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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56) 안염첩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이 첩은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5)가 1806년 봄 평안도 용강현령(龍岡縣令)으로 나갈 때 선후배 제자 등이 써준 전별 시문집이다.

표지에 암연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이별할 때의 서운함을 나타내는 글자로 우리말로는 '아득하다'는 뜻이다. 옛날 사람들은 교통의 불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멀리 여행을 하거나 지방으로 벼슬살이를 떠나거나 할 때는 선후배나 친구 들이 모여 전별의 자리를 만든다. 이를 '전별연(餞別宴)'이라 한다. 잠깐 여행에도 이런 전별연이 있을 정도이니 중국으로 사신으로 나가거나 일본으로 통신사 행렬에 끼이게 되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첩에는 총 21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은 이집두(李集斗: 1744-1820), 이복현(李復鉉: 1767-1853), 홍경모(洪敬謨: 1774-1851), 김조(金照), 유득공(柳得恭: 1748-1807), 유본예(柳本藝: 1777-1842), 천수경(千壽慶: ?-1818), 유기(庾璣) 등 20인이다.

이 중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의 저자인 유득공및 그의 아들인 유본학(柳本學)과 유본예,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맹주였던 천수경의 글은 매우 보기 드물다.

이 첩은 자하가 직접 장황하여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이는 첩의 첫머리에 '독화(讀畵)', '신위지인(申緯之印)', '한수'라는 세 개의 방인(方印)이 찍혀 있고, 말미에 '경연강관(經筵講官)', '신위지인(申緯之印)', '용강현령지인(龍岡縣令之印)' 등 세 개의 큰 낙관이 찍혀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여러 인물의 시 가운데 유득공의 전별시 한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동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 이곳 용강이 낙랑시절 증지현(增地縣)이었고/ 한나라 이후 천여 년 동안/ 산과 바다는 일찍이 변한 적 없네/ 만약 이 곳의 이름난 사람들을 기록한다면/ 책으로 치면 아마도 수십 권(卷)이나 될 것이네/ 너그러운 원님 만나면 백성을 어루만지지만/ 혹독한 사람 만나면 몽둥이찜질만 있겠지/ 농사를 안 지어도 조(粟)로 과세를 하고/ 양잠이 없어도 비단으로 조세를 하네/ 벽돌을 구워 성을 수축하고/ 이정표 만들어 역마(驛馬)길을 밝힌다/ 여러 깃발을 잘 보수하고/ 활과 화살의 먼지를 털어낸다/ 이렇게 큰 공적을 이루면/ 치적 고과에 좋은 점수 나오리라/ 군께서는 어찌 홀로 그러하지 않고, 붓을 휘두르며 별원(別院)에 앉아 있겠소/ 너그럽고 풍류를 즐기는 태수가 되면/ 고을 백성들이 처음 본다 놀랄 것이네"

천수경은 시와 곁들여 서(序) 한 편이 실려 있는데, 수령의 할 일에 대해 너무나 진솔하게 썼다. 시인으로만 유명한 줄 알았지 문장에도 이렇게 뛰어났는지 몰랐다.

"군자가 벼슬을 하게 되면 조정에 들어가서는 임금을 섬기고, 지방에 나아가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하여 백성의 실정을 알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옛날의 사대부들은 벼슬에서 물러나면 시골에 살면서 일반 백성들이 하는 일을 살폈다. 이렇게 백성의 일을 살핀 까닭에 들어가서 조정에 있을 때는 정책을 돕고, 수령으로 나갈 때는 오직 백성을 편안하게 했다. 그런데 지금의 사대부들은 자손들을 서울에서 자라게 한다. 이는 전야(田野)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고, 전야를 멀리하게 되면 백성의 실정을 어떻게 두루 알 수 있겠습니까?"

요즘 같은 세태에 정치인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이 첩 속에 골고루 들어 있어서, 가만히 있을 때면 왠지 자꾸 떠오른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