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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노트

사건 내용을 시각화시켜라

김재헌 변호사

폭포 위에서 한 여인이 알몸으로 서 있다. 그리고 폭포 속으로 뛰어 내린다. 이 장면을 상상을 해 보면 충격적이어서 잘 잊히지 않는다. 기억력의 향상은 이런 이미지를 머리에 그릴 때 가능하다. 내가 중학교 때 본 기억력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인데 아직도 생각이 난다. 시각적 이미지는 강력하기 때문에 사진이나 그림, 만화 또는 영화의 장면이 이미지로서 사람들의 머리에 새겨지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설득을 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변호사도 설득을 위해서 사진이나 그림 등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글로 길게 쓰는 것도 좋지만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 등으로 이런 글을 대체할 수 있다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내가 후배들과 일을 해 보면 스타일이 다양해서 시각적 자료를 많이 활용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시각화시키는 것은 재판에도 도움이 되지만 이것은 변호사의 다양한 업무영역에서 유용한 것 같다.

첫째, 시각화는 사건의 장악에 도움이 된다. 사건을 장악하고 있는 지 여부는 질문을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건을 장악하고 있으면 사실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막힘이 없이 답변을 한다. 그런데 사건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면 답변을 잘 하지 못하고 당황하게 된다.

임 변호사가 내 사무실에 들어와서 리서치에 대한 중간 점검을 위해서 설명을 한다. 자신이 작성한 메모지를 내밀고 자기의 아이디어를 내게 설명해 준다. 임 변호사가 가지고 있는 메모지를 들어다 보니 도형도 그려져 있고 선도 그어져 있다. 관련 사실들의 관계를 선과 도형으로 표시해 놓고 쟁점을 정리해 놓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색상의 형광펜을 활용해서 강조표시를 해놓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자신의 생각을 이런 방식으로 정리해 오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을 보면서 내가 안심이 되었다. '아, 임 변호사는 사건을 장악하고 있구나!'

기록만 수천페이지인 복잡한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 한 장의 종이에 또는 종이를 여러 장 붙여서 사건내용을 도식화하는 작업을 하는 변호사가 있다. 내가 보기에 아주 잘 하는 것 같다. 반면에 이런 시각화 작업을 하지 않고서 읽은 자료의 내용을 머릿속에만 담아두는 후배들도 있는데 이런 후배들은 검토에 많은 시간을 쓰지만 막상 사건의 내용에 대해서 물어보면 불확실하게 알거나 또는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똑같은 시간을 들여도 시각화시키면서 일하는 경우 훨씬 더 효과적인 업무처리가 가능해지고 사건의 장악이 용이해진다.

둘째, 시각화는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 사건이나 프로젝트는 대체로 복잡하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시각화 해놓으면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손을 사용해서 계속 핵심단어들을 적거나 표와 그림을 그리면서 쟁점을 검토를 하다 보면 보다 더 선명하게 해법이 나오게 된다. 나는 복잡한 사건의 사실관계를 한 장의 종이에 도식화하여 정리하곤 한다. 이것을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 해 본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머릿속 그림으로 새겨 놓는다. 그리고 계속 생각한다. 머릿속에 이런 그림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고,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머리 속에서 생각이 엉켜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마인드맵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토니 부잔(Tony Buzan)이라는 사람이 1970년대에 우뇌와 좌뇌를 같이 활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방사형 구조로 종이에 그려 나가는 것이 마인드맵의 골격인 것 같다. 우뇌는 창조력이나 상상력을 담당하고 좌뇌는 논리력 · 분석력을 담당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마인드맵을 통해서 우뇌를 활성화시키는 것도 역시 시각화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

셋째, 시각화를 시키면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회의 때 말로만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 간에 정확한 이해를 하고서 앉아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게 된다. 실제로 회의 때 상호간에 다 이해가 된 것 같은데 회의를 마치고 나와서 물으면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부정확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회의를 할 때 시간을 절약하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논점을 다 이해하고 공감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칠판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선을 긋고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표현해 나가면 회의참석자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비교적 쉽게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법률업무는 정확성이 생명이다. 회의실에 앉아서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서로의 의사가 정확하게 전달이 되고 합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시각화는 회의 진행에도 도움이 된다.

25년 차 김 변호사는 에너지 분야와 국제거래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김 변호사와 내가 만나서 미팅을 하면 그는 항상 종이와 펜을 찾는다. 회의장소가 식당이건 카페건 회의실이건 종이와 펜을 찾는다. 칠판이 있으면 칠판을 이용한다. 종이와 펜이 없으면 전자펜을 꺼내서 스마트폰에 그린다. 말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선을 긋는다. 김 변호사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손으로 쓰고 그린다. 그리고 동시에 말을 하면서 생각들을 정리해 나가는 것 같다. 나도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김 변호사는 과도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내가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이러하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같이 일을 할 때,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되면서 회의가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한데, 칠판이나 종이에 그림과 표를 그려 가면서 또는 적어가면서 설명을 하면 상호간에 동일한 이해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넘어갈 수 있어서 회의가 효율적으로 진행이 된다고 한다.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어서 타이핑하는 것 외에 손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손을 사용하여 종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장치에 쓰고 그리는 것이 여전히 업무에 도움이 된다. 종이와 펜을 가능한 많이 활용하여 시각화시키는 것이 변호사 업무에 도움이 된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것을 권한다.


나의 제안 : 종이와 펜을 활용하여 시각화시키고 우뇌를 활용하라.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