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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충돌문제를 중요하게 다뤄라

김재헌 변호사

변호사법 제31조는 당사자 한쪽으로부터 상의를 받아 그 수임을 승낙한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사건을 변호사가 수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수임하고 있는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다른 사건도 고객의 동의 없이는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변호사윤리장전 제22조는 이러한 수임제한을 좀 더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즉, ① 동일한 사건에 관하여 상대방을 대리하고 있는 경우 그 사건, ② 수임하고 있는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다른 사건, ③ 동일 사건에서 둘 이상의 의뢰인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사건, 또는 ④ 현재 수임하고 있는 사건과 이해가 충돌하는 사건 등도 원칙적으로 변호사가 수임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호사의 수임제한규정은 이익충돌(conflict of interest) 상황에서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실무상 이익충돌의 문제와 관련하여 변호사가 고려하여야할 것은 변호사법이나 변호사윤리장전만이 아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변호사는 각종 크고 작은 이익충돌의 상황에 수시로 직면하게 된다. 문제는 이익충돌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모호한 경우가 많고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연 지금이 이익충돌상황인지, 만약 이익충돌이라면 이 이익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변호사들이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 경험에 의하면 고객은 기업 자체이지만, 기업의 대표나 대주주의 이익도 보호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이들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실무담당자가 기업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된 경우 해당 기업의 자문변호사에게 자신의 권리보호를 위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업무와 관련하여 담당 임원들끼리 알력이 생겨서 변호사를 각자 찾아와서 지지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고객이 둘 이상인 경우 수임 당시에는 이익충돌이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진행하면서 변호사 보수를 부담한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과 사이에서 이익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이익충돌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것을 논의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익충돌상황에 대하여 변호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고객의 신뢰를 얻는지 여부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익충돌에 대한 변호사의 태도에 따라 사건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래 전 일이다. 한국의 D사가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가자 채권자인 독일의 F사는 즉시 채권확보를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크게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F사는 D사의 박 대표로부터 보증서를 제공받았기 때문에 박 대표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취해 두었다. 어느 날 박 대표는 F사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 보증서와 관련된 분쟁을 종결하고 싶다며 합의를 제안해 왔다. F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에게 박 대표를 데리고 독일로 와달라고 요청하였다. 박 대표는 자신의 대리인으로 D사 부사장을 파견하기로 했고 나는 그 부사장과 같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비행기 안에서 부사장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D사의 사정에 대하여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독일회사의 대리인이었다. 한국회사나 그 임원들과의 접촉은 내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었다. 고객의 요청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접촉의 방법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당시에는 내가 이 부분을 잘 알지 못해서 내가 독일회사의 대리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다. 단지 고객의 요청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독일에서 협상을 진행하면서 내가 D사의 사정에 대해서 고객에게 설명을 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 스스로 나의 고객이 독일회사인지 아니면 한국회사 측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고객이 나를 D사 측 대리인인 것처럼 바라보는 듯 한 느낌을 받았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객의 요청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제안을 해서 내가 고객의 대리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해관계자가 많이 있는 사건의 경우 변호사가 이익충돌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는 사건의 진행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기업에 경영상 문제가 생겨서 자문을 하게 되었다. 당시 임원과 대주주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경영정상화 방안을 찾기 위해서 모두 협력해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경영부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고 있기는 했으나, 이들은 경영정상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나의 고객이 누구인지를 이들에게 물었다. 이들은 모두 다 내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들 이해관계자들이 아니라 그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나의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협력하기로 하되 혹시 기업과 이해관계자들 간에 이익충돌 상황이 생기면 다른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 주겠다고 말해 주었다. 내가 기업의 이익을 위한 변호사라는 입장을 분명히 취하였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만약 이익충돌의 상황이 생기면 내가 알려 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이들이 협력해서 공동의 목적인 경영정상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다.

고객이 '내 변호사'라는 생각을 하여야 고객과 변호사간에 신뢰가 구축되고 일이 제대로 된다. 그런데, '내 변호사'가 아닐 수 있다고 고객이 생각한다면 일 처리가 제대로 되기 어렵다. 이익충돌의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내 변호사'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익충돌의 가능성 때문에 고객이 불안해하는데도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고객으로부터 지지를 받지는 못할 것이다. 이익충돌의 문제는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건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친다. 변호사는 이 문제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고객과 소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제안 : 이익충돌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객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충돌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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