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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55) 유하계마도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 선생이 1617년 이이첨(李爾瞻) 등 강경 대북파가 주도한 인목대비 폐모론에 적극 반대하다가 광해 10년, 즉 1618년 정월 9일 북청으로 유배를 떠나자 많은 친지와 문인 들이 찾아와 전송을 하였다. 그 중 아끼던 문인인 북저 김류(1571-1648)에게 여기에 소개하는 유하계마도(柳下繫馬圖)를 주고 벽상(壁上)에 걸어놓을 것을 부탁하였다.

김류는 1620년 이귀 등과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1623년 반정을 도모할 때 거의대장(擧義大將)으로 참여하여 성공했다. 역사에서는 이를 인조반정이라 부른다. 이 때 왕으로 추대된 조선 16대 왕 인조(1595-1649)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시대 반정을 통해 임금이 된 왕으로는 중종과 인조 두 분이 있는데 이 중 중종은 반정공신들이 갑자기 추대하여 왕이 되었지만, 인조는 젊은 시절에는 별로 말이 없고 스스로의 감정을 별로 드러내질 않는 성품인데, 반정거사를 도모할 때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앞장섰던 분이다. 하여 이 반정에 관해서는 많은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 유하계마도에 관한 이야기다.

선조가 말년에 여러 손자들을 불러 혹 글씨를 쓰게 하기도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기도 하였는데, 인조는 이 때 말을 그렸다. 선조가 그 그림을 백사에게 주었다. 백사가 광해 임금 시절 북청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그 그림을 가져다가 김류에게 주면서 벽에 걸어 놓으란 말만 하였다. 이에 김류가 가져와서 자기 집 벽에다 걸어 두었다. 인조가 젊어서 어딜 가다가 비가 와서 길옆에 있는 허름한 집 문 앞에서 비를 피하여 쉬고 있었다. 이때 집 주인의 아내가 문득 밖을 내다보니 한 사내가 서 있는데 그가 어제 밤 꿈에 대가가 문 앞에 이르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나온 인물과 똑같지를 않는가. 얼른 사랑에 나가 남편에게 알려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을 빨리 나가 맞으라고 권했다. 주인이 나가 손님을 맞아 사랑방에 모셨는데 서로가 알지를 못하는 사이라 엉거주춤하는 사이 손님이 우연히 벽을 보니 유하계마도가 걸려 있질 않은가. 그 손님이 후에 인조가 된 능양군이고 주인은 바로 김류였던 것이다.

어느 날 백사의 후손이 서첩을 가져 왔는데 그기에 바로 이 유하계마도가 있지를 않은가?

현재 이 그림은 월성육세유묵(月城六世遺墨)이란 이름의 이항복으로부터 6대에 걸친 경주이씨 편지첩에 실려 있다. 이 편지첩에는 이항복-성남(星南)-시중(時中)-세장(世章)-홍좌(弘佐)까지 5세에 걸친 21통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맨 뒤에는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아마도 홍좌의 아들인 종열(宗說)과 종욱(宗郁)의 형제들 편지가 없어진 것 같다. 첫머리에 이 그림이 실려 있고 아울러 8세손 이계두(李啓斗)의 발문이 붙어있다. 발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이 그림은 나의 선조 문충공(文忠公: 이항복)의 유묵이다. 이는 나의 가보일 뿐만이 아니라 후세에 어찌 능히 이런 화법이란 것이 있으리오. 8세손 계두는 여기에 삼가 붙이고 척서(尺書)로 삼가 쓴다."

후손은 이 그림이 백사의 작품으로 단언하지만 필자는 조심스럽게 인조의 그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미술을 만지다 보면 야사에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이와 같이 조선후기 역사를 바꾼 이런 그림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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