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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의 추억

고경순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부장님, 이 책에 직접 사인이라도 해주세요." 수습수사관 임선미는 전별식 행사가 끝나자마자 사무실로 찾아왔다. 기념으로 준 책에 분명 '함께 근무하며 너무 행복했다'는 짤막한 인사도 기재했기에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그 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임 수사관은 컴퓨터로 출력한 글이 아니라 사람의 체취가 담긴 손 글이 필요했던 것. 사실 내게도 오랫동안 나를 지켜준 편지상자가 있다.

나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중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 논길을 1시간 이상 걸어 나와야 하는 시골이었지만,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과 유쾌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갑작스럽게 그곳을 떠나 서울로 온 1학년 말, 워크맨으로 무장하고 깍쟁이 같기만 한 서울 아이들의 텃세를 이겨낸 건 오롯이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내 준 편지 덕분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절도 그 편지 덕분에 무사히 보냈다. 사실 그 편지 안에는 늘 그리운 김제의 너른 지평선과 에메랄드 빛 하늘이 들판을 가득 채운 포도 향기와 어우러져 있었고, 그리운 이들의 따듯한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렇게 힘을 얻었다.

검찰 내부통신망에는 '미담과 칭찬'이라는 게시판이 있다. 사건 당사자들이 보낸 감사편지가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이는 공간이다. 얼마 전 안동지청 남소정 검사에게 보내진 손편지가 화제가 되었다. 그 편지에는 '조사를 받기 전 암담하고 괴로운 마음이었으나, 조사를 받는 동안 검사님께서 아픈 과거 이야기를 모두 조용히 들어주시고, 믿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큰 위안과 따뜻함을 느꼈다'는 내용과 남 검사의 일러스트까지 정성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나는 그 편지에서 '범죄를 처벌하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 귀한 마음과 그 마음을 통해 치유 받은 사람'을 만났고, '너무나 멀고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국민의 신뢰도 되찾아 올 수 있겠다'는 믿음도 얻었다. 당사자가 보낸 손편지에 나는 그렇게 큰 힘을 얻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온다.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에게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카드를 보내보면 어떨까.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