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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검토하기 전에는 '안 된다'고 말하지 말라

김재헌 변호사

#1 박변호사는 후배인 김 변호사에게 손해배상청구사건 기록을 건네주며 준비서면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김 변호사가 기록을 검토해 보니 피고 측의 과실과 고객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아 승소가능성이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변호사는 박 변호사에게 승소하기 어렵다고 의견을 말하였다. 그런데 그 후 고객과 회의를 계속 해 나가면서 인과관계를 입증할 방법들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 이것은 김 변호사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방향이었다. 김 변호사는 새로운 증거서류들을 검토하면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2 황 변호사는 민사소송사건에서 피고 대리를 맡게 되었다. 고객과 협의 중에 고객으로부터 고객의 주소지 관할인 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황 변호사는 현재 사건이 진행되는 법원이 의무이행지로서 관할법원이기 때문에 서울지방법원으로 이송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고, '이송의 가능성이 없다'고 선배인 박 변호사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박 변호사는 이송의 가능성이 있으니 이송 가능성을 검토해 보라고 하였다. 마지못해서 사실관계를 좀 더 확인해 보니 원고가 허위 주소를 사용하여 소를 제기하였을 뿐 아니라 원고가 주장하는 채권이 허위로서 관할 창출을 위한 것이 명백하였다. 판례를 좀 더 찾아보고 사실관계를 종합해 본 결과 황 변호사는 소송이송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공 변호사는 고소대리 사건이 일부 무혐의가 나자 무혐의 부분에 대한 검찰항고의 가능성을 임 변호사에게 검토해 보라고 하였다. 임 변호사는 기록을 검토하고 즉각적으로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서 직접 눈으로 현장을 확인하였다. CCTV도 확인해 보았으나 당시 CCTV가 고장이 나 있어 추가적인 증거는 확보할 수 없었다. 임 변호사는 보강할 수 있는 증거를 찾으려고 했는데 찾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다. 임 변호사는 이런 사정을 공 변호사에게 설명하고 기존의 자료를 가지고 항고의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공 변호사는 임 변호사의 적극적인 태도에 만족해했다.

후배변호사와 회의를 하다 보면, 후배들이 단정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신의 견해 또는 판례나 주석서에서 찾은 내용이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실관계나 쟁점을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검토하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후배들에게는 이러한 능력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후배들이 단정적인 견해를 밝히게 되면 선배들은 불안해한다. 특히 그 의견이 '안 된다'는 것일 경우 선배들은 당황해 하게 된다. 실제로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을 선배들이 보고 있다. 그래서 해법을 같이 찾아야 하는데 후배가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해 버리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배로서도 해법을 찾으려는 의욕이나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단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할 수 있을까?


첫째, 내가 모르는 사실과 증거들이 밖에는 널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젊은 변호사들은 고객이 알려 준 사실관계를 가지고 판단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고객은 당사자일 뿐 사실관계를 잘 정리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객이 단편적인 사실과 정보를 말할 때 변호사는 그 속에서 핵심 사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사실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실을 탐구하여 퍼즐을 맞추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고객으로부터 사실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더라도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그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현재 알려진 사실이나 고객이 알려 준 사실을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평가를 해 버리면 앞으로 더 나갈 수가 없다. 새로운 사실관계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고객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고객은 절실하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할 이야기도 많다. 그런데 변호사가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들어 줄 것인가. 변호사는 고객의 설명을 잘 듣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고객이 요청하는 것을 받아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고객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다. 고객의 절실한 마음을 공감해 주지 않은 채 검토도 해보지 않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안 된다고 말을 하면 고객은 힘이 빠진다. 고객은 변호사에게 신뢰를 주지 않게 된다. 물론 고객이 다 옳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객의 마음과 고객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달리 보이게 된다. 고객의 말에 경청을 하면 고객은 힘을 얻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자료들을 제공해 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객이 새로 제공한 아이디어나 자료 속에 보석이 담겨져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변호사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고객과의 협력을 통해서 공동으로 목표를 이루어가는 협력자라고 볼 수 있다. 단정적인 견해를 쉽게 말해 버리면 고객과 협력할 수 있는 중요 연결점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셋째, 해법을 찾는 것은 창의적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법학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시험을 치게 되는데 시험문제에 대해서는 답이 정해져 있다. 가상의 사안에 대해서 정답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사실관계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답이 다 다르게 나온다. 그리고 사실관계에 어떤 법리를 적용할 것인가도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해법은 창의적 사고를 하여야 찾아 낼 수 있다.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해법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도 그 해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니 창의적이거나 새로운 해법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심도 깊은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 선배나 고객의 질문에 대해서 단답형으로 '안 됩니다'고 답을 할 수 없다. 설령 지금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답이 있다고 하더라도 "좀 더 검토를 해봐야겠습니다"라는 말을 늘 덧붙이게 된다.

나의 제안 : 충분히 검토하기 전에 안 된다고 말하지 말라.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