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광장

폭스바겐 사태와 소비자집단소송

서희석 교수 (부산대 로스쿨, 한국소비자법학회장)

1. 폭스바겐 사태의 현황
폭스바겐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가동되지 않도록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것이 그 원인이 되었다. 폭스바겐 측이 전 세계적으로 판매한 디젤차 1100만대에 대하여 리콜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우리나라 정부도 관련 법(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문제가 된 디젤차에 대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고 11월 중순에는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10월말 기준 1000여명의 소비자가 (사기로 인한)매매계약의 취소 및 매매대금반환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한 상태이고, 또한 미국에 집단소송까지 제기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국내소송에 대하여는 법리적으로 판매대리점 사기의 고의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손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소비자 측의 승소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소송의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11월 중순이후 환경부에서 발표할 검사결과에 따라서는 소비자들의 소송이 급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 미국에서의 집단소송과 전망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의 관심은 국내에 판매된 12만5000대의 폭스바겐 소유자를 대표하여 일부 소비자가 미국에서 제기하였다고 보도(10.26)된 집단소송(대표당사자소송, Class Action)에 쏠리게 된다. 무엇보다 독일의 제조사가 만든 자동차에 대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소송을 주관하고 있는 로펌의 변호사는 그 근거로, 국내로 수출된 파사트 차량이 미국 테네시주 공장에서 생산된 점, 폭스바겐의 미국 현지법인이 만든 광고를 한국 고객들이 유튜브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된 파사트(1만8천대)의 소유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문제된 폭스바겐 전체 소유자를 대상으로 전략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어쨌든 위 대표당사자의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이 인정될지 여부가 무엇보다 관건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 진행되는 집단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할지 여부는 아직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만일 승소한다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같은 원인으로 피해를 입은 나머지 소비자들도 제외신고(opt-out)를 하지 않는 한 판결의 효력이 당연히 미치게 되어 피해를 구제받게 된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사기적 행위로 피해를 입힌 기업에 대해 피해금액의 3~10배까지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배상액은 더 늘어나게 된다.

3.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제도의 도입가능성
결국 국내외에서 같은 사안으로 다른 형태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왜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지 않고 있을까? 소비자보호를 위해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정부(경제기획원)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여 '1993년 소비자보호 종합시책'에서는 소비자집단소송법의 입법을 추진하기도 하였다(매일경제 1993.4.2.). 그 후 2004년에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되었으나, 소비자거래 일반에서의 집단소송법의 제정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소비자집단소송 관련 법률안은 모두 7건(모두 의원입법)이지만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집단소송법의 제정이 무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요약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시기상조론이다. 자국의 산업을 더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의 소비자가 자국에서 발생한 자동차 결함 관련 손해배상을 받기 위하여 타국에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 것인가? 기망적인 수법으로 부당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을 시장에서 스스로 제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써, 이제는 소비자집단소송법의 제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둘째, 남소론이다. 소송남발로 기업의 경제활동에 제약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러나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에 의해 제기된 소송의 건수는 현재까지 7건에 불과하다. 소송요건이 엄격하고 소송비용이 높다는 등의 이유도 있겠으나, 제도 도입으로 기업들이 스스로 위법행위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제도적으로 남소를 막을 장치는 필요하다. 예컨대 최근에 제정된 일본의 '소비자집단피해구제법'에서는 일정 요건을 갖춘 소비자단체에게만 집단소송을 인정하여 남소를 막도록 법제화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해 볼 만하다.

4. 결론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소비자의 집단적인 피해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카드사의 개인정보 다량유출사건, 상조회사의 부당 회원이관ㆍ계약인수사건, 가짜 백수오사건, 홈플러스 개인정보 불법매매 사건 등이 그것이다. 집단소송제도가 있었다면 이들 사건의 많은 부분에서 적어도 소비자들이 눈물을 삼키면서 피해구제를 포기하고 마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폭스바겐 사태는 결국 집단소송을 외국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는 '웃픈' 현실을 상징하는 사건이 아닐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지금 국회에 계류된 법률안의 심의라도 재개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최소한 법률 제정을 가로막는 이유가 무엇이고, 국내 실정에 맞는 소비자집단소송제도란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를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논의를 통하여 좋은 법률의 제정을 위한 실질적인 동인이 형성되기를 기대해본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