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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아프게 하는 서면들

배현태 변호사 (김앤장)

단독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변호사 없이 소송을 수행하던 어떤 당사자가 기억이 난다. 그 당사자가 제출한 서면의 대부분은 상대방에 대한 언어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정도가 다른 사건들보다도 매우 심했다. 하루는 그 당사자에게 하소연 하듯이 부탁을 했다.

"원고 아무개 씨, 작성하신 서면은 제가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서면에 쓴 표현들이 너무 강해서 제가 힘들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이렇게 강한 표현이 들어간 서면을 많이 읽으면 재판 준비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아무개 씨가 억울하다는 점을 좀 더 점잖게 써주시면 제가 재판 준비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당사자가 제출하는 서면을 읽을 때마다 칼날 같은 표현들에 내가 찔리는 느낌이었고, 퇴근해서도 그 표현들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된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하는 서면들을 종종 접한다. '터무니없는 술책', '악의적인 허위 주장', '말도 안 되는 궤변 늘어놓기', '재판부를 기망하려는 소송사기' 등등. 위에 소개한 사례와 차이가 있다면, 내가 언어폭력의 관망자가 아니라 상대방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표현들을 써내는 사람이 당사자 본인이 아니라 '변호사'라는 점이다.

물론 개인적인 감정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하여 쓴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자신이 대리하는 당사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표현들이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그 글을 읽는 재판부까지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단독판사 시절 준비서면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당사자는 내 부탁을 바로 들어주었다. 그 이후에는 '조금 점잖은' 표현을 사용했고, 결국 그 소송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를 어떻게 설득하는 게 효과적인지 금세 알아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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