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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에서 본 난민정책 담론

난민정책의 정상화를 바라며

서아시아 아라비아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젊은 남성들이 전쟁을 피해 제주도에 비자없이 한 달 간 체류 가능한 점을 이용해서 500명 가량이 한국에 왔다. 난민 수용반대 여론이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는 확고한 정론을 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아프리카, 중동··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자국민의 복지혜택이 난민으로 인하여 심각한 역 차별과 훼손을 당한다. 이제 장래적으로 다가올 이런 류의 난민문제에 대하여 정부와 국민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짚어본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개방적 난민법’ 국가로 난민 신청을 하게 되면 ‘외국인 등록증’이 나오는 바람에 불허 시에는 소송을 진행할 수 있고, 소송으로 더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연장되며 15년 정도를 체류할 수 있다. 난민의 천국이란 ‘스웨덴’도 수많은 범죄폭증과 복지비 투여로 자국민이 복지에서 홀대를 받게되는 병적인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슬람(Islam=복종)교와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을 오해하는 데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주류언론과 진보세력이 ‘극우주의자’ ‘다문화 반대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하게 되면서 국론분열에 휩싸이게 된다. 이 점을 정부와 국민이 스웨덴 같은 나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꾸라이시족 중 하심가의 집안에서 서기 570. 4. 22. 태어났다. 무하마드는 당대 새로운 종교운동의 창시자로서, 정치인과, 군대의 지휘자로 위상이 정립되었다. 무함마드는 부 압뚤라 모 아미나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 압둘 무딸립이 갓 태어난 손자를 카바신전으로 데리고 가 ‘무함마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부는 출생 전에 사막에서 사망하였고, 모는 6살 되던 해에 사망하고 고아가 되어 문맹자로서 조부 사망 후에 숙부인 아부 딸립 밑에서 성장했다.

 

 

청년 무함마드는 목동이 되었다. 가난한 살림에 배울기회를 얻지 못한 고아였다. 당시 부유한 상인이면서 미망인이었던 카디자의 일꾼으로 고용된다. 무함마드는 25세에 40세의 카디자에게 (낙타새끼 20마리를 주고) 결혼하고 15년 동안 자식을 낳고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한다. 수년 동안 무함마드가 예언자로서 계시를 받은 히라 동굴은 메카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히라 산 정상에 있는 동굴이다. 610년 신의 첫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수 개월 수행생활에 지치고 피곤한 중 비몽사몽 간에 천사가 그의 손에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읽어라’라고 말했다. (이슬람의 ‘꾸란=코란’은 아랍어로 ‘읽어라’의 뜻)

 

 

꾸란은 무함마드가 알라의 계시를 받은 610년부터 63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알라의 음성을 기록한 것이다. 다신교 360여 개의 미신이 창궐하던 메카에서 꾸라이시족이 섬기던 알라를 유일신으로 선포하고 614년부터 대중전도를 시작했다. 무함마드는 622. 7. 15. 출생지 메카를 떠났다. 이를 ‘헤지라’라 부른다. 이 해를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한다 630년 메카로 무혈 입성한 무함마드는 카바 신전에 있는 우상들을 파괴하고, 카바 신전에서 다신교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메카를 떠났다. 그 후 그는 2년 후인 632년에 36명의 아내 중에서 6세에 약혼하고 9세에 결혼한 사랑하는 아내인 ‘아이샤’의 품에서 잠들었다. 이슬람의 하나님(알라)와 기독교의 창조 하나님(절대적 유일신)은 전혀 관계가 없다. 이슬람의 하나님은 물리적 유일신이란 뜻이다.

 

 

아프리카, 시리아 등 중동 난민의 특징은 무슬림이라는 점이다. 이슬람교는 아랍의 습속과 정치 생활방식이 그대로 반영되었고 이는 정치체제라고도 본다. 이슬람의 꾸란이 가르치는 이슬람 13교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출처 : 레쓰비쿠라케스야)

1. 사춘기 시작 안 한 여자아이를 강간, 결혼, 그리고 이혼해도 된다.

(꾸란65:4),

2. 다른 사람을 성 노예와 노동 노예로 만들어도 된다.

(꾸란 4:3, 4:24, 5:89, 33:50, 58:3, 70:30)

3. 노예와 아내는 때려도 된다. (꾸란 4:34)

4. 강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4명의 이슬람교 남성이 필요하다.(꾸란24:4)

5.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로 안 바꾸면 그들을 죽이던지 세금을 네게한다. (꾸란 9:29)

6.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던지 손과 발을 절단시켜 라. (꾸란 8:12, 47:4)

7.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상으로 받는다.

