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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법조라운지 커버스토리]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협회장 김병수 쉐퍼드멀린 대표

"법률시장 개방은 한국 법조계의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

"2012년 5월 7일 외국법자문사 자격승인 심사접수를 위해 법무부로 가 실무담당부서인 국제법무과 앞에서 줄을 섰던 게 어제 일처럼 또렷합니다. 다른 외국로펌 대표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서울사무소는 제게 특별한 일터입니다. 오랜 준비를 바탕으로 사무실 집기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가며 일궈낸 만큼 크게 애착이 갑니다." 법률시장 개방 원년 멤버로 고국인 한국 땅을 다시 찾은 지 벌써 5년. 이제는 대표적 '지한파(知韓派)'로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장까지 맡고 있지만 그에게 한국은, 서울은 늘 새로운 도전의 장이다. 지난 1월 제2대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장에 취임한 김병수(51) 쉐퍼드멀린(Sheppard, Mullin, Richter & Hampton) 한국사무소 대표 이야기다. 늘 순박한 웃음과 넉넉한 성품으로 고객은 물론 주변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지만, 법률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피력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오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개방은 한국 법조계에도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률시장 3단계 개방을 맞아 김 대표를 서울 중구 수하동 센터원빌딩 쉐퍼드멀린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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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제경영학과 졸업, 미국 MBA 학위 취득, 딜로이트 컨설팅 펌 근무, 조지워싱턴(George Washington)대학교 로스쿨(JD) 졸업, 뉴욕주·캘리포니아주·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 취득, 20여년간 글로벌 로펌에서 금융전문가로 활약 등등.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병수(51) 쉐퍼드멀린(Sheppard, Mullin, Richter & Hampton) 한국사무소 대표의 이력이다. 김 대표의 화려한 이력과 준수한 외모를 보면 대부분 그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곱게 자랐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요즘말로 '흙수저'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충남 논산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한 기억 밖에 없다고 한다.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근성은 천성이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면 한단계 성장해 나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기에 저는 항상 이방인이었습니다. 새로 시작한 분야에서 처음에는 이방인이었지만 그 일에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의 성취감이 좋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하나하나의 허들(hurdle·장애물)을 깨부수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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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경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MBA 유학을 떠나 조세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 대기업 국제금융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그렇게 떠난 유학길에서 조세를 전공했습니다. 국제 조세를 공부하다 보면 판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법을 공부하면서 많은 케이스를 다루다 보니 미국의 판례 경향이 어떤지, 미국 법원의 시스템과 법체계의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게 됐습니다. 국제적인 경제 흐름에 관심이 많았던 터에 미국 법체계가 국제금융이나 국제상거래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됐고, 그래서 법에 관해 배우고 싶어 로스쿨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공부가 변호사가 된 후 넓은 안목을 키우는 데 크게 일조한 것 같습니다."

로스쿨 졸업 후 몇차례 직장을 옮긴 그는 2004년 지금의 직장인 쉐퍼드멀린에 터를 잡았다. "미국 로스쿨은 2학년 여름방학 인턴이 취업과 직결됩니다. 당시 맥과이어 우드스(McGuire Woods)라는 일리노이에 베이스를 둔 로펌에서 여름인턴을 하던 저는 방학을 거의 반납하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했습니다. 당시 외국 친구들 사이에서도 저의 성실함 하나는 유명했습니다. 결국 그 로펌에 취업을 성공했고 그 후 뉴욕에 베이스를 둔 드웨인 모리스(duane morris)를 거쳐 지금의 쉐퍼드멀린에 입사했습니다. 쉐퍼드멀린은 캘리포니아에 베이스를 두고 있습니다. 직장을 옮기다보니 자연스럽게 3개주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게 된 1998년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졌고 그때 대우자동차와 조양상선의 해외자산매각 사건 자문을 맡았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모국인 대한민국에 와서 일을 하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2011년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쉐퍼드멀린 한국사무소 개소를 준비하며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다. "2011년 11월에 한국에 들어올 당시 미국에서는 한·미 FTA 비준안이 의회를 통과한 상태였고, 한국 의회에서도 통과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잘 준비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에 들어와 밤낮 없이 사무소 설립을 준비했습니다. 사무소부터 클라이언트들까지 제가 책임을 지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야 하니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고생한 만큼 서울 사무소에 대한 애정은 남다릅니다."


