제처 스스로 '시행령·시행규칙을 잘못 만들었다'고 선언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는 "법제처가 행정심판 기능을 갖게 되면 행정심판법 제59조가 사문화 되는 셈"이라며 "행정입법과 행정사법을 같이 하는 것은 전형적인 컨플릭트(conflict·이해충돌)에 해당된다. 법제처가 잘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들이 만든 법령이기 때문에 법원에 가서 무효 선언이 될 때까지 가만히 놔둘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행정심판법 제59조는 중앙행심위가 심리·재결을 할 때 위법·부당한 처분의 근거가 되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이 법령에 근거가 없거나 상위법령에 위배되거나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등 크게 불합리한 경우 관계 행정기관에 시행령 등의 개정·폐지 등 적절한 시정조치를 요청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시정조치 요청 사실을 법제처장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시정조치를 요청받은 행정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


다른 행정법 전문가도 "법제처에 행심위가 있을 때와는 행정심판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국무총리행심위 의결에 구속돼 각 부처 장관의 이름으로 재결했지만, 권익위로 오면서 독립위원회가 돼 중앙행심위가 직접 재결하고 있다"며 "행정심판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이를 거꾸로 돌리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에서는 이명박·박근혜정부 당시 적폐나 잘못된 것들을 되돌리고 싶겠지만, 행정심판 분야만큼은 옳은 방향으로 발전했다"며 "법제처 입장에서는 (권익위에) 빼앗겼던 기능을 되찾아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법제처 이관에 찬성하는 의견도 있다. 김중권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행정심판의 본질은 2차적·사후적 행정절차로서 '행정처분을 다시 검토해달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잘못된 처분에 대해 즉각적인 시정 조치를 하려면 행정부 내에 행정심판 기관을 두고 독립적인 판단이 가능하도록 장치를 두는 것이 맞다"며 "과거처럼 법령심사·해석 등을 총괄하고 있는 법제처로 행정심판 기능을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심판은 개인의 권리 구제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안 되고, 심판 과정·결과가 행정에 환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 행정을 통할하고 있는 국무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국무총리 소속으로 행정심판 기관을 두는 것이 개별 행정조직 통제 뿐만 아니라 제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일반·특별행정심판 통합해야" vs "제3의 사법기관화는 옳지 않아"= 행정법 전문가들은 행정심판 기관의 독립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세기본법이나 국가공무원법 등 개별 법률에 산재해 있는 특별행정심판을 일반행정심판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오준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고충처리위와 중앙행심위 뿐만 아니라 소청심사위와 조세심판원 등 특별행정심판을 통합한 형태의 독립적인 '행정심판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반·특별행정심판이 합쳐져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통합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행정법 교수도 행정심판 체계를 일원화한 영국의 행정심판소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도 일반행정심판 기관과 조세심판원과 소청심사위, 중앙토지수용위 등을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중권 교수는 "국민의 정당한 권리구제는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국가 활동에는 제재가 필요하지만, 행정소송이나 헌법재판이 활성화돼 있는데도  준사법기관에 해당하는 독립된 행정심판 기관을 '제3의 사법기관'으로 두는 것은 현재 통치구조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 조직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기존 사법부가 있는데도 사실상 사법기능을 하는 준사법기관을 법률로 만드는 것은 헌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행정심판이 사법절차화되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신속하면서도 탄력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행정심판 기능이 과거처럼 국무총리 소속으로 넘어가고 이를 법제처가 주관할 경우 효과적으로 행정심판 기능을 운영하려면 국민들이 편하고 신속하게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독일처럼 행정심판이 제기되면 처분이 집행정지돼야 국민들이 호응할 것"이라고 했다.

Next

카테고리 인기기사

한 주간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