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고미술 이야기

(59)- 추사간찰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추사가 제주도에서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와 강상(江上) 즉 용산에 우거할 때인 1849년 11월에, 대흥사에서 주석하고 있던 초의(草衣)와 무주(無住) 두 스님께 보낸 답장 편지다. 아마도 두 스님의 편지가 같은 날에 도착하여 그 기쁜 마음을 표현하며 글을 써 내려 간 듯하다. 초의 스님과는 워낙 친한 사이라 반쯤 농으로 썼지만 무주 스님과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안을 가지고 서로 문답하는 내용이다.

무주스님이 던진 1. 조문도(朝聞道), 2. 무은(無隱), 3. 만상주(萬象主) 세 가지 공안(公案)을 가지고 추사가 답한 편지인데, 추사의 명쾌한 답변을 통해 추사가 불학에 조예가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또 이 글씨는 추사가 제주도 이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추사체의 편지가 이렇다 하고 보여 줄 수 있는 보기 드문 자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내용, 글씨, 형식이 완벽하게 남아있다. 봉투에 있는 수결(手決)은 추사의 자인 원춘(元春)을 본떠 만든 것인데, 젊어서 쓴 한글편지에 어쩌다 보였는데 이때까지도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쌍수(雙脩)는 추사가 중기 이후에 썼던 호인 쌍수도인을 줄인 말이다.

대흥사의 초의와 무주 두 스님께(芋社卽傳 草衣無住兩師 合照)/ 서찰을 받아 쌍으로 펼치니 쌍으로 반갑구려. 하물며 돌아간 뒤의 첫 소식이라 어찌 마음이 흐뭇하여 풀리지 않으리오(書來, 雙披雙慰, 황歸後初信, 安得不欣釋)/ 더구나 초사(草師)의 글 뜻은 이 시끄러운 티끌을 벗어나 저 정계(淨界)를 점령함으로써 자못 자유자재한 기쁜 얼굴빛과 시원스러운 눈매를 내보이고 있으니 진실로 하례할 만하구려. 다만 이 강상(江上)의 종종물(種種物)이 정계와 통하고 있는 것을 사람으로 하여금 확실히 싫증나게 할 거요(第草師書意, 祛此塵효,  占彼淨界, 頗有得得自在底色喜眉쾌, 固可賀也, 但此江上種種淨通, 令人固可厭)/ 무주(無住)로부터 보여준 세 조항은 매우 좋아서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오(無住三案之示甚善)/ 이를테면 조문도(朝聞道)의 한 조항은 비유하자면 사(師)들의 늘 쓰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의 문(聞)과 같이 여길 따름인데, 만약 우리 성인의 도를 들으면 비록 저녁에 죽는다 해도 가할 것이니 도란 것은 곧 성인의 도를 이름이요 만약 성인의 도가 아니라면 도가 아닌 것이외다(如朝聞道一案, 譬如師輩, 只是如是我聞之聞而已, 若聞我聖人之道, 雖夕死可矣, 道者卽聖人之道, 若非聖人之道, 非道也)/ 무은(無隱)의 한 조항은 성인의 도가 방책(方冊)에 널려 있어 해가 중천에 솟아 오른 것 같으니 어찌 일찍이 유(儒)에는 사(私)를 두고 선(禪)에는 숨김이 있겠는가(無隱一案, 聖人之道, 布在方策, 如日中天, 何상有私於儒而隱於禪也)/ 만상주일(萬象主一)의 조항은 당구(當句)의 안에는 말하지 아니했으나 이것이 어찌 족히 큰 도에 비겨 의논할 수 있으랴. 그 물(物)이라 상(象)이라 이른 것은 우리 도 가운데의 말과 같기도 한데 우리 도 가운데는 본래 이러한 등속의 구절이나 말은 없으며 만약에 선가의 비묘(비妙)라고 여긴다면 물과 상은 본래 반드시 뽑아 올 것은 아니니 이는 반은 올라가고 반은 떨어지며 동쪽이 희미하고 서쪽이 막힌 격이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못 견딜 지경이오(萬象主一案, 當句內不說去, 是何足擬議於大道耶, 其云物也象也, 有似乎吾道中語, 而吾道中本無此等句語, 若以爲禪家秘妙也, 則物與象本不必拈來, 是半上落下, 迷東碍西, 不覺噴筍滿案)/ 11월29일에 쌍수(雙修)는 답함(十一月卄九日 雙脩具감) 

<한자시구의 일부 한자가 표현이 되지 않아 한글로 표기했음을 양지바랍니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