한국법률시장 국제화는 

한국법률시장 자체 확장 효과


김 대표는 국내 법률시장 개방과 관련해 질문하자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5년간 3단계에 걸쳐 개방이 이뤄졌지만 실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률시장 개방은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한·미 FTA 조문을 읽어보면 해석하기에 따라 3단계 개방 폭이 현재보다 더 넓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특히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국내외로펌이 함께 설립하는 합작법무법인)의 외국로펌 지분율과 의결권을 최대 49%로 제한하면서 실질적 경영권을 가진 파트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제적·법적 책임은 외국로펌 본사에까지 무한대로 책임을 지우는 것은 FTA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개방 수준에서는 외국로펌이 조인트벤처 설립을 꿈꿀 수도 없습니다."


그는 외국로펌에 대한 한국 법조계의 오해가 많다고 지적했다. "저희 회사뿐 아니라 다른 외국로펌도 한국법 자문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로펌과 경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클라이언트들이 문의하는 것 중 필수적인 것을 충족시키려다 보니 국내업무가 부수적으로 필요한 것 뿐입니다. 한국로펌과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우리 클라이언트들의 니즈(Needs)를 충족해 줘야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 부분도 충족할 수 없을 정도로 개방의 폭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외국로펌들도 국내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우리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정도의 개방은 이뤄져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법률시장 개방이라 생각합니다."


취업난 겪고 있는

청년변호사들에게도

큰 기회 될 것


김 대표는 이를 위해 외국로펌들의 변호사 수가 적정 수준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로펌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한 오피스에 필요한 최소한의 변호사 인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적정 수가 저는 60~70명 내외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쉐퍼드멀린 한국사무소에 5명의 외국변호사가 있는데 턱없이 모자랍니다. 적정 수의 변호사를 두고 한국 클라이언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법률시장 개방의 폭이 더 넓어져야 합니다." 


김 대표는 법률시장 개방이 확대되면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국의 청년변호사들에게도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로펌들이 원하는 진정한 수준의 개방은 외국로펌들이 한국의 우수한 청년변호사들을 고용해 클라이언트들의 일을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정도 수준의 개방이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에 진출한 27개 외국계 로펌들이 매년 100명이 넘는 한국 청년변호사를 계속 채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외국로펌의 국내 정착이 한국 법률서비스 산업의 파이(pie)를 키워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한국 기업과의 유대 관계를 형성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더 많은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개척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개방을 통해 법률시장이 국제화되면 한국의 법률시장 자체를 확장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로펌은 외국로펌과 경쟁하면서 대형화·전문화·국제화 하는 등 급속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저는 열린 마음으로 어떤 로펌이든 성향이 맞으면 같이 일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국내법률시장과 협력을 통한 상생 발전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어떤 로펌이든 성향이 맞으면

같이 일 할 준비돼 있어


김 대표는 외국로펌들이 영리추구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다할 것이라고 했다. "4월 말 런칭을 목표로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 사이트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어 협회 소속 로펌과 일하는 분들이 정보를 공유했으면 합니다. 또 중요한 목표는 봉사활동입니다. 우리 협회는 리걸서비스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장애인, 양로원 등을 방문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내 대형로펌들을 보면 사내에 공익법인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체계적으로 하는 로펌도 많은데, 우리도 지속적인 프로보노 활동을 위해 법무법인 태평양의 '동천', 지평의 '두루'처럼 공익법인을 꾸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는 취업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청년변호사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 변호사들을 만나면 항상 'think outside of the box(고정관념이나 틀에서 벗어나라)'라는 말을 해줍니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MBA를 공부했고 또 미국 로스쿨에 들어가 미국로펌에 취업했습니다. 제가 현실에 안주하고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갖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현실의 테두리를 벗어나 보면 기회는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고의 전문자격증인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여러 분야에 도전하십시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김 대표는 은퇴한 뒤 미술관 큐레이터를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서양미술사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작은 요트를 마련해 세계일주를 떠나보고 싶다며 해맑게 웃었다. 소년 같이 순박한 웃음을 가졌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김 대표는 국내외 청년변호사에게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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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