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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전시회 피카소 '게르니카'를 보고

진형혜 변호사 (법무법인 지엘)

12월의 따뜻한 기온에 " 음.... 이번 겨울은 착하게 지나가려나 보네" 했던 나의 순진한 기대를 비웃기라고 하듯 동장군이 연일 맹위를 떨치던 1월의 끝자락, 일흔 다섯 평생을 당신의 딸을 위해 살아오신 친정어머니가 소원하시는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이루어드리기 위해 적지 않은 용기와 결심을 끌어모아 스페인으로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페인. 말 그대로 볼거리, 먹을거리의 무궁무진함이 가히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이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예술가라면? 단연 피카소와 가우디일 듯.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를 거쳐 마드리드에 여장을 푼 첫날 저녁, 잠시 들린 식당에서 말로만 듣던 스페인의 프로페셔널한 소매치기단에게 고스란히 가방과 가방 속 온갖 귀중품들(여권, 지갑, 휴대폰 등등)을 헌납하는, 말 그대로 여행이 끝장날 수 있는 비상사태를 겪기도 했지만 이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인생과 여행은(적어도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한 것이니 말이다.

마드리드에서 머물렀던 숙소에서 걸어서 불과 2분 거리 안에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사진)이 위치해 있었다. 1982년도에 만들어진, 비교적 짧은 역사의 이 미술관이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영구 전시되어있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파블로 피카소'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피카소의 수많은(피카소는 92세에 사망할 때까지 평생에 걸쳐 무려 3만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작품 중에서도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걸려있는 <게르니카>는 단연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이다.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라는 마을의 전 주민이 1937년 4월 26일 휴일 낮에 아무 이유없이 대규모 비행기 공습으로 몰살을 당하여야 했던 참혹한 사건(나중에 밝혀진 이유로는 당시 창설 중인 공군의 신병기 실험장이 필요했던 독일군이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와 야합하여 프랑코를 지원하는 대가로 게르니카 주민들에 대한 시험 공습을 승낙받은 후 공습을 감행한 참극이었다)을 전세계에 고발한 피카소의 대표작이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2층 중앙의 방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가로 7.8미터, 세로 3.5미터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게르니카〉는 흑색과 회색이 주된 기조이다. 죽은 어린 아들을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 도움을 구하는 남녀, 상처입고 울부짖는 말, 칼을 쥐고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 찢어진 깃발과 부러진 칼, 표정없는 눈빛의 소 등을 피카소 특유의 입체적인 기법으로 표현한 이 그림에는 전쟁과 파시스트에 대한 피카소의 증오와 분노, 전쟁 종식의 강한 염원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몰살시킨 게르니카에서의 만행이 전세계에 불러온 충격 및 피카소라는 거장의 인지도와 맞물려 이 그림은 이후 민간인 학살과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

카메라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게르니카>가 걸려져 있는 방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서로 교차하며 위 그림을 이야기하고 감상하고 있었다. 그 중 간간히 들리는 독일어를 들으며 그들은 자신의 나라가 행한 참극을 전세계 만방에 고발하고 있는 이 그림을 과연 어떤 마음과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마침 내 바로 앞에서 독일어로 된 작품해설을 듣고 있는 젊은 남학생에게 이 그림에 대해 물었을 때 자신을 김나지움 7학년이라고 소개한 그 학생은 "게르니카가 어떤 그림인지, 어떤 사건을 담고 있는지는 학교에서 상세히 배웠고 교과서에도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며 이 그림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느냐는 나의 또 다른 질문에 대해 "우리 윗세대들이 한 행동 중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그러한 행위를 이후 세대가 되풀이 하지 않고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배우고 기억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라고 반문하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던가. 자신들이 행한 모든 악행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전 세계인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역사를 잊은 민족'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역사인식은 충분한 것일까. 우리가 기억하여야 하는 우리의 역사를 너는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내게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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