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臺에서

시절과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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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과 탄핵심판에서 드러난 ‘블랙리스트’에 관하여 법조인이자 고위 공직자였던 이들의 직권남용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었다. 재판을 방청하면서 권력과 돈에게 법은 무엇이었을까 시절을 따라 물었다.


내가 태어난 1969년은 21살의 노동자가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만들어 근로기준법을 읽다가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때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던, 법이 권력과 강자의 폭력으로부터 약자를 지키지 못한 기나긴 시절. 그 청년 노동자는 22살에 ‘온갖 곤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 시대를 멈추게 한다.’


이후에도 법은 안보나 질서를 빙자하여 국가폭력과 권력남용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동원되기 일쑤였다. ‘육법당’과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기억되는 1980년대엔 “훌륭한 법조인이 되어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수석 합격자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세상의 잡초를 모두 없애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가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자마자 잡초를 뽑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스스로 잡초가 되는' 엘리트들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법대로 하자” 시대지만, 법이 있어 다행이기보다는 법이 주먹처럼 사용되어 두렵다는 약자들이 여전히 많다. ‘호화 변호인단-맞춤형 대리인단’, '돈과 부모도 실력', '1, 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은 피고인에 대하여 검찰이 상고하였다'는 기사와 “압도적인 정보를 가진 정부가 패소했으면 그대로 따르지 왜 항소하는가”라는 대통령의 언급에서 ‘법대로’의 스펙트럼을 실감한다.

우리 사법체계는 독재와 불공정·불평등의 현실에서 시민을 자유롭게 하고 생명을 살리며 빈곤과 차별을 해소하는 데 충분히 유능하지는 못했다. 법조인의 시선과 용기는 권력과 강자를 겨냥해야 할진대, 권력과 돈의 곁에서 시민을 억압하고 경영권 편법승계와 총수의 전횡·사익 비호에 능력을 발휘한 이들도 있었다.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인데, 날뛰는 미친 개가 몽둥이까지 쥔 격이랄까.

철학자 고병권이 소개한 일화다. 플라톤이 길거리에서 채소를 씻는 디오게네스에게 말했다. “네가 디오니시우스 왕에게 조금만 더 공손했더라면 너는 네 채소를 직접 씻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네가 네 채소를 직접 씻는 법을 배우면 너는 왕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

어떤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 내 대답을 다듬기에 늦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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