(꾸란 9:11)

8. 이슬람교를 떠나는 사람은 죽여라. (꾸란 2:217, 4:89)

9.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은 목을 베어 죽여라.(꾸란 8:12, 47:4)

10. 알라신을 위해 죽이고 순교하라. (꾸란 : 9:5)

11.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들을 위협하라.(꾸란 8:12, 8:60)

12.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들의 것들을 훔쳐라. (꾸란8)

13. 이슬람을 강화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라.

(꾸란 3:26, 3:54, 9:3, 16:106, 40:28)

 

 

세계적 이슬람 난민 거부 추세에서 수용 쪽으로 선회한 사건으로 2015. 9. 터키 해변에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의 시체가 떠밀려 온 사건이 있었다. 서방세계 주류 언론들이 이 사건을 전 후 사실도 알아보지 않고 동정론에 연일 대서특필하고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이 바람에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 유럽 지도자들이 국경을 확짝 열어 ‘시리아 난민’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었다. 정작 그 아이의 부모는 전쟁을 뚫고 나온 난민이 아니고 이미 터기에 몇 년째 잘 살고 있었는데 그리스를 거쳐 복지혜택이 좋은 서유럽 복지국가로 ‘복지 이민’을 가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그 후에 시리아 난민이라고 유럽에 몰려오는 무슬림들 가운데 진짜 시리아 아난민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국에서 온 ‘복지 이민’이다. 이 중에 시리아 난민은 1.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슬람 난민들이 유럽을 선호하게 된 이유는 이미 드러났다. 경제활동 중에 실직해도 ‘복지 혜택’을 누리고 더욱이 지금 세계는 소위 ‘다문화주의’를 추구하면서 이들은 현지 문화에 동화하지 않고 자기나라의 문화적 가치(이슬람교)를 그대로 지킨다. 유럽의 나라들은 난민을 억압받는 무슬림 쯤으로 생각하고 이민 반대의 진영을 향해서 주류언론들이 앞장서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하는 바람에 낙인 찍히지 않으려고 반대 진영에 서지 못 한다.

 

 

우리정부와 국민은 무슬림들을 보는 유럽의 다문화주의를 배척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다문화주의, 편협한 전체주의적인 체제까지도 포용하는 병적인 관용을 추구했다. 그러다보니 무슬림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배타성, 폐쇄성, 기독교 유대인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 여성차별, 강제조혼, 가정폭력, 일부다처제-이슬람교는 부인을 기본적으로 4명을 둘 수 있음-등 이질적인 반 사회적인 문화까지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착각 속 현실로 받아들였다.

 

 

2011. 독일의 메르켈 총리, 영국의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고 선언했지만 병적인 다문화주의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 중이며 우리 정부, 국민, 주류언론도 이를 당연 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논란 속에 있다. 그 저변에는 북유럽 등 복지 국가에서 복지체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인구 규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보니 심각한 저출산의 대책으로 다문화주의를 지향하다가 이제는 ‘병적인 다문화주의’로 변질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무슬림들의 문제는 모국어에 대한 문맹율도 높은데다 언어소통이 안되고, 고국의 문화에서 탈피할 생각을 하지않고, 노동시장 진입을 기피하며, 폐쇄적인 삶으로 문화적 화합이 불가능한데다, 오직 국가의 복지혜택 안에서만 살다보니 이질적이고 무위도식하면서 사회의 이방인 방황자로 전락하고, 무슬림 청년들의 일탈이 서구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들이 결국은 사회로부터 고립되며 이민자들과만 교류하면서 일탈과 과격 급진적 테러리스트로 변질된다. 교도소에 들어가면 교도소는 이슬람포교의 온상이 되고 광신자로 돌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영국에서 1980년대 말부터 성매매 조직폭력단 ‘그루밍’이 결성된 뒤 그들의 표적은 인도의 이민자 시크교도 상대였다가 그 폭력에 사회적으로 맞서는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백인소녀들을 상대로 선회하였다. 가해자 90% 이상이 무슬림 남성이다. 백인 소녀들 중 결손, 조손, 양육권을 국가에 빼앗긴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그런데도 경찰, 교사, 정치인, 언론인, 사회복지사들은 함구했다. 이들은 무슬림의 난동과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이 두려워 모른척하고, 정치인들은 그루밍이 이슬람 무슬림과는 무관한 ‘아시아문화’로 치부해 버리고 의도적으로 백안시했다. 이제 저항세력의 기자 등 무슬림 강간범을 법정 밖에서 취재해도 피고인 ‘신변보호명목’으로 ‘치안방해죄’로 체포했다. 취재하던 기자는 법정밖에서 법정모독죄로 기소되는 기 현상이 도래했다. 실형을 선고하여 무슬림들이 득실거리는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가 당하는 생명위협과 보복 앞에 노출되고 만것이다.

