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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법조산책

1. 미국 국민참여재판의 득과 실

박영선 미국변호사


1992년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건 로펌을 일군 박영선(45·캘리포니아 바) 미국변호사가 현지의 핫 이슈를 통해 미국의 각종 법제도와 그 효용성을 들여다본다. 삼성과 애플사건에서 보듯 우리나라 법조시장도 어느새 글로벌시대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국내 법률시장이 1~2년 내 3단계까지 개방되면 유럽연합(EU)과 미국 로펌들이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우리도해외진출에 적극 나서야한다. 박 변호사가 국경을 넘나들며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하는'법조산책'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국민참여재판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바로 미국 프로 풋볼선수인 '오제이 심슨 사건'이다. 진짜 살인범일 것 같은 유명인이 배심원 제도라는 미국의 독특한 법제도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형사처벌을 벗어나는 과정이 마치 한편의 법정드라마 같았다.

당시 미국 로스쿨 지망생이었던 나는 매일 아침 '코리아 타임즈' 신문이 가판대에 오르길 기다렸다. 그 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변호사로 일을 하며 나는 더 이상 법정드라마가 아닌, 실생활에서 국민참여재판이 법률시장과 사회전반에 끼치는 득과 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형사사건의 경우, 그것도 피의자가 원할 때만 국민참여재판이 이용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와 민사 모두에 적용된다. 전문적인 법률지식과 경험을 가진 법관들에 의한 재판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용하므로, 미국의 제도는 한국과는 영 반대인 셈이다


국민참여재판의 사회적 유용성은 민주주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누구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미국헌법의 기본이다. 공정한 재판이란 법률지식을 가진 특정소수가 아닌 재판의 중심에 서있는 바로 '그들'과 비슷한 일반인에 의해 결정될 때 이루어 질수 있다고 미국에선 믿는다. 흑인 피의자가 세 명의 백인 판사들 앞에서 재판을 받는 것보다는, 여러 인종으로 구성된 일반 배심원들 앞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더 공평하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라는 민주주의 정신의 연장선이 바로 미국의 국민참여재판이다.

민사·형사 등 모든 재판에 적용
법관에 의한 재판 예외적 경우만
다양한 증거법의 발전 등에 기여
법률시장에 새로운 직업 창출도

어느 한국소송변호사는 미국법 중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이 바로 증거 도입이나 청문 혹은 배제를 위한 절차 (Discovery Process)라고 내게 말했다. 미국에서 다양한 증거법이 발전한 이유는 다름 아닌 국민참여재판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을 하게 되면, 법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에게 짧은 재판기간동안 증거를 이해하고 판독하는 방법과 그 법적 의미 등을 가르쳐 가며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문증거 배제법칙 (Hearsay Rules)은 일반 배심원들이 들어도 되는 증거와 그렇지 않은 증거를 걸려내는 아주 복잡한 가이드라인이다. 이외에도 미국에선 재판에 직접 가기까지 증인신청과 신문 등 길고 복잡한 증거도입과 배제절차를 거친다. 미국의 국민참여재판은 이렇게 법제도를 다양하게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법률시장에는 배심원에 관한 다양한 종류의 전문 인력들이 있다. 변호인을 도와 배심원을 꾸리는 전문인 'Jury Selection Consultant'도 있고, 손해배상금액을 결정하기 위해 손해배상금액의 합리성을 논하는 '전문가 증인' (Expert Witness)도 있다. 또 재판 전 모의 배심원을 고용해 테스트로 재판을 해보는 변호사도 있기 때문에, 모의 배심원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많은 인력이 쏟아지고 있는 한국법률시장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이 보편화되면 이런 전문 인력들로 법률시장에 새로운 직업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많은 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민참여재판에도 여러 가지 불완전함이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가장 큰 취약점은 효율성의 문제이다. 단순한 민사사건도 쉽게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고, 또 변호사가 증인과 증거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사건의 판도가 예측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가장 큰 취약점은 효율성의 문제
단순한 민사사건도 1년 더 걸려 
의료비 등 사회비용 상승의 주범
보편적 배심원 구성에 어려움도

또, 국민참여재판은 자동차 보험, 의료보험 등 사회 전반적인 비용을 높이는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의료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의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많고, 가끔 일반배심원들이 천문학적인 숫자의 보상금을 주라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반배심원은 의사를 특권층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중재에 실패한 의사가 일반배심원 앞에 가게 되면 좋은 결과를 보기가 어렵다. 이런 소송을 대비해 의사들은 비싼 책임보험을 들게 되고, 책임보험비를 내기 위한 비용은 의료비로 다시 환자에게 되돌아오는 사회적 악순환을 조장하게 된다.


가수 신해철씨의 수술 집도의가 국민참여재판을 거부했다는 최신 기사를 보았다. SNS에 의해 순식간에 재능 있는 가수가 죽었다는 것이 알려지고, 사건이 법정에서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전 국민 앞에서 다루어졌으니, 집도의로서는 당연한 결정일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함께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미국에서도, 유명인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은 배심원단을 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볼 때, 다소 일률적인 한국의 문화와 사회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어떻게 잘 정착화 될 수 있는지는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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