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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Flying Dutchman)'을 보고

진형혜 변호사(법무법인 지엘)

무심코 바라본 2015년 달력에 유일하게 남은 한 장이 팔락거린다. 벌써 또 한해가... 헛헛한 마음으로 무심코 두리번거린 나의 눈에 버스 옆구리에 붙은 문구 하나가 들어온다.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이름은 들어봤지만 아직은 한 번도 본적 없는 오페라다. 그것도 어렵기로 소문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Flying Dutchman). 얼핏 보아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을 가진 이 오페라는 한마디로 신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 이야기이다. 어릴 때 읽었던 유럽의 전설과 기괴한 이야기를 모은 동화나 신화에서 항상 등장하는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 바그너가 유령선을 모티브로 한 이 오페라를 작곡하게 된 계기는 바그너 자신이 배를 타고 노르웨이 해안으로 가던 중 배가 표류하게 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해안에 도착하는 경험을 한 후 그 항해에서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의 작품 중에서 맨 처음으로 신화나 전설을 채용하여 오페라를 서술한 작품이며, 이후 니벨룽의 반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바그너의 많은 작품들에서는 북유럽의 신화 및 전설이 주소재로 등장한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네덜란드인 선장은 아프리카의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을 만났지만, "지구 끝까지 항해하리라"며 고집을 부리다 결국 침몰하고 만다. 배가 침몰하고 선원들이 차례로 죽어나가자 네덜란드인 선장은 신들을 저주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신에게 돌리는 선장에 분노한 신들은 이미 모든 선원들이 죽은 유령선의 된 네덜란드인 선장에게 영원히 바다를 떠돌다가 7년에 단 한번만 상륙이 가능하도록 하는 저주를 내렸다. 신이 내린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7년에 단 한번 상륙했을 때, 신의 저주를 받은 선장에 대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여인을 만나는 것. 이후 선장의 영혼은 선장을 사랑하겠다는 맹세와 함께 선장이 떠난 바다에 투신한 한 여인의 희생으로 드디어 신의 저주를 벗고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오페라의 경우 막과 막 사이에, 15분 정도의 인터미션(휴식시간)을 갖는 것이 보통인데 바그너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막과 막 사이의 인터미션을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관객도, 공연자도, 오케스트라도 2시간 20분 동안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공연에 집중하여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틱하고 유려한 선율,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익숙한 전형적인 한국 관객인 나로서는 다소 무겁고 난해한 바그너에 2시간 20분 동안 집중하기란 여간해서는 어려운 일. 하루 종일 일에 치이다가 막판에 급히 공연장으로 뛰어간 터라 쏟아지는 잠과 자꾸자꾸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들어올리느라 최초 시작 후 얼마간은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사투를 벌일만한 보람은 있어서 그날의 네덜란드인 선장 베이스바리톤 '유카 라질라이넨'과 여주인공 젠타 역의 소프라노 '마누엘라 울'은 기대 이상의 호연과 성량으로 한국에서 쉽게 보기 드문 바그너 공연을 기대했던 바그네리안들을 흡족하게 하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 시대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통하는, 달란트 역의 베이스 연광철의 출연이 취소되어 그의 묵직하고도 영혼을 꿰뚫는 듯한 목소리를 무대에서 접할 수 없었다는 것.

바그너의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 대부분은 신과 인간,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 희생을 통한 영원한 구원이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역시 위 주제에 깊이 천착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체로 접하기 힘든 바그너의 공연을 보고 모처럼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오다 문득 든 생각 하나, "왜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자는 항상 여성, 그것도 아름다운 처녀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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