 

 

결국은 사회와 정부 관료가 ‘그루밍’ 비판 세력을 향하여 갱을 비판하는 ‘로빈슨’을 수속 수감하여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혀 이들의 말로가 어떤 지를 보여주는 식으로 변질된 것이었다. 이런 류의 이슬람 문화를 옹호하고 자국민을 범죄의 희생양으로 몰아넣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병적 사회로 전락된 모습을 보며 한국은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무슬림 난민을 받아들여 국가시스템 자체가 자국민의 복지를 희생시키고 난민 위주의 정책으로 자국이 관용과 개방적 정책으로 모든 문화를 포용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인도주의적 초강대국’ 이란 별칭을 듣고 있는 스웨덴의 난민들에 대하여 잠시 살펴본다.

 

 

스웨덴 정부는 10년 전부터 범죄자의 출신국, 인종, 종교 등 신상정보의 통계를 하지 않고 나이와 성별만 집계를 한다. 이는 암묵적으로 이런 사항을 보도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시스템이 결국은 2006년부터 긴급구호차가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는 경찰도 들어가기를 꺼리며 툭하면 수류탄이 터지는 우범지대인 진입금지 구역이 156개였는데, 지금은 더 이상의 통계를 하지 않고 있다. 이질적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범죄율도 급격하게 늘고 교도소는 이민자 범죄자들로 넘쳐난다. 정치인들은 이질적인 문화가 문제아니고 빈곤 때문이라고 백안시 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다.

 

스웨덴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미성년자 난민’이다. 성인보다 망명허가가 쉽게 나오고 일단 영주권을 얻게 되면 가족 전체를 스웨덴으로 초청할 수 있는 점을 노린 기획난민이다. 눈으로 보아도 20-3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성인을 이민으로 받아서 미성년자들과 나란히 앉아서 수업받고, 아동들을 성추행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이민자의 급격한 증가는 극심한 주택난을 동반한다. 정부는 자국민이 몇 년을 기다려야 얻는 거주지를 이민자들에게는 몇 주 만에 제공한다. 이민자들은 정부에서 각종 수당을 받으면서 국민은 세금으로 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스웨덴에서 여성 할례(절제)하는 이슬람 풍습의 피해자는 2015년 3만 8000명, 최근에 15만명으로 증가했다. 스웨덴은 난민에게 위탁가정을 알선해 주는 기업으로써 한 몫 챙기며, 또 미성년자 난민 29명의 법적 후견인으로 일하면 한 달에 7000달러를 받는다.

 

 

스웨덴 주류언론들은 이민으로 발생하는 사회적인 심각한 문제를 눈감아 버린다. 난민의 높은 범죄율이나 과도한 복지의존 등을 지적하는 사람은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힌다. 언론이 매도하면 그 당한 사람은 일자리를 잃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증오발언금지법’이 있어 특정 종교, 인종, 국가를 바탕으로 특정 집단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은 최고 2년 형에 처하는 이상한 나라로 변질되었다. 난민 범죄가 폭증하면서 경찰은 재원과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한정된 재원을 국민을 보호하는 데 쓰지 않고 연금수령자들 대상으로 법적인 투쟁을 한다. 법원도 난민 범죄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가벼운 형량을 내린다.

 

우리나라 음주운전자를 가볍게 처벌하는 것처럼, ‘스웨덴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정상 참작으로 판결하기 때문이다. 이 정상참작 사유 범죄는 범죄자가 스웨덴 자국 남성이었다면 중형을 받았을 범죄이다. 이는 ‘병적인 문화적 상대주의’다. 이러한 문제로 시위를 한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받는다.

 

 

“스톡홀름 증후군”이 유럽을 휩쓸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나머지 ‘서유럽’, 복지천국 ‘북유럽’도 다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비판을 금기 시 하며, 금기를 깨면 극우로 매도된다. 서구문명과 공존 불가능한 가치체계인 이슬람과 짝사랑에 몰입한 유럽과 아랍의 합성어인 ‘유라비아’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은 대상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함몰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스펭글러가 지적한 서구세계의 몰락을 보는 듯 싶다.

 

 

한국의 주류언론, 정치인, 진보주의자들에게 바란다. 한국에서는 정부관료와 국민이 단합해서 이민법을 개정해서 스웨덴식 이민법을 배격하고 난민심사를 보다 엄격하게 해서 이러한 ‘스톡홀름 증후군’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제주도처럼 무비자를 허용하는 법은 이 나라를 이슬람 국가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난민을 정상적인 심사를 거쳐 걸러내는 장치를 정치인들과 국민이 마련해야 한다. 이 길이 이 위기를 잘 넘기는 길이고 진실로 한국을 건강하게 살리는 길이다.

                         

                             (저서 : 문화충돌을 평화와 번영으로)

임승완 (서울중앙지방법무사회)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