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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58) 김상옥의 '수석유향지도'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고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평범하나 조금 세월이 지나면 이상하게도 예민해지고 성격도 괴팍해 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드러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필자가 아는 한 사람이 시인이면서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도자기 수집가로도 유명한 분이 있다. 근대 통영이 낳은 시인 초정 김상옥(艸丁 金相沃: 1920-2004) 선생일 것이다.

내 편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미술품, 특히 조선백자에 대한 관심과 연구, 또는 그에 관한 예찬은 어떤 전문가보다도 더 심하였다. 한걸음 더 나가 글씨도 쓰고 특히 남이 잘 안 쓰는 전서(篆書)에 조예가 깊었고 청자, 백자 그림이나 수선화 그림에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그의 시를 매우 좋아하지만 그의 글씨나 그림에 더 마음이 간다. 그와 만나서 침을 튀겨 가며 백자나 추사 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할양이면 그에게 푹 빠지게 되는데 조금 더 지내보면 얼마나 독선적이고 자기만의 세계에 그렇게 빠질 수 있을까 연민이 들 정도이다. 그렇기에 시, 그림, 글씨, 모두에 자기 세계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얼마나 노력했을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 소개하는 수선화 그림도 처음 볼 때는 처음 초정선생을 볼 때처럼 먼지 복잡하고 어수선해 보이나 보면 볼수록 정이 들고 마음이 간다. 수석 사이에 수선이 추사처럼 한 두 송이가 아니라 무성하게 피어났고, 그 오른쪽 여백에는 그의 독특한 전서로 "수석유향지도(壽石幽香之圖)"라는 제목을 적고 그 왼편 여백에는 '경술년(1970) 초겨울에 서울 종로통 아자방 창 밑에서 초정이 그린다(庚戌初冬於洌上鍾衢亞字房窓下艸丁塗之)'라 썼는데, 그림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폭의 멋진 선면 그림이 탄생했다. 이래서 문인화의 화제는 그림의 품격을 한 단계 올리는가 보다. 단순한 도자형태에 약간의 채색을 입힌 다른 도자기 그림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초정선생은 한때(1960~70년대 초반) 종로 인사동에서 아자방(亞字房)이라는 표구가게 겸 골동가게를 한 적이 있었다. 백자수집이 목적이었지만 가난한 선비가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아자방은 그 당시 화랑이나 다방이 없던 시절이라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필자는 그로부터 조금 뒤에 인사동에 나가게 되어 직접 아자방을 들어간 적은 없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에게서 아자방 이야기를 많이 들어 어떨 때는 거기 들어가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고 착각을 할 지경이다. 그 여러 사람 중에도 같은 시인이며 유난히 골동, 특히 글씨와 그림을 좋아하시던 김구용(金丘庸: 1922-2001)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또 다른 모습의 초정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내용도 거의 구용장의 이야기다. 아마도 근래의 시서화 삼절은 초정선생이 아닐지.

솔 씨가 썩어서 송진을 게워내기까지/ 송진이 굳어서 반쯤 밀화(蜜花)가 되기까지/ 용하다 이조(李朝)의 흙이여, 너는 얼마만큼 참아 왔는가<이조의 흙>.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백자부>. 백자 하나에 이 정도의 애정이라면 어떤 분야를 하더라도 그 분야에 최고가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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