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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우리의 모습, 고구려 떠올리게 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부탄

부탄 국민들이 '주모'의 神으로 섬기고 있는 설산의 전경. 거대한 설산이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받으며 아침을 깨우는 장엄한 모습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연상케 한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세계. 오래 전 서구사회가 우리를 지칭했던 이 말이 지금까지 딱 어울리는 나라가 있다. 티벳불교의 베율(샹그릴라)이 곳곳에 산재한 곳, 바로 부탄이다. 부탄의 공식 명칭은 부탄왕국(Kingdom Of Bhutan)이고, 입헌군주제 국가다. 면적은 남한의 40% 정도이고, 인구는 70만 명 남짓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의 생활 속에 종교가 깊숙이 자리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을 바라보며 세계 평화를 위해 명상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부(富)의 기준은 다른 세계 사람들과 좀 다르다.

부탄은 1970년 중반부터 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국가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 index)를 내세운다. GDP를 기준으로 하면 빈국에 속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못 사는 나라가 아니다. 누구나 웃는 모습, 평온한 얼굴에 저마다 천진함과 더불어 기상이 함께 깃든 기품을 가졌고, 어린 친구들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관광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부탄 옆에 네팔(두 나라 사이에 인도에 속한 시킴왕국이 위치) 사람들이 부탄을 잘 사는 나라라고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표고차가 해발 200m에서 7,500m에 이르는, 그야말로 산악 국가다. 이런 이유로 수력발전량이 많아 전기를 인도에 수출해서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충당한다. 부탄은 최근 탄소배출권 채권 국가로 주목받기도 한다.

부탄 사람들의 생김새, 복장, 데릴사위를 연상시키는 모계사회의 전통, 국기인 활쏘기, 탈춤과 유사한 전통 무용, 가족의 호칭, 추모(광개토태왕비에는 주몽이 추모로 표기되어 있다)와 발음이 유사한 주모(또는 조모)를 신으로 받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부탄 땅에서 우리의 모습, 특히 고구려를 떠올렸다. 부탄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부탄을 찾은 이유는 두 가지가 궁금해서였다. 먼저 돈 없이 행복하다는 것, 그 의미를 알고 싶었다. 다음으로 부탄 사람들이 우리 선조와 상당한 연관을 가졌다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첫 번째 의문은 풀었지만, 두 번째 의문은 계속 확인 중이다. 내가 부탄의 전통 의상인 '고(Gho, 여성의 전통 의상은 Kira)'를 입고 부탄의 수도 팀푸 거리를 거닐면 모두 나를 부탄 사람으로 알았다.

부탄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고민 끝에 법조인으로서 관심 가질 만한 부탄의 일화 두 가지를 소개하기로 했다. 먼저 부탄왕국이 지금과 같은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 경위에 관해서다. 직전의 국왕이었던 제4대 왕은 왕에 즉위하자마자 줄곧 국민을 설득했다고 한다. 자신은 왕권을 내려놓을 테니 헌법을 만들고 선거를 치러 입헌군주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런 설득 과정을 거쳐 헌법을 공표했다. 그리고 2008년경 상하원 구성을 위한 선거를 치렀다. 국민은 왕이 권한을 내려놓는 것을 슬퍼했다고 한다. 왕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후 지금의 왕에게 왕권을 물려줬고, 자신은 부탄 곳곳을 떠돌며 국민을 만나고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왕의 거처는 Dzong(종)이라 부르는 사원이자 정부청사 옆에 자그맣게 마련되어 있다. 존경과 힘의 원천은 관대함과 소박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깎아지른 산 절벽에 세워진 부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인 '탁상'의 전경.

다음 이야기는 이렇다. 바티칸에서 부탄에 신부를 파견했다. 신부는 부탄의 환영을 받았다. 신부는 성당 지을 땅을 요청했다. 부탄 사람들은 새로 건물을 지으려면 나무를 베어야 하고, 그러면 나무가 죽고, 나무에 붙어사는 개미 같은 생명체들도 모두 죽게 되니 새 건물을 짓지 말고 빈 사찰을 성당으로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성모상을 올리도록 사찰에 있던 불상이며 재단을 싹 치워줬다. 어떻든 신부는 이렇게 성당을 차렸다. 그런데 신도가 없었다. 그래서 교도소를 찾았다. 죄 지은 사람부터 개종을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신부가 찾은 교도소에 죄수가 없었다. 교도관이 있긴 했는데 건물 관리가 주된 임무였고, 신부가 교도소를 찾았을 때 교도관은 밭을 갈고 있었다. 사실 교도소는 상당히 오랜 기간 비어있었다. 신부는 충격을 받았다. 이 모든 일들을 교황청에 알리고 교황청에 되물었다고 한다. "왜 나를 이곳에 파견하셨나요?" 이 신부는 파문을 당했다. 파문의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어떤 기자가 신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 신부를 찾아갔다. 그런 일이 있었냐는 기자의 물음에 신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탄에 머무는 내내 나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팀푸 광장에 서서 먼 산의 정상을 바라봤다. 속되게 품었던 생각들이 부질없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우주, 나무, 그리고 영혼 - 이런 것들이 산 밑에 선 나에게 소중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햇살이 비끼는 한라산을 본 적이 있었다. 바람 부는 설악산 밑에 선 적이 있었다. 어머니 품 속 같은 지리산에 든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새롭게 태어났고, 부탄에서 난 또 새롭게 태어났다.

<함석천 부